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은 박소연, 김해진, 최다빈 등 그동안 김연아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이른바 ‘김연아 키즈’ 선수들에 비해 한 세대 어린 ‘리틀 김연아 키즈’라고 할 수 있다. ⓒ 연합뉴스
모처럼 국내 피겨 스케이팅계를 흥분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만 11세의 ‘초등 스케이터’ 유영(문원초등학교)이 쟁쟁한 선배 언니들을 제치고 피겨종합선수권대회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유영은 지난 10일 목동실내빙상장서 열린 ‘제70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8.53점에 예술점수(PCS) 54.13점을 합쳐 122.66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61.09점으로 1위에 올랐던 유영은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총점 183.75점으로 여자 싱글 시니어부 종합 우승의 기염을 토했다. 유영(만 11세 8개월)의 우승은 '피겨여제' 김연아가 보유했던 대회 역대 최연소(만 12세 6개월)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유영은 지난 9일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 소화했다. 이후 점프 과제인 트리플 플립, 더블 악셀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클린’ 연기를 펼쳐 보이며 자신의 쇼트 프로그램 역대 최고점으로 1위에 올랐다.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트리플 살코에서 가벼운 실수를 범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고난도 점프 과제를 무난하게 소화함은 물론 스핀, 스텝 등 다른 연기 요소들도 훌륭하게 펼쳐 보인 뒤 연기를 마쳐 우승의 환희를 맛봤다.
유영은 박소연, 김해진, 최다빈 등 그동안 김연아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이른바 ‘김연아 키즈’ 선수들에 비해 한 세대 어린 ‘리틀 김연아 키즈’라고 할 수 있다.
‘김연아 키즈’ 세대 선수들이 김연아의 현역 선수생활 말미에 김연아와 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던 반면 ‘리틀 김연아 키즈’인 유영은 국가대표 훈련장인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하면서 종종 김연아를 봤을 뿐, 김연아를 ‘선배 선수’로 마주할 기회는 없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보면 유영은 김연아와는 완전히 다른 세대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5월 한국에서 태어난 유영은 어릴 때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만 6살 때 취미로 피겨를 시작했다. 당시 유영에게 최고의 시청각 교재는 역시 김연아 경기 영상이었다. 실제로 세계 피겨계에서 인정하는 점프의 교과서이자 독보적인 표현력을 앞세운 김연아의 연기 동영상만큼 좋은 교재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영은 종합선수권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어릴 때 연아 언니의 동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본받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올해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유영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국가대표 선배 언니들을 제치고 최연소로 종합선수권 여자 싱글 시니어 부문 우승을 차지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유영과 비슷한 나이에 김연아는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을 나타나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김연아는 유영에 대해 “내가 초등학생인 시절보다 잘한다”고 후배를 칭찬했다.
김연아는 초등학교 시절 트리플 점프 5종(트리플 플립, 트리플 토룹, 트리플 러츠, 트리플 살코, 트리플 루프)을 완성했고, 실전에서도 이들 트리플 점프를 완성도 있게 구사했다. 표현력에서 만큼은 빼어난 점프 실력에 미치지 못했고,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거듭된 국제대회를 통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김연아가 펼친 최고의 연기를 교재 삼아 훈련해 온 유영은 김연아 못지않은 점프 실력에 더해 표현력까지 상당한 수준 눈을 뜬 상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기에 키 143㎝에 몸무게 31㎏의 가냘픈 듯 날렵한 유영의 체형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김연아와 비교할 만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체형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여러 요소를 종합해 보면 유영은 김연아의 현역 은퇴 이후 한국 피겨계가 애타게 기다려온 진짜 김연아 후계자가 될 수 있는 ‘피겨 영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연아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것을 기다려온 국내 피겨계와 피겨 팬들에게 유영은 ‘진짜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재능을 지니고 있다. ⓒ 연합뉴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영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무대에서는 뛸 수 없다는 점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만 16세 이상이어야 하는데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2002년 7월 1일생 이전부터 출전할 수 있다. 따라서 2004년생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시점에 만 13세에 불과한 유영은 나이 제한에 걸려 평창 무대를 밟을 수 없다.
하지만 유영은 오는 2022년(베이징)과 2026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할 기회가 열려 있다. 유영뿐만 아니라 이번 종합선수권에서 3위와 4위에 오른 2003년생 임은수(응봉초등학교)와 김예림(군포양정초등학교) 역시 초등학생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의 성장 추이에 따라 한국 피겨는 또 한 세대의 황금기를 구가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부상 없이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어린 나이에 국내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유영의 기량에 대해 칭찬하면서도 앞으로 부상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한편, 급격한 성장을 이룬 선수인 만큼 차분하게 기본기를 다지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영은 올해부터 대표선발 규정이 '2003년 7월 1일 이전 태어난 선수'로 바뀌면서 종합선수권대회 우승과 동시에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이에 따라 유영은 대표선수들에게 보장되는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을 이용할 수 없게 돼 과천빙상장에서만 훈련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지나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지만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할 때 누릴 수 있는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빙상연맹이 조만간 유영에 대한 지원책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합당한 대책 마련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기까지 김연아는 국민들에게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큰 기쁨과 자부심을 안겼다.
진정한 김연아의 후계자가 김연아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것을 기다려온 국내 피겨계와 피겨 팬들에게 유영은 ‘진짜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유영의 하루하루는 피겨팬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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