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한일관계' 미운 나라는 없다 두려운 나라만 있을뿐


입력 2015.06.22 08:59 수정 2015.06.22 09:14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

<굿소사이어티 칼럼>과거에 얽매어 미래 잃을까 두려워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정치 현명한 대응을

지난 2014년 11월 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얀마 국제회의센터(MICC)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의’기념촬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14년 11월 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얀마 국제회의센터(MICC)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의’기념촬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연합뉴스
한일 관계는 지금 대단히 적대적이다. 물론 적대적인 데에는 합당한 이유들이 다 있다. 일본이 한국을 잔인하게 지배했던 국가였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없으며, 과거사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들이다. 현재 한일 간 적대감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다. 한류에 열광했던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없으며, 한국인들이 일본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사람들도 한국을 미워하고 있다.

지금처럼 악화된 한일 관계가 방치될 경우, 그것은 곧바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독립,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한일관계의 악화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아니다. 한일관계 악화의 끝은 한미관계의 파탄으로 연결되니 문제다. 지금 미국이 한국,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목적은 같다. 21세기 초반인 현재 한미, 한일 동맹은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우리의 안보를 망친다

한일 갈등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효율성을 악화시키는 상황이 도래된다면 결국 미국은 하나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오히려 중국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과, 미국의 대 중국 견제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일본 중 누구를 택할까?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말’ 이 아니라 ‘총칼’로 일본과 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냉혹한 국가이익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감정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그들을 ‘미운 나라’ ‘좋은 나라’ ‘예쁜 나라’ ‘싫은 나라’ 등으로 구분한 후 외교정책을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층마저 그러면 안 된다. 국제정치에 미운 나라, 예쁜 나라란 없다. ‘두려운(무서운)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을 뿐이다. 2400년 전 세상을 살았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가르쳐 준 것이다.

물론 일본은 과거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적국이었지만, 1945년 패전이후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미국과 동맹관계를 체결한 이후엔 한국의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현재의 일본은 1945년 이전의 군국일본이 아니며 세계적으로도 안정된 민주주의국가다.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결코 전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도출된 국제정치학의 대(大)이론인 민주주의적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에 의하면 대한민국과 일본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현재의 일본은 우리의 적국이 아니다

유명한 논설위원 중 한 분이 우리나라의 외교 행태를 ‘중국에는 굴종적, 일본에는 적대적’ 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일본이 우리를 군사력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는 믿음에서 도출된 것이고 중국에 대한 굴종은 중국이 무서워서 그런 것 이었다면, 그것처럼 비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안보와 독립을 위해 우리나라가 두려워해야 할 나라는 독재정치와 공산주의를 유지한 채 힘이 부쩍 늘어난 중국이다. 중국을 미운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 미운 나라, 좋은 나라와 같은 기준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 박사는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중국에 굴종하던가, 일본과 협력하던가 혹은 핵무장을 통해 혼자서 살 방법을 강구 하던가 등 셋 중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한국의 안보정책 결정자라면 일본과 협력하는 방안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역사를 분석한 탁월한 저서에서 젊은 우리나라 학자 한 분은 “현재 한반도의 독립과 번영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국가를 굳이 들자면, 그것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정확하고 예리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세계가 인식하는 일본은 우리가 아는 일본과 다르다?

수많은 한국 국민들이 아베의 일본을 군국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 세계가 인식하는 일본은 판이하다. 일본의 국방비는 중국 국방비의 3분의 1 정도다. 중국이 지난 20 여년 동안 연 평균 16%의 국방비 증강을 보인데 반해 일본은 지난 10여년 동안 국방비가 오히려 감소되고 있었다. 아베가 재집권 한 후 첫 해 0.8%, 다음 해 2.8% 국방비가 증액 되었다.

같은 기간 중국 국방비는 매년 10%이상 증액되었다. 미국의 전문가는 일본의 군사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 라고 분석하고 있으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위대를 다른 모든 나라들이 갖추고 있는 것과 같이 국군(standing army)으로 전환시킨 애국적 일본(patriotic Japan)은 동북아시아 안보에 보탬이 될 것” 이라고 썼다. 타임지도 일본 특집호에서 아베를 애국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아베는 2020년까지도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

미국의 허드슨 연구소는 아베 총리에게 ‘평화상’을 수여했으며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아베를 2014년 다보스 포럼 최고의 국가지도자로 선정했었다. 미국인들은 수년 전 여론조사에서 일본을 캐나다, 영국 다음으로 호감 가는 나라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4월 하순 아베의 미국 방문을 우리의 관점에서 해석, 아베 외교를 실패작이요, 졸작인줄 알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물론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아베의 방미 결과를 지지하고 환영했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주일 미국대사 캐롤라인 케네디(Caroline Kennedy) 도 아베가 미국 방문 중 행한 연설을 지지할 정도다. 미국은 지금 일본 자위대와 하와이, 캘리포니아에서 상륙작전 연습조차 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고 호주는 일본제 잠수함을 구매할 계획이다.

인도와 일본은 더 이상 가까울 수 없을 정도이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동남아 국가들 대부분이 일본에 우호적이다. 필리핀과 일본은 합동 군사훈련을 벌일 정도다. 우리와는 전혀 달리 세계는 중국을 두려워한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김정은이 아베를 히틀러라고 칭했다는 것을 크게 보도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 필리핀 대통령이 시진핑을 히틀러라고 칭했다는 사실은 잘 보도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가 과거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 국민 중 일본이 지배하던 마지막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70세가 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일본에 꿀릴 일도 전혀 없다. 슬픈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지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이 주장에 반대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이 “어떤 사과를 해야 진심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냐?” 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 줄 것인가? 문제는 일본의 사과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주관적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오로지 국가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국제정치는 원래 도덕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일본 대지진을 우리가 당한 일처럼 애통해 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적들도 친구가 되고 친구도 적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문제가 되고 중국의 역사 왜곡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라 보며 한국전쟁은 제국주의와 맞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괜찮은 것인가? 중국과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는데 일본과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감정론일 뿐이다.

이 같은 왜곡이 초래할 대한민국 국가안보의 파탄 상황을 생각해 보자.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한 한미동맹에서 일본이라는 군사 기지는 필수적인 전략 요충이다. 한국 전쟁 당시 일본이라는 기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때 이미 북한에 의해 적화 통일 당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북한에 대한 한미동맹의 억지력을 대폭 약화시킬 것이며, 궁극적으로 일본은 물론, 미국마저도 적대 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위태로운 일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더 이상의 적대관계 지속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 하는 것이다.

글/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