오타니를 벤치마킹하겠다면 그의 인생철학부터 읽어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1.20 07:07  수정 2025.11.20 07:07

기록과 메모, 타인을 위한 배려, 약자와 반대자에게 따뜻한 야구천재

쓰레기를 먼저 줍는 이유는 복과 운이 자신에게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실천

2025년 11월 14일 오타니의 MVP 수상을 알리는 아사히신문 호외. ⓒ AP연합뉴스

지난 14일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31)가 올해 MVP(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정규시즌 MVP만 4번이나 수상했고, 그것도 모두 만장일치 1등이었다.


실력과 인성의 겸비,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이도류(二刀流), 큰 키에 잘생긴 외모, 현실 인간과 만화 주인공의 교차, 돈은 벌고 쓰레기는 줍고 등등 그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친다. 지금 실력이라면 내년 MVP도 떼놓은 당상이다. 특히 그를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천재적인 실력에 버금가는 모범적인 인성과 팬 서비스 때문이다.


일본의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가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 하게 만들겠다”는 망언으로 우리에게 ‘비호감’으로 찍혀 있는 반면, 오타니는 SNS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삼는가 하면 한국을 좋아하는 나라라고 언급해 대조를 이루었다. 최근에는 경기가 끝난 뒤 같은 팀의 김혜성 선수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손을 뒤로하여 꼭 잡아 주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한국인의 점수를 땄다.


오죽했으면 202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에서 미국 대신 오타니를 응원하는 댓글이 쏟아졌을까. “일본이 우승한 것은 싫지만 오타니가 잘한 것은 좋다” “일본 남자에게 반할 줄이야” 식의 언급이 많았다. 그에 비해 “이번 WBC에서 오타니에게 던질 곳이 없다면 아프지 않을 곳을 맞히겠다”는 어느 한국 투수의 발언은 경기장 밖에서도 완패하는 초라함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국내 선수들에게 “야구 기량에서 오타니를 벤치마킹하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 오타니는 어릴 때부터 싹이 달랐다. 스포츠맨 경력이 있는 부모·형·누나의 유전자를 따라서인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속 110㎞의 초(超)초등학교급 강속구를 던졌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처음으로 장외홈런을 때렸다. 체력과 훈련 방법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는데, 괜히 그대로 따라 하다간 자기 스타일만 망친다. 어차피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160km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면서 연간 55개의 홈런을 쳐내는 야구선수가 다시 나오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오타니를 벤치마킹하겠다면, 무엇보다 실력과 인성의 바탕을 이루는 그의 인생철학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시중에는 오타니를 다룬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오타니의 생각을 지배하는 원칙은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에게는 부드럽다는 점이다. 오타니의 생각은 그가 하나마키히가시(花卷東)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들어 유명해진 만다라트(Mandalart·연꽃 기법) 계획표에 잘 나타나 있다. 큰 정사각형 한가운데 핵심 목표를 적고, 8개의 세부 목표를 빙 둘러 가며 적는 식이다. 고1 때 오타니의 최고 목표는 ‘일본 프로야구 8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가 되는 것이었고, 만다라트의 상당 부분을 실제로 성취했다. 그러면 오타니의 마음을 지배하는 생각이나 원칙을 세분해 보자.


첫째, 그는 불가능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장인정신(匠人精神)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기록과 메모를 잊지 않는다. 오타니는 8세부터 아버지와 교환일기 형식의 야구 노트를 작성했다. 그날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을 적고 잘못은 어떻게 개선할지 적었다. 일종의 오답 노트인 셈이다. 지금도 기록과 메모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을 다독인다. “큰 성취감을 일 년에 몇 번 맛보는 것보다 매일 작은 성취감을 맛봐야 한다”는 오타니는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다”고 밝혔다. 프로 입단 후에도 일기를 쓰고 독서할 때 중요한 부분을 수첩에 메모해 두 번을 읽는다.


예전 도요타자동차의 다카오카 공장을 방문했는데, 공장 내부에 크게 적힌 ‘よい品 よい考’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생각에서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뜻이다. 1994년생인 오타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제조업의 혼(魂)을 물려받은 듯했다. ‘좋은 생각에 좋은 선수가 나온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야구도 장인정신이란 관점에서 보는데, 오타니는 그런 분위기를 일찍 체득했다.


고교 시절 스승인 사사키 히로시 감독은 “오타니가 전체 교과목 평균이 85점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라면서 “기숙사 청소도, 글짓기도, 제출물도 제대로 다 하는 등 야구 이외에도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오타니가 고교 1학년때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 ⓒ 스포츠닛폰

둘째, 오타니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黃金律 · Golden Rule)을 실천한다. 주역(周易)에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이 나온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넉넉한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드래프트 1순위가 되려면 운이 필요하고 그 운은 인간성 좋은 사람이 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의와 배려와 감사가 몸에 배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쓰레기 줍기’라는 항목이다. 요즘도 오타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 메이저리그 덕아웃은 해바라기 씨나 물병으로 지저분하지만, 오타니는 주위에서 쓰레기를 발견하면 곧바로 치운다.


그라운드 매너도 미국 선수들을 놀라게 한다. 타석에서 바닥에 떨어진 상대방 포수 마스크를 집어 든 뒤 흙을 털어서 건네준다. 스프링캠프에서 타격 연습을 마치면 직접 공을 주워 바구니에 담으며 뒷정리를 깔끔하게 한다. 투수로서 주자를 태그아웃시키면 손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동료들이 음담패설 할 때면 슬며시 빠져나간다.


자기가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날에는 수비를 안 하므로 다소 여유가 있다. 그때마다 더그아웃에 그냥 앉아 있지 않고 수비하고 들어오는 동료들을 위해 뒤에서 9개의 컵에다 미리 물을 붓는 모습이 영상에 찍혔다. 카메라가 찍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혼자 신나서 그런 행동을 했다.


셋째, 자신이 잘해주더라도 반대로 자신에게 아무런 보답을 할 수 없는 약자,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반대자에 대한 따뜻한 대응이다. 그래야 진짜 복이 온다고 믿는다.


다른 타자들은 볼넷을 얻어 1루로 나갈 때 자신의 야구 장비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놓는데, 오타니는 볼보이가 정리하기 편하도록 장갑과 보호대를 차곡차곡 벗어 건네주면서 등을 두들겨 주기도 한다.


홈런 세레모니를 볼보이와 나눈 사례도 있다. 2021년 8월 15일 오타니는 시즌 39호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가 한 사람과 먼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아닌 팀의 볼보이였다. 경기장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볼보이를 먼저 높여 주는 효과는 컸다. 순식간에 야구장 전체를 ‘살벌한 승부처’에서 ‘인간미 넘치는 잔치 터’로 만들어 버렸다.


상대방 투수가 고의로 던진 사구(死球)에 맞아 양팀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질 뻔했으나, 그는 자기 팀 벤치를 향해 괜찮으니 나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LA다저스와 맞붙은 토론토 블루제이스 팬들이 관중석에서 “오타니는 필요 없다”고 야유하자 “그 말은 내 아내가 재미있어했다”며 미소로 받아쳤다. 정규시즌에선 홈런을 치고 자신을 비난하던 상대 팬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건네기까지 했다. 오타니의 특기인 일종의 ‘긍정적 리프레이밍(reframing·가령 동료가 화를 내면 ‘왜 화를 내냐’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 일에 진심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글로 재정리한 오타니의 만다라트 내용. ⓒ 네이버

윤향숙 상담심리학 박사는 클로닝거 워싱턴대 교수의 인성(人性)모델을 적용, “아버지와 교환일기, 자신의 강점과 결점을 기록하는 오랜 습관은 오타니가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자기성찰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며 “덕분에 자신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매몰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넓은 시야로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발달되었다”고 분석했다.


오타니는 남을 배려하고 약자와 반대자에게 친절을 베풀면 틀림없이 자신에게 복(福)과 운(運)이 따라온다는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 처음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체질화되었다. 일부에서 “의도적인 쇼잉”이라고 비난하지만, 만에 하나 쇼잉이면 또 어떤가. 그런 기본적인 쇼잉도 못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팬들에게 사인해 주면 시장에다 팔아먹기 때문에 사인해 줄 수 없다는 어느 톱스타, 경기에서 화가 난다고 배트를 더그아웃에다 내동댕이쳐 버리는 분노조절장애 선수, 삼진 잡았다고 모멸적인 승리 액션을 하다가 상대팀 벤치를 집단 분노케 하는 투수 등을 자주 보아 온 국내 야구팬들에게 오타니는 과도하게 이례적이다.


필자는 궁금하다. 몇 년이 지나면 오타니도 은퇴한다. 세계 야구사에 처음 등장한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이 과연 어떻게 변신할까. 혹시 그가 나이가 들어 정치를 하려나.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훗날 그가 일본 총리라도 된다면 어떨까. 툭하면 과거 일을 무제한 끄집어내 ‘적폐청산’이니 어쩌니 하면서 국민들을 반토막 갈라치는 정치인들과는 분명 다르리라 상상해 본다.

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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