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2003년 12월3일 - 조성원(SK)⇔전희철(KCC)...
원주 동부와 전주 KCC는 지난 9일 3:3 ‘깜짝´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표명일·변청운·백주익이 동부 유니폼을 입고, 정훈·김영만·배길태가 KCC호에 승선했다. 동부와 KCC도 나란히 위기에 빠졌고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
이처럼 시즌 중 트레이드는 오프시즌에 일어나는 트레이드보다 훨씬 전격적으로 이뤄져 더욱 많은 팬들의 관심과 흥미를 돋운다. 프로농구를 뒤흔든 ´시즌 중´ 트레이드 TOP5를 살펴본다.
③ 2003년 12월3일 - 조성원(SK)⇔전희철(KCC)
2000-01시즌 정규리그 MVP 조성원은 2003-04시즌 들어 깊은 침체에 빠졌다. SK가 플레잉코치직까지 안겨줄 정도로 기대했지만 조성원의 외곽슛은 이상하리만큼 림을 빗나갔다. 이는 전희철도 마찬가지. KCC에서 전희철은 신선우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SK와 KCC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두 팀은 조성원과 전희철은 1대1 맞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KCC는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조성원을 택했고, SK는 리더십이 강한 전희철이 침체된 팀을 이끌어주길 기대했다.
친정팀 KCC로 복귀한 조성원은 예전의 슛 감각을 되찾았다. 신선우 감독과 유도훈 코치는 조성원에게 힘을 북돋아주었고 오랜 시간 함께 손발을 맞췄던 이상민과 추승균은 조성원을 도왔다. 조성원은 특유의 3점슛과 돌파 그리고 속공마무리로 KCC 공격의 활로를 열어줬다. 결국, 그해 챔피언 결정전에서 팀 우승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KCC에서 제 자리를 못 찾으며 방황하던 전희철 역시 SK에서 리더로 자리 잡으며 옛 기량을 회복, 절반의 부활에 성공했지만 SK를 6강 플레이오프로 이끌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 지금은?
조성원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KCC에서 은퇴식을 가질 정도로 명예롭게 은퇴했다. 사실 은퇴하기에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지만 당당할 때 코트를 떠나고 싶다는 조성원의 의지는 꺾지 못했다. 지금 조성원은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에서 코치로 제2의 농구인생을 열어 가고 있다.
반면, 전희철은 여전히 SK에 몸담고 있지만 활약상이 예년만 못하다. 방성윤과 문경은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내놓은 지 오래다. 무엇보다 급격한 하향세로 플레이가 살아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④ 2004년 1월17일 - 바셋(모비스)⇔호프·신인드래프트 1R 지명권(KCC)
KCC는 조성원을 영입하며 외곽을 보강하는데 성공했지만 2% 부족했다. 바로 높이였다. 원주 TG삼보는 김주성을 필두로 한 강력한 높이를 갖추고 있었고 우승을 위해서는 높이 보강이 절실했다. 결국, KCC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코앞에 두고 승부수를 띄웠다. 모비스의 ´특급센터´ R.F 바셋을 영입한 것.
KCC는 대신 무스타파 호프와 2004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모비스에 내줬다. 당시 모비스는 일찌감치 최하위로 처진 상황이었고, 바셋을 내주며 미래를 도모했다. 그러나 당시 이 트레이드는 우승에 집착한 KCC와 프로의식을 실종한 모비스가 성사시킨 ´임대 트레이드´였고 팬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컸다.
바셋이라는 날개를 단 KCC는 쾌속 질주했다. 정규리그 막판 두 차례의 맞대결에서 KCC는 TG삼보를 모두 잡으며 높이 열세를 극복했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데 성공한 KCC는 TG삼보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4승3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청부사´ 바셋은 마지막 7차전에서 25점·15리바운드라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뽐내며 TG삼보 골밑을 초토화, 팀 우승을 주도했다. 대조적으로 모비스는 쓸쓸히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호프는 바셋을 대체하기에 너무 모자랐다.
▲ 지금은?
KCC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한 바셋은 그러나 바로 다음 시즌에서 불과 3경기 만에 퇴출의 비운을 맛보고 말았다. 외국인선수 자유계약제로 수준 높은 선수들이 수급되자 바셋의 위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반면, 모비스가 KCC로부터 얻은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은 전체 1순위가 되어 양동근을 지명하는 계기가 됐다.
양동근은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을 차지했고, 2년차 시즌에는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올 시즌에는 그야말로 물오를 대로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며 최정상급 가드로 우뚝 서며 모비스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모비스는 지난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올 시즌에도 정규리그 2연패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양동근이 있었고 세대교체 실패로 애태우고 KCC 입장에서는 양동근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⑤ 2005년 11월20일 - 조상현·황진원·이한권(SK)⇔방성윤·정락영·김기만(KTF)
김태환 감독을 영입해 우승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있던 SK는 예기치 못한 ´에이스´ 게이브 미나케의 무릎 부상에 따른 시즌아웃으로 비상이 걸렸다. SK는 해결사 공백에 시달려야 했고 강력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KTF는 슈터 부재와 얇은 선수층으로 추일승 감독의 고민이 깊었다.
이 때 방성윤이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방성윤은 NBA 진출을 위해 NBDL 로어노크 대즐에서 활약할 예정이었다. SK는 방성윤을 욕심냈고 KTF는 방성윤에게 SK행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방성윤의 대답은 OK. 방성윤은 KTF와의 몸값 조율 과정에서 감정이 틀어져 국내에서 뛸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SK가 거물급 스타들을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자신을 높이 평가하자 마음을 바꿔 국내복귀 및 SK행을 결심했다.
SK는 간판슈터 조상현과 주전급 식스맨이던 황진원을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방성윤에 매달렸다. 방성윤은 복귀하자마자 5연패를 당해 우려를 안겼지만 이내 폭발적인 득점포를 가동하며 SK를 이끌었다. KTF에서 건너온 정락영과 김기만의 활약상도 짭짤했다. 그러나 방성윤이 시즌 막판 불의의 대흉근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SK도 속절없이 무너졌고, 결국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KTF는 조상현과 황진원을 데려오면서 ´괴물센터´ 나이젤 딕슨을 영입, 전력 상승을 꾀했다. KTF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조상현이 다소 기대에 못 미쳤지만 황진원이 부상 투혼을 발휘해준 게 힘이 됐다.
▲ 지금은?
방성윤·정락영·김기만은 여전히 SK에서 함께 뛰고 있다. 2년차가 된 방성윤은 한동안 부상이라는 지긋지긋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지만 최근 컨디션을 회복하며 토종스타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SK는 문경은을 플레잉코치로 승격시키며 방성윤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다. 정락영과 김기만도 보이지 않지만 제 몫을 해내고 있다.
KTF는 조상현과 황진원 모두 FA로 풀렸지만 몸값이 높은 조상현 대신 ´살림꾼´ 황진원과 재계약하는 실리를 택했다. KTF는 2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전문슈터 부재에 시달리고 있어 LG로 떠난 조상현이 못내 아쉽다. 한편, 군에서 제대한 이한권은 백업포워드로 활약하며 KTF표 ´12인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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