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챔스 우승 이후 뚜렷하게 달라진 행보
로만 구단주의 오른팔, 합리적 이적시장 거래
최근 첼시의 미드필더 에덴 아자르(24)는 소속팀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5년 6개월, 주급은 종전 10만 파운드(약 1억 6800만원)에서 두 배 오른 20만 파운드(약 3억 3700만원)를 받게 된다.
첼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자르의 재계약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첨부된 사진에는 한 여성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아자르의 모습이 담겼다. 많은 축구팬들은 이 여성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첼시를 이적시장의 거상으로 발돋움 시킨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39) 이사였다.
2012년 첼시의 챔스 우승, 이후의 방향성
첼시는 2011-12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3년 러시아의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지 9년째 되는 해에 일군 성과였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자신의 꿈인 빅이어를 들어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선수영입 자금을 이적시장에 쏟아 부었다. 첼시의 투자는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수많은 우승 트로피 수집으로 이어졌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많은 감독들이 파리 목숨을 이어갔고, 이적시장의 물을 흐린다며 비난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첼시는 챔스 우승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첼시의 이후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다음 목표는 ‘명문 구단 첼시’였다. 그러면서 그는 생소한 인물을 구단 수뇌부에 앉혔다. 바로 그라노브스카이아였다.
캐나다계 러시아인인 그라노브스카이아는 1997년 모스크바 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러시아의 석유 메이저 회사이자 아브라모비치가 대주주로 있는 시브네프트에 입사했다. 그녀는 지난 17년간 아브라모비치의 비서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아브라모비치는 그녀에 대해 “나의 오른팔”이라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첼시 구단주 비서가 직책이었던 그라노브스카이아는 2013년 6월, 전격 첼시 보드진에 합류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첼시 CEO였던 론 굴레이가 팀을 떠나자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추가 이사진 영입 없이 그녀에게 전권을 줬다.
먼저 첼시는 2012년 챔스 우승 이후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고 때마침 UEFA는 재정적페어플레이(FFP) 규정을 내밀었다. 굴레이 전 CEO는 이를 지키기 위해 긴축재정에 들어갔고, 첼시는 맨체스터 시티, PSG와 달리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라노브스카이아도 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뛰어난 수완으로 이적시장과 재계약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라노브스카이아는 선수 영입과 방출에 있어 한 가지 기준을 세웠다. 바로 나이였다. 영입 선수는 전성기를 맞이하는 23세에서 27세 선수들로 국한됐고, 눈여겨본 선수는 서면이나 전화가 아닌 직접 해당 구단으로 찾아가 정성을 보이는 방식이었다.
또한 나이 많은 선수들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특히 30세 이상의 선수들에게는 팀 내 위치를 막론하고 1년짜리 재계약서만을 내밀었다. 이에 프랭크 램파드, 애쉴리 콜이 팀을 떠났고, 주장인 존 테리가 울며겨자먹기로 사인한 일화가 유명하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라노브스카이아의 정책은 지금까지 대성공이다. 첼시의 1군 스쿼드는 올 시즌 EPL 20개 구단 중 세 번째로 나이가 어린 25.8세에 불과하다.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리그 2위 맨체스터 시티가 29.5세인 점을 감안하면 첼시의 미래가 더 밝다고 할 수 있다.
선수의 마음을 움직여 이적료를 최대한 낮춘 반면, 방출 선수들은 언론 등을 이용해 몸값을 크게 불렸다. 다비드 루이스를 역대 수비수 최고액에 PSG로 넘긴 것은 물론 지난 1월에는 독일 언론을 이용해 안드레 쉬얼레를 원하는 볼프스부르크 구단을 애태웠다.
그라노브스카이아의 최대 실적은 역시나 무리뉴 감독을 다시 데려온 일이었다. 무리뉴 감독 설득에 성공한 그라노브스카이아는 현장과 보드진의 역할을 철저하게 구분했고, 감독의 의중을 반영해 올 시즌 디에고 코스타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무리뉴 감독도 예전과 달리 선수영입과 관련된 말수를 줄인 점이 눈에 띈다.
영국 현지에서는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에 대해 ‘Tsarina Marina(여황제 마리나)’로 부를 정도다. 그만큼 그녀의 권한은 막강하며, 그녀의 목소리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단의 전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라노브스카이아의 선택은 무척 합리적으로 평가 받는다. 여황제의 행보가 명문 구단의 초석을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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