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폭스바겐, 중국車에 무릎 꿇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12.21 07:30  수정 2025.12.21 07:30

폭스바겐, 창사 88년 만에 독일 내 드레스덴 공장 생산중단

중국시장 판매 부진·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부진 탓

高비용 구조·전기차 전환 트렌드 읽지 못한 ‘필연적’ 결과

지출줄이고 영업이익 끌어올릴 방안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지난 5월14일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전기차인 ID.3를 조립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독일 최대 완성차 기업인 폭스바겐이 ‘인해(人海)전술’식으로 밀어내는 중국 자동차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백기’를 들었다. 과거 세계 자동차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폭스바겐이 창사 88년 만에 독일 내 드레스덴 공장의 문을 닫은 것이다. 최대 자동차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데다 전기차 수요 감소 등으로 수년째 실적 부진이 이어진 데 따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16일부터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 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했다고 AFP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1937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폭스바겐이 독일에서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폭스바겐그룹 매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부진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의 ‘덤핑 판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1년 설립된 폭스바겐 드레스덴 공장은 축구장 4개 정도인 2만 7500㎡(약 8318평) 규모로 크지 않아 ▲소량 조립 ▲일반 소비자 대상 각종 체험 프로그램 제공 ▲차량 테스트 등에 활용됐다. 지금까지 누적 생산량이 20여만대에 그치는 소규모 공장이다. 폭스바겐의 주력 공장인 볼프스부르크 공장 연간 생산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폭스바겐이 당초 드레스덴 공장을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쇼케이스’ 용도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드레스덴 공장은 전 세계 자동차 공장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환경친화적인 공장으로 평가받을 만큼 폭스바겐의 자부심이었다.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체 벽면이 유리로 만들어져 ‘유리 공장’으로 불렸다. 작업장 바닥은 원목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10월28일 독일 중부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 본사 앞을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더욱이 제조와 생산 현장에 마룻바닥을 갖춘 곳은 전 세계에서 드레스덴 공장이 유일하다. 이 바닥에는 자율주행 운송시스템이 적용됐다. 생산 과정에서 재생 가능한 100% 친환경 전력을 사용해 연간 3600t의 이산화탄소(CO₂)를 절감한다. 생산시설은 방문객들을 위해 개방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모빌리티(이동수단)의 이동성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제품 전문가를 만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다.


설립 이후 2016년까지 폭스바겐의 플래그십(주력상품 또는 대표상품) 고급 세단 페이톤을 조립했다. 전기자동차 e-골프(e-Golf) 등을 생산하고 최근에는 주로 전기차 ID.3를 제조하는 등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거점 역할을 해왔다. 폭스바겐은 드레스덴 부지를 드레스덴공과대학에 임대해 AI와 로보틱스, 칩을 개발하는 연구캠퍼스로 활용할 예정이다. 드레스덴공과대학과 산학협력으로 앞으로 7년 동안 5000만 유로(약 865억 7000만원)를 해당 프로젝트에 투자키로 했다. 소비자들에게 폭스바겐 차량을 인도하는 시설 및 관광지로도 활용한다.


드레스덴 공장 폐쇄는 지난해 10월 노사가 합의한 구조조정에 따른 조치다. 폭스바겐은 오는 2030년까지 독일 내 차량 생산 규모를 73만 4000여대 줄이기로 했다. 지난해 전체 생산량의 8.2%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폭스바겐은 오스나브뤼크 공장 생산도 2027년까지 중단할 계획이다.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일부 생산 라인도 멕시코 푸에블라로 옮긴다.


폭스바겐 노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독일 내 일자리를 3만 5000개 이상 줄이기로 합의했다. 독일 직원 12만 명의 30%가량 되는 규모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브랜드담당 최고경영자(CEO)는 드레스덴 공장 폐쇄와 관련해 “경제적 관점에서 필수적인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가 2022년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포르쉐 기업공개(IPO) 행사 도중 독일 주가지수 DAX 차트를 배경으로 서 있다. ⓒ AFP/연합뉴스

폭스바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에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로 읽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내연기관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선도한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을 미루다가 테슬라 등에 기술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특히 지나치게 중국 시장에 의존하다가 비야디(比亞迪·BYD) 등 중국산 자동차가 내수 시장을 장악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즉 내연기관 시대의 경쟁 우위에 안주하면서 기술 혁신과 변화를 거부한 탓에 미국과 중국이 이끈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에서 뒤처지게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생산 인력과 시설 상당 부분이 독일에 집중된 탓에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전기차 전환을 맞닥뜨렸고 신차 개발 지연과 시행착오까지 겹치며 대응이 늦어졌다. 실적 악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요인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3분기(7~9월) 10억 7000만 유로의 세후 순손실을 기록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 창궐 초반인 2020년 2분기 이후 5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낸 것이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3.6%에서 올해 3분기 –1.6%로 뒷걸음질 쳤다. 폭스바겐의 실적 악화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폭스바겐그룹 매출의 핵심 축인 중국 시장에서 극심한 부진을 면치 못했다.


ⓒ 자료: 폭스바겐그룹

올해 1~9월 폭스바겐의 중국 내 차량 인도량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2% 이상 감소했다. 전기차만 보면 같은 기간 40% 이상 줄어 8만 5000대에 머물렀다. 비야디와 샤오미(小米) 등 중국 토종 브랜드의 ‘제 살 깎아먹기’식 공세에 폭스바겐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폭스바겐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수익원)였던 포르쉐도 휘청거렸다. 올 3분기 9억6600만 유로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된 이후 첫 분기 손실이다. 역시 중국 시장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감소하는 바람에 치명상을 입었다. 포르쉐가 야심차게 추진한 배터리 자회사 셀포스의 청산 영향도 컸다.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지 못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 탓이다.


중국 시장 판매 부진에도 폭스바겐이 중국 공장 대신 독일 공장을 폐쇄한 것은 비용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공장은 독일보다 인건비와 고정비가 싸다. 생산량 조정도 비교적 유연하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은 최근 위기가 중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제때 내놓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중국에서 철수 대신 전략 수정과 현지화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도 폭스바겐 수익성을 끌어내리는데 한몫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올 상반기 유럽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폭스바겐은 올해에만 추가 비용이 최대 5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협상 타결로 유럽산 차가 미국에 수출될 때 붙는 관세가 15%로 낮아졌지만 상당한 비용 부담은 불가피하다.



ⓒ 자료: 폭스바겐그룹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이어지는 와중에 미국과 유럽에서 내연차 판매금지 시한을 연장하는 움직임도 폭스바겐의 악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려던 방침을 철회하기로 했다. 중국과 경쟁 중인 유럽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인데, 오히려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과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 증권사 번스타인 스티븐 라이트먼 애널리스트는 “내년 현금흐름에도 분명히 압박이 있을 것”이라며 내연차 판매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추가적인 신규 투자가 필요해진 가운데 폭스바겐이 광범위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폭스바겐이 지출을 줄이고 영업이익을 끌어올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단기간 내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폭스바겐의 연간 순이익이 52억 유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124억 유로)에 비해 순이익이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추산이다. 모리츠 크로넨베르거 유니온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매니저는 폭스바겐이 투자 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부 프로젝트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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