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가 분기별 영업실적에서 다른 정유사들과 동떨어진 손익 사이클을 나타내며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경쟁사들이 일제히 큰 폭의 적자를 내던 시점에는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던 현대오일뱅크가 경쟁사들의 실적이 반등하던 시점에는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더딘 것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다른 정유사들과 비슷한 영업손익 추이를 기록하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의 경우 국제유가 하락과 수요부진, 공급과잉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는 4000억원대, 에쓰오일은 2000억원대 적자를 내는 등 일제히 부진에 빠졌다. 반면, 현대오일뱅크는 13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정유 4사 중 유일하게 흑자에 턱걸이했다.
하지만 올 1분기 들어 상황이 뒤바뀌었다. 국제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선 데다, 일부 해외 공장이 정기보수에 들어가며 공급과잉이 완화됐고, 저유가 기조로 석유제품 수요까지 확대되며 정제마진이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전분기 적자를 냈던 3사는 일제히 2000~3000억원대의 흑자로 반등에 성공했다.
2분기에도 정제마진 호재가 계속되면서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1조원에 육박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각각 6000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반등 시기에도 현대오일뱅크는 다른 길을 걸었다. 1분기 영업이익은 1000억원에도 못 미쳤고, 2분기 흑자는 2000억원을 겨우 넘겼다.
지난해부터 올 2분기까지 정유 4사의 영업이익 추이를 한 눈에 비교해 보면(표 참조) 다른 3사는 등락폭이 큰 반면 현대오일뱅크는 손익분기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산을 깎아 구덩이를 메운 모양새다.
현대오일뱅크가 다른 정유사들보다 생산능력이 떨어지고 비(非)정유부문 비중이 작다는 점을 감안해도 격차가 너무 크다.
정제능력에서 현대오일뱅크보다 바로 앞 순위인 에쓰오일(하루 66만9000배럴)의 경우 2분기 석유화학과 윤활기유를 제외한 순수 정유부문 영업이익만 468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에쓰오일의 60% 수준인 39만배럴의 정제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252억원을 기록했다.
◇나홀로 흑자 내더니 경쟁사 흑자 때는 상대적 부진 왜?
지난해 4분기 홀로 흑자를 기록할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그 비결로 재료비나 시설운영비, 원유도입 등 비용절감과 높은 고도화 비율을 꼽았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라는 반응이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원유를 정제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정유업체의 구조상 국제유가와 시장환경 등에 동일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실적 사이클도 비슷하게 움직이는 게 보통”이라며 “업체별 원가절감 노력에 따라 소폭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업황 사이클을 무시할 정도가 될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 비율이 업계 최고 수준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업황을 무시할 정도로 월등한 격차는 아니다. 현재 국내 4개 정유사의 고도화 설비 비율은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각각 36.7%와 35%로 비슷한 수준이고, 에쓰오일(22.1%)과 SK이노베이션(17.2%)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90%대 10%’의 차이라면 모를까 지금 정도의 차이는 실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설령, 현대오일뱅크의 원가절감 능력과 고도화 비율이 경쟁사 대비 월등하다 쳐도 경쟁사들과 동떨어진 실적사이클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의 원가 경쟁력이 월등해 다들 적자 낼 때 홀로 흑자를 냈다면, 다들 흑자를 낼 때는 흑자폭이 더 컸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올 1, 2분기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에대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올 2분기 정기보수로 고도화설비 가동을 한 달 동안 정지했다”면서 “고도화설비의 수익성을 감안한다면 2분기 영업이익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와 다른 정유 3사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인 ‘비정유부문 비중’도 이 회사의 동떨어진 실적 사이클에 더 큰 의문을 갖게 한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정유부문에서 적자가 날 때 다른 정유업체들은 석유화학과 윤활기유 부문에서 흑자를 내면서 어느 정도 적자 폭을 줄였다”면서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정유부문 비중이 절대적이고, 적자를 메울 다른 사업부문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데 그 와중에 어떻게 흑자를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지난해 4분기 적자 요인을 올 1분기로 미루는 방식으로 ‘12분기 연속흑자 달성’에 성공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표이사 교체 직후인 4분기 실적에서 적자를 기록하는 게 신임 대표이사 체제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해당 회사의 재무자료를 살펴보지 않는 이상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전분기의 적자 요인을 다음 분기로 미루는 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테면 12월 말에 나갈 비용의 결제일을 1월 초로 미루면 원래 당해 4분기에 반영될 비용이 이듬해 1분기에 반영되니, 다음 분기 흑자의 일부를 전분기로 땡겨 오는 셈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또다른 일각에서는 현대오일뱅크의 ‘연속 흑자에 대한 집념’의 배경이 기업공개(IPO)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자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올해 현대오일뱅크를 상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의 흑자 행진에도 불구, 비관적인 정유 업황 전망에 따라 다른 정유사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현대오일뱅크의 연내 기업공개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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