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50km를 육박하는 강력한 직구가 양의지 포수의 미트에 꽂힐 때마다 막힌 속이 뻥 뚫렸다. 대만 타자들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를 때는 관중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은 유일한 메이저리거 ‘끝판왕’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조별리그 대만과의 최종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8로 승리했다. 한국은 뒤늦게 조별리그 1승(2패)을 챙기며 대만을 밀어내고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앞선 2경기에서 19이닝 1득점으로 침묵을 지켰던 타선이 모처럼 폭발했지만 이번에는 투수력이 문제를 일으켰다.
선발 등판한 양현종이 3이닝 5피안타 6탈삼진 3실점으로 다소 불안했지만 간만에 타선이 폭발하면서 대표팀은 4회초까지 8-3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믿었던 불펜에 기어코 발등이 찍히고 말았다.
양현종의 뒤를 이어 등판한 심창민이 올라오자마자 투런 홈런을 허용하더니 차우찬마저 2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대만에게 추격의 빌미를 허용했다. 결국 한국의 불펜을 상대로 야금야금 점수를 뽑은 대만은 기어코 8-8로 동점을 만들었고, 9회말 무사 2루 끝내기 찬스를 맞았다.
결국 김인식 감독은 오승환을 황급히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마운드에 올라온 오승환은 4번타자 린즈셩을 삼진 처리하며 급한 불을 껐다. 린이취엔을 고의사구로 걸렀지만 또 다시 가오궈후이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결국 천용지를 우익수 플라이로 돌려세우며 1사 1,2루 위기를 탈출했다.
오승환의 역투로 위기를 넘긴 대표팀은 10회초 김태균의 투런포 등을 앞세워 석 점을 더 뽑아내며 승기를 잡았다. 결국 10회말, 이번에는 팀의 승리를 지키러 올라온 오승환이 대만 타선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처리하며 한국에 대회 첫 승을 안겼다.
오승환은 이번 WBC 대표팀에 합류한 대표팀 선수 가운데 유일한 메이저리거다. 애초 그의 대표팀 발탁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도 있었다.
오승환은 대만전 승리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애초 그의 대표팀 발탁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도 있었다. ⓒ 연합뉴스
대만전 승리의 일등공신인 오승환은 지난해 1월 해외 원정 도박과 관련해 KBO 징계(시즌 50% 출전 정지)를 받아 당초 이번 WBC 대표팀 예비 50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다. 실력에서만큼은 최고지만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를 발탁하자니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오승환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도박 파문을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인식 감독은 많은 논란 속에 결국 오승환을 발탁하며 마운드를 강화했다. 오승환 역시 이스라엘전(1.1이닝 3탈삼진 무실점)에 이어 이날 대만전까지 총 2경기에서 3.1이닝 1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로 기대에 보답했다.
특히 대만전 위기 상황에서 그의 호투가 없었다면 대표팀의 첫 승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오승환의 도박 파문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실력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고, 끝내 약속을 지켜내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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