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천룡사지(天龍寺址), 국운(國運)과 같이하는 절터

입력 2006.11.14 09:40  수정

-가을 햇살아래 고위산 천룡사지에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가을볕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삼릉 계곡을 따라 길을 잡으면 경주 남산 오르는 길에는 삼국시대의 대표적 걸작인 배리삼존불, 통일신라기에 조성된 풍만한 모습의 냉골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입상, 선각육존불, 고려 초기의 마애여래좌상, 그 외 석조여래좌상, 선각마애여래상을 볼 수 있다. 남산에서 처음 이쪽으로 길을 잡는 이유는 이른 아침 삼릉 주위의 짙은 소나무 숲의 모습을 보면서 솔향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과 가장 많은 남산의 유적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한다.

고위봉 가는 길의 남산 풍경 하나
 
이 계곡 정상에서 다시 길을 남쪽으로 돌려 금오산 지나 고위봉 까지 가다보면 가을 정취를 바위산 틈틈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구절초와 쑥부쟁이 간간이 남아있는 마타리나 물봉선, 고마리와 미역취, 절굿대 등의 야생화가 눈을 기쁘게 해주고 서걱거리며 발끝에 차이는 조릿대가 계절에 관계없이 싱싱하다.
 
남산이 남산다운 이유는 바위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풍경에 국한하는 것도 아니고, 유적 하나에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바위로 이루어진 아담하고도 당당한 기세의 산과 유적이 어우러짐으로서 비로소 남산은 남산답게 되는 것이다.
 
삼릉을 올라 남쪽으로 길을 잡아 가다보면 용장사지 지나고 신선암 지나 경주 남산의 제1봉인 고위봉(高位峰, 494m) 에 오를 수 있다.  중간 중간 산의 동, 서쪽으로 툭 트인 산 아래 경주를 조망할 수 있어서 해발에 비해 높아 보인다.

고위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룡사지
 
멀리 경주의 원경을 봐가며 도착한 고위봉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힘주었던 발목을 문지르다 서편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산 중턱에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닌데 수 만평에 이르는 넓은 평지가 있다. 해발 300미터 지점에 있는 바로 이 골자기가 천룡사지 절터가 있는 천룡골이다.
 
고위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남산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천룡골은 와룡골과 틈수골의 개울이 합쳐져 기린내(麟川)로 흘러드는 계곡인데 전체적으로 약 6만 여 평의 약간 경사진 분지가 형성되어 있어서 천연 요새로의 기능이 있으며 절터로서도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삼국유사 천룡사편에 천룡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통일신라시대에 중국 당(唐)나라 사신 악붕구(樂鵬龜)거사가 와보고 말하기를 「이 남산인 금오산 중 고위산 천룡사가 파괴 되면 곧 나라가 망하리라」하였다. 신라 말엽에 이 천룡사가 파괴되니 신라가 망하였다고 한다.
 
고려 초 정광 최 제안 공이 고려를 위하여 중창하였는데 고려 말에 이 천룡사가 파괴되더니 고려가 망하였다고 한다. 천룡사란 이름은 최재안의 두 딸 이름을 따온 것으로 큰딸은 천녀이고 작은딸은 용녀였다고 하며 두 딸을 위해지은 절이어서 천룡사라고 하였다는 일설이 있다.
 
조선 초기 무학자초(無學自超)대사가 제자를 보내어 조선왕조를 위해 3창하였는데. 조선 말엽에 이 천룡사가 파괴되더니 조선이 망하였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사찰이다.

서로 친구하는 삼층석탑과 살구나무
 
산봉우리에서 내친걸음으로 천룡골로 내려서니 잘 가꾸어진 채소밭이 대부분의 분지를 메우고 남쪽 편으로 7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는 천룡사 절터가 고위산을 북동쪽 병풍자락으로 삼아 자리 잡고 있다. 
 
절터로만 남아 방치되어져 오다가 1991년에 도문스님의 발원으로 9세기에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천룡사탑을 복원하였다.  또한 97년 경주 신라문화연구소의 발굴작업으로 인해 천년 흥망의 역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복원된 탑 주위에서 노출된 석재들은 현재 천룡사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북쪽에 모여 있었고 탑 북서편 약 15m 지점에서는 발굴 전 이미 지대석과 면석을 갖춘 기단석열이 일부 노출되어 있었다. 이후 발굴조사구역의 주변지역에는 건물지에 사용된 많은 석재들이 표토에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신라, 고려 유적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기와조각도 상당수 발견됐다.
 
아직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한낮 절터에는 햇볕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절터 옆에는 근래에 축조된 조그마한 법당과 요사채를 지닌 천룡사가 있다. 대충 갖춘  시끄러운 법문 테이프를 너무 크게 틀어서 오히려 고즈넉해야 할 산사의 분위기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으며 뚜렷하게 남은 3층석탑 발밑까지 밭을 일구어 놓아 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러나 3층석탑 우뚝한 서편에 탑보다 키가 훨씬 큰 살구나무가 아직 잎 싱싱하게 서 있어서 절터 속에 서 있는 내 눈이 다 푸르고 그 주위로 토끼풀이나 강아지풀이 빈터를 메우고 있어서 얼마든지 상상 가능한 절터의 여백과 공간이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다. 탑 지척 옛 절터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무아래에 앉아 소슬한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고 과일 한 입 베어 문다.  

고위봉을 배경으로 한 천룡사지 3층석탑
 
천룡사 삼층석탑(보물 1188호)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너져 있던 이 탑은 1990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발굴팀에 의해  단층기단의 3층석탑임을 확인하였고 1991년 기단의 일부와 상륜부의 대부분이 소실된 형태로 복원되었다. 또한 올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 윤근일)는 경주시 의뢰로 ‘경주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 주변 배수로 정비부지 내 유적’을 발굴해 1층 탑신석의 결실된 부분을 축대석 사이에서 찾아내 석탑 원형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얻었다.
 
기단의 구성이 두개의 바깥기둥과 하나의 안 기둥 양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나 탑신의 몸돌 아래에 새긴 굄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점, 지붕돌의 낙수면이 경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기단 갑석은 2단이나 무게가 덜해 보이며 좁은 듯 한 인상을 주고 몸돌은 1층의 것에 비해 2. 3층의 것들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산 중에 있는 탑에서 흔히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여기 남산에서도 용장사지 3층 석탑이나 늠비봉의 탑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인다. 각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이고 2, 3층의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무거운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균형감은 오롯이 살아난다.
 
특히 뒤의 고위산을 배경으로 3층 석탑을 앞에 두고 보면 구름한 점 없는 하늘과 소나무 숲의 호위를 받고 늠름하게 서있는 탑이 당시 신라의 한 풍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가슴 설렌다.

석등 부재를 포함한 천룡사지 흔적들
천룡사지 수조
 


















탑의 동남쪽 풀섶에는 아직 당시 절터의 일부였던 석부재들이 산재하고 있다. 특히 연화문 뚜렷한 석등의 아래둥치나 그 외 주춧돌과 같은 것들이 아직 시들지 않은 녹색의 풀과  어우러져 한껏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데 그 뒤로 키 큰 살구나무가 그늘 만들 준비를 하고 절 마당 끝에는 물이 마른 수조가 햇살만 가득 담고 있다.

천룡사지, 목 잘린 귀부
 
석탑 남쪽 오래된 민가 마당에는 석탑의 귀부였던 목 잘린 거북 한마리가 등을 보이고 있다. 꼬리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는 듯 옆으로 꺾어두고 네 발로 땅을 지탱하는 모습이다. 등에는 직육각형의 등껍질이 얇게 선조되어 있으며 등 가운데로는 마치 등뼈가 있는 듯이 도드라져 솟아있다. 등 가운데 비석을 세웠던 자리 주위에는 꽃심 모양이 돋을새김 되어 있고 네 장의 꽃잎 형태의 조각이 거북 등을 덮고 있다. 이 곳 남산에는 부처님 머리만 다 잘려나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외진 곳에 숨어 있는 거북 머리까지 잘려나갔다.
 
이 절터를 비껴가면 또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한참 걸어야 평지에 도착할 터, 이곳저곳 서성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절터 아래를 빗겨 가로질러 가는 사이 민묘가 근사하게 자리 잡은 곳에도 연화대좌가 뒹굴고 있다. 도대체 이곳 남산에는 얼마나 많은 절터들이 있단 말인가?

가을이 아직 많이 깊어지기 전의 산에는 눈을 뜨고 잘 살피면 꽃들이 많다. 어느 틈엔가 물봉선 들이 여기 저기 얼굴을 내밀더니 경사 길에서 한 번 엉덩방아 찧고 난 뒤부터의 하산 길에는 젖은 분홍빛 물봉선 들이 군락을 이루고 조금이라도 물 고인 자리에는 고마리 제 얼굴을 비추고 있다.
 
물봉선
고마리











절터를 찾는 일은 즐거운 일이고 잠시나마 마음자리 편안하게 해주어서 좋다. 단지 즐겁고 편안한 기분만 갖고 오는 건지, 저기 물봉선처럼 아니면 제 얼굴 고인 물에 비추는 고마리처럼 오늘 남산자락 천룡사 절터 빈 공간에 내 얼굴 그대로 비추어 보고 오는 것인지...
 
아직 베지 않은 나락들의 색깔이 선명하고 햇살이 좋은 남산 녘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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