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감동 실화?…아쉬움만 가득한 '연평해전'

부수정 기자

입력 2015.06.04 09:09  수정 2015.06.04 21:06

김학순 감독 연출…김무열·진구·이현우 주연

대국민 크라우드 펀딩…7년 제작 끝에 개봉

배우 김무열 진구 이현우 주연의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 NEW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열리던 날 오전 10시.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순간, 북한 경비정 684호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했다.

조타실에서 피를 쏟던 한상국 중사(진구)는 자신을 도우려는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에게 "내가 배 살릴 테니까 넌 가서 사람 살려"라며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키를 붙잡는다. 참수리 357호를 이끄는 윤영하 대위(김무열)는 온몸에 총알이 박혀 숨이 멎을 때까지 대원들을 독려한다. 30분간 이어진 치열한 격전으로 참수리 357호는 침몰하고 우리 군에서 전사자 6명, 부상자 19명이 나왔다.

영화 '연평해전'은 '잊혀진 전투'라 불리는 제2 연평해전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 연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2003)'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김학순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영화는 참수리 357호의 정장 윤영하 대위, 누구보다 헌신적인 조타장 한상국 중사, 따뜻한 의무병 박동혁 상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반부 1시간 10분 동안 이들이 지닌 갖가지 사연과 가족 이야기, 끈끈한 전우애를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해군 출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촉망받는 해군 장교로 성장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보내는 모습에선 애틋함이 묻어난다.

클라이맥스는 후반부 30분에 달하는 전투 장면이다. 실제 교전 시간과 거의 같다. 평화롭던 참수리 357호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가고 미소 짓던 대원들의 얼굴은 피범벅이 된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총·대포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부짖듯 들린다.

전투신은 한국 영화 최초로 3D로 제작돼 당시 치열했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작진은 고속정 세트를 실물 크기로 제작하는가 하면, 진해 해상에서 고속정 촬영을 진행했다. 김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인 '리얼리티' 때문이다.

배우들은 무난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진구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실제로 연평해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해군을 전역했다. 특유의 강렬한 눈빛과 남자다운 모습이 한상국 하사와 잘 어울린다.

'연평해전'은 당시 온 국민이 열광했던 한일 월드컵과 꽃다운 청춘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을 대비시키며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살린다. 김 감독은 "모두가 월드컵 열기에 들떠있던 그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배우 김무열 진구 이현우 주연의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NEW

영화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부분도 등장한다. 후반부에 나온 장례식장 장면에서 대통령이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일본으로 향했다는 뉴스가 그렇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정치적 해석은 아니다. 한쪽에선 축제 분위기인데 한쪽에선 죽어가는 상황을 담은 것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당시 사회 분위기를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기획 의도는 의미가 있지만 아쉽게도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썩 탄탄하지 못하다. 일단 초반부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 지루하다. 각 대원의 사연을 풀어내는 것도 매끄럽지 않다. 이후 후반부 전투신과 유가족, 합동 영결식 등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식이다.

휴먼 감동 실화라는 장르를 표방했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도 저도 아닌 이 어정쩡한 이야기는 뭐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일반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강력한 한 방이 부족하고 영화의 특색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섬세하고 정교한 연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평해전'은 전우애, 가족 간 사랑, 대원들의 숭고한 희생 등 여러 이야기를 '휴먼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강조하면서 삐걱거린다. 더 잘 만들 수 있는 작품인데도 이야기를 팽팽하게 이끌어 나가는 힘을 잃어 아쉬움만 남긴다.

영화는 극장에 걸리기까지 지난한 길을 걸었다. 제작비가 부족해 크랭크인이 미뤄졌고 메인 투자자였던 CJ E&M이 빠지면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출연진이 바뀌었고 시나리오도 수정됐다.

이후 대국민 크라우드 펀딩(인터넷 모금)을 통해 7년의 제작 기간과 6개월의 촬영 기간 끝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순제작비 60억원 가운데 20억원이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 등으로 모였고 7000여명에 달하는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들이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6월 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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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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