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은 지난 시즌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 경쟁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럼에도 아스날은 중요한 순간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결국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2003-04시즌 이후 리그에서는 12년째 우승이 없고, 챔피언스리그도 6년 연속 16강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내년 여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어 자칫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올 시즌 성적이 더욱 초미의 관심사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체로 무난한 흐름이다. 아스날은 리그에서 개막전 패배의 부진을 딛고 4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고 있다. 공식 대회 총 5경기 동안 아스날은 리그에서 2승 1무 1패(승점 7)로 선두권과 근소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으며,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파리 생제르맹(PSG) 원정길에서 1-1 무승부라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일 뿐 실상은 곳곳에서 문제점투성이다.
산체스, 전방보단 2선이 제격
알렉시스 산체스 ⓒ 게티이미지
벵거 감독은 지난 PSG전에서 알렉시스 산체스를 선발 출전시켰다. 시즌 초 공격수 부재로 인해 임시방편으로 활용한 산체스 카드를 재가동한 것이다.
그동안 벵거 감독은 올리비에 지루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지루는 상대 장신 수비수들 틈바구니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등 포스트 플레이에는 능하지만 드리블 돌파나 공간 침투, 스피드에서 답답함을 보인다.
매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곤살로 이과인, 카림 벤제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앙트완 그리즈만 등 월드 클래스의 공격수 영입을 추진한 것도 이러한 이유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영입이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벵거 감독으로서는 남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차선책이었다. 시즌 초반 시오 월콧, 대니 웰벡, 산체스 등을 전방 공격수로 활용했다. 그러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선수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벵거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지루를 주전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올 시즌은 상황이 다르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스페인산 공격수 루카스 페레스를 영입했으며, 지난 10일 열린 사우스햄턴과의 리그 4라운드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또한 벤치에는 후반 조커용으로 지루가 여전히 버티고 있다. 공격수 스쿼드의 두께는 어느 정도 갖춰놓은 셈이다.
물론 루카스 페레스가 지루보다 뛰어난 퀄리티를 보유한 공격수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가 지루와는 정반대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다. 이는 상대팀에 맞는 맞춤 전략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문제는 산체스다. 사실 산체스의 주 포지션은 2선의 측면이다. 칠레 대표팀에서는 전방 공격수로 뛰지만 원톱이 아닌 투톱 형태로 에두아르도 바르가스와 짝을 이룬다. 아무래도 원톱으로 뛸 때와 투톱으로 뛸 때의 동선이나 역할 자체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최전방에서 뛰는 것과 골문을 등지지 않고 전방을 바라볼 수 있는 2선 플레이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산체스가 2선에서 지나치게 많은 턴오버를 범하는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상대 압박을 벗겨내 어떻게든 유리한 상황으로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최전방 공격수로는 매우 무기력했다. 산체스는 지난달 열린 레스터 시티와의 리그 2라운드에서도 원톱으로 선발 출전해 팀 내 최하인 평점 5(영국 스카이스포츠)를 받았다. PSG전 역시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후반 18분 지루가 투입되고 산체스가 2선으로 내려가면서 아스날의 공격이 차츰 살아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산체스는 후반 33분에는 천금 같은 동점골까지 뽑아냈다. 알렉스 이워비의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막히고 흘러나온 공을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쇄도하며 오른발 슈팅을 성공시켰다. 만약 전방에 있었다면 산체스에게 찾아올 수 없는 득점 기회였다.
‘슈퍼 퀄리티’ 체임벌린 향한 무한 신뢰
벵거 감독이 “슈퍼 퀄리티”라고 칭한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 게티이미지
지난 2011년 여름은 벵거 감독에게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아스날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최악의 위기였다. 당시 팀의 중심이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사미르 나스리, 가엘 클리시, 엠마누엘 에부에 등 주전급들이 모두 아스날을 탈출했다. 결국 8월 말 아스날은 맨유에게 2-8 대패의 참사까지 겪었다.
올드 트래포드 참사가 터지기 이전인 8월 초 당장 즉시 전력감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벵거 감독은 뜻밖에도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을 영입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스날 팬들은 10대 유망주에 무려 1500만 파운드(약 258억 원)를 쏟아부은 벵거의 선택에 불만을 터뜨렸다. 당시 벵거 감독은 체임벌린을 두고 “슈퍼 퀄리티”라고 칭하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벌써 아스날 입단 후 6년차로 접어들었고, 아직까지 뚜렷한 성장 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통산 157경기를 뛰었으니 이만하면 충분한 테스트와 기회를 부여 받은 것과 다름없다.
체임벌린은 2선의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발군의 주력과 돌파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축구 지능이 부족하다. 드리블, 패스, 슈팅의 선택지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또한 돌파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마무리 패스와 슈팅의 정확도가 결여된다. 무엇보다 득점력이 너무 저조하다. 아스날 소속으로 통산 17골에 그쳤다.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유리몸이다. 잔부상이 너무 많아 팀에서 이탈하는 횟수가 잦다. 그래서 믿고 쓰자니 애매한 체임벌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벵거 감독은 체임벌린에 대한 신뢰가 너무 지나칠 정도다. 체임벌린은 올 시즌 최근 4경기 연속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특별하게 보여준 것이 없다. 오프 더 볼을 통해 공간을 효과적으로 만들지 못했고, 잦은 패스 미스를 범했다. PSG전에서는 패스 성공률이 57.9%에 머물렀으며, 볼 터치 미스를 4회나 기록했다.
중앙 미드필더 조합 찾기 시급
그라니트 샤카. ⓒ 게티이미지
벵거 감독은 지난 겨울 이집트 출신의 모하메드 엘네니를 스쿼드에 추가시킨데 이어 여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정상급 미드필더 그라니트 샤카를 영입했다. 이들의 영입으로 마티유 플라미니(계약 만료), 미켈 아르테타(은퇴)의 공백을 잘 메웠다는 평가다.
이제 주어진 과제는 확실한 조합 찾기다. 벵거 감독은 샤카 영입을 위해 3000만 파운드(약 516억 원)의 거액을 투자했다. 빌드업과 터프한 수비력을 갖춘 샤카를 중심으로 허리진을 개편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샤카는 리그 2, 3라운드서 2경기 연속 선발 출전 이후 4라운드 사우스햄턴전과 챔스 PSG전에서 교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우스햄턴전은 A매치 피로 여파라는 이유가 성립되지만 PSG전 선발 제외는 아쉬움이 남았다.
벵거 감독은 최근 2경기에서 산티 카솔라와 프랑시스 코클랭 조합을 3선에 내세웠다. 두 명의 조합은 2014-15시즌 후반기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바 있다. 하지만 2015-16시즌에는 전반기 나란히 장기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아스날은 동력을 잃었다.
문제는 벵거 감독이 당시와 다른 역할을 이 두 선수에게 부여했다는 점이다. 카솔라가 코클랭보다 아래에서 볼배급을 맡고, 코클랭은 자신의 본업인 포백 보호 대신 전진하는 형태의 움직임을 가져간 것.
코클랭은 태클 시도와 볼 탈취에 특화된 미드필더다. 볼 운반과 박스 투 박스에 가까운 미드필더와는 거리가 먼 타입이다. 결국 PSG전에서 이 조합으로 인해 중원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렇다고 샤카와 카솔라 콤비를 가동하기에는 수비적인 약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실제 샤카와 카솔라 콤비는 3라운드 왓포드전에서 수비진을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며, 상대에 슈팅 기회를 여러 차례 허용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나타난 전술적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간다면 아스날의 올 시즌 전망도 어둡다. 초반이긴 하나 벵거 감독의 확실한 피드백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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