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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혁명, 선진 사례에서 배우자-하] 獨 '비밀투표' 통한 철저한 상향식


입력 2019.10.21 02:00 수정 2019.10.21 05:51        정도원 기자

공산당·나치에 '몸살' 독일, 당내민주 엄격

정당법·선거법으로 내부 공천 세세하게 규율

김종인 "제도 잘 채택해 가장 민주국가 됐다"

공산당·나치에 '몸살' 독일, 당내민주 엄격
정당법·선거법으로 내부 공천 세세하게 규율
김종인 "제도 잘 채택해 가장 민주국가 됐다"


찍어내기·칼바람·물갈이·살생부·학살·수술대·표적·배제·사천(私薦)·밀실·거수기·외압·항명·불복… 총선만 다가오면 살벌하고 흉흉한 단어들이 여의도를 뒤흔들고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다.

총선을 치를 때마다 초선 의원 비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끊임없이 '고기갈이'를 해댔지만, 우리 정치는 제자리걸음 내지는 퇴보라는 평이다. '고기' 공직후보자보다도 '물' 공직후보자 공천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데일리안은 총선을 반 년 앞두고 미국·영국· 독일 등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천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살펴보는 순서를 마련했다.

독일 연방하원 의원들이 지난 5월 연방의사당에 모여 결의안 의결을 위한 표결을 실시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독일 연방하원 의원들이 지난 5월 연방의사당에 모여 결의안 의결을 위한 표결을 실시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독일은 영국·미국에 비해서는 후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지금은 세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손꼽히지만,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시작한 것은 전후(戰後)인 1949년부터다.

군국주의로 인한 1차대전 패전의 참화를 겪은 독일은 이후 이상주의적 바이마르공화국 체제를 수립했으나, 극좌 공산당과 극우 나치당이 발호하면서 속절없이 2차대전으로 향했다.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는 정당민주주의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정당 내부 규율에 맡겨두는 영미와는 달리 독일은 서구에서 이례적으로 정당법을 제정·적용하고 있다.

서독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시절인 1955년 정당법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제대로 된 정당법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무려 12년 동안 준비와 심의가 이뤄졌다. 이 때문에 아데나워 총리는 자신의 재임 중에 정당법 결실을 보지 못했으며, 2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를 지나 3대 쿠르트 키징어 총리 때 이르러서야 정당법이 완성돼 제정·공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1952년에는 나치당의 후신인 사회국가당(SRP)이, 1956년에는 독일공산당(KPD)이 연방헌법법원에 의해 차례로 해산 결정이 이뤄졌다. 이 중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은 우리나라의 구 통진당 해산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만큼 정당민주주의에 엄격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처럼 두 개의 원내정당이 해산되는 와중에 준비·심의된 독일정당법은 비민주적인 내부 절차를 가진 공산당·나치당과 같은 정당이 다시는 발호할 수 없도록 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의 의지를 담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뮌스터대에서 재정학 석박사를 전공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놓고 "민주주의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 제도를 잘 채택해서 유럽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국가가 된 나라가 독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독일기본법은 정당의 지위와 자유를 엄격하게 보호하고 보장하는 한편, 정당법에 의해 다른 나라에서는 정당의 자율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법적으로 세밀하게 규율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뒷받침하는 정당민주주의에는 당내민주주의가 필수 요소라는 인식이 깔린 탓이다.

따라서 연방하원의원 공직후보자 추천(공천) 절차도 각 정당의 당헌·당규에 앞서 독일정당법(Parteigesetz)과 연방선거법(Bundeswahlgesetz)에서 관련 규정을 두고 방식을 제한하고 있다.

공천방식, 당원·대의원대회 비밀투표만 인정
상향식 공천 사실을 의장 등 3인이 선서해야
오(誤)선서의 경우 3년 이하 징역으로 '엄단'


독일의 중도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기민련·CDU) 소속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017년 9월 총선 직후 베를린에서 첫 소집된 기민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준비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독일의 중도우파 정당인 기독민주연합(기민련·CDU) 소속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017년 9월 총선 직후 베를린에서 첫 소집된 기민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준비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독일정당법 제17조는 "후보자 추천(공천)은 비밀투표로 결정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연방선거법은 이를 받아 '비밀투표'의 의미를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연방선거법 제21조 1항은 "정당 후보자로 공천받을 자는 지구당의 당원총회에서, 또는 당원총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대회에서 비밀투표에 의해 후보자로 지명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르면 투표 절차가 아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전략공천·우선추천·단수추천 등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또, 공천관리위원들 사이에서의 의결 따위를 가지고 '비밀투표로 결정했다'고 하면 안되므로, 비밀투표는 선거권 있는 당원대회나 대의원대회에서의 투표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비밀'투표이므로 당원집회에서 "박수로 인준하자" 등도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선거구 내의 당원 숫자가 너무 많아 실질적인 당원대회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연방선거법에서 규정한대로 대의원대회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의원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이 임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대의원 경선이 곧 의원·위원장의 뜻이나 다름없다. 독일은 이러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의원은 당원에 의해 선출된 자여야 한다고 제한을 두고 있다.

같은 조 3항에서는 "다가오는 총선을 위해 해당 지역구의 선거권을 가진 당원들에 의해 선거일 29~32개월 이내에 선출된 자들에 의해 개최된 집회를 상기(上記)한 대의원대회로 본다"고 규정한다.

총선으로부터 일정한 기간 내에, 해당 지역구의 당원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사람들만을 '대의원'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이 모인 게 공직후보자를 선출하는 대의원대회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의원을 하향식으로 중앙당 지도부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당협위원장 등이 임명하는 것은 금지되는 셈이다.

이도 못 미더워 같은 조 6항에서는 이중삼중의 제한 규정이 이어진다.

6항 전단은 정당은 공직후보자 선출을 위한 당원대회·대의원대회 그 자체는 물론 대의원대회로 치렀을 경우 다시 그 대의원을 선출한 당원대회의 소집 공고와 의사록을 제출할 것을 명령한다. 의사록에는 당원대회·대의원대회를 소집한 일시와 장소, 소집형식, 출석자의 숫자 등을 빠짐없이 기록·첨부해서 공천자를 신고할 때 함께 제출해야 한다.

6항 후단은 당원대회·대의원대회 의장이 이 사실을 신고할 때, 자신과 자신이 지정한 두 사람이 기본법·정당법·선거법에 따라 정말 민주적으로 후보가 공천됐음을 지역선거관리위원 앞에서 선서하도록 의무를 지운다. 이 선서에 의한 보증이 잘못됐을 경우, 의장 등은 독일형법 제156조 선서로 잘못된 보증을 한 자에 해당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비례대표도 순번까지 대의원대회 투표로 결정
밀실공천·순번 끼워넣기 제도적으로 불가능
'패트' 아니라 민주적 공천 방식을 고민할 때


독일의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 안드레아 날레스 총재가 지난해 3월 함부르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메르켈 총리가 제안한 기민련과 사민당 간의 대연정 내각 수립을 수락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독일의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 안드레아 날레스 총재가 지난해 3월 함부르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메르켈 총리가 제안한 기민련과 사민당 간의 대연정 내각 수립을 수락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이처럼 법에서 정당의 후보자 공천을 당원·대의원의 비밀투표에 의한 선출만 가능하도록 하고, 그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이중삼중으로 부여하고 있어 중앙당 지도부의 외압에 의한 공천이나 밀실공천 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공천이 이뤄졌음을 당원·대의원대회 의장 뿐만 아니라 그가 지명한 두 사람까지 선서로 보증해야 하고, 이것이 잘못됐을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어 민주적 상향식 공천 외에 당 지도부 임의에 의한 공천권 전단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엄격한 제안은 지역구 후보자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자에도 적용된다.

독일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결정은 이른바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따라 각 주(州)별로 후보자명부 작성이 이뤄진다. 이 또한 후보자명부의 순위까지 해당 주(州)의 대의원대회에서 직접 비밀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 정당처럼 비례대표 후보자명부를 발표하기 전날 밤은 물론 당일까지도 당 지도부와 영향력 있는 의원, 공천관리위원들의 간섭으로 순위가 마구 뒤바뀌고, 최상위 순번을 받은 사람들도 왜, 어떤 이유로 이러한 순번을 받게 됐는지 본인조차 모르는 상황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독일을 흉내냈다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계류돼 있지만, 독일 제도의 외피만 흉내낼 뿐 이 제도가 도입되면 비례대표 후보자명부와 순위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고민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법·정당법·선거법에 의해 반드시 민주적으로 상향식 공천을 하도록 이중삼중의 규제장치를 두고 있는 독일의 지역구 후보자 공천과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 및 순위 결정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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