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ad Greece 28>최고를 향한 인간들의 최선의 경연이 올림픽의 정신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올림피아 성역은 제우스신을 숭배하는 종교의 성지였다. 성지를 참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영광에 대해 감사하고 앞날의 가호를 기원했다. 감사와 기원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봉헌이다. 전쟁에서 승리하였거나, 올림피아 제전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을 때, 또는 국가와 가문에 큰 경사가 있을 때 그리스인들은 자신이 숭배하는 신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나 값진 보물을 아낌없이 바쳤다. 그들은 전쟁에 앞서 승리할 경우 바칠 봉헌을 미리 약속하기도 했다.
신에게 바친 승리의 전리품들
전쟁에 승리하였을 때의 봉헌은 대부분 적에게서 노획한 무구(武具)와 보물들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많이 봉헌되었던 무구들은 청동으로 만든 투구, 흉갑, 방패, 창과 칼, 정강이보호대 등이다. 그리스의 중장보병들의 휴대무기들은 자유 시민 스스로 구비해야 했다. 상당한 경비가 소요되었던 만큼 일정한 재산을 갖추지 않으면 중장보병이 되기 힘들었다. 무구들은 소유자의 지위나 재력에 따라 화려하게 치장되거나 정교한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전사에게 무구는 영혼과도 같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거나 물리친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적의 무구를 벗기는 일이다. 전사의 무구가 적에 의해 강제로 벗겨진다는 것은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을 생전엔 결코 허용할 수 없지만 죽음은 자신의 치욕을 인식하지 못한다. 적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 아군에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그 영광의 증거물을 신에게 바치는 행위는 그 영광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희망이다.
올림피아 성역의 신전 곳곳에는 이러한 승리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봉헌 무구들이 신전의 벽면이나 보물창고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오랫동안 올림피아 성역을 채웠던 숱한 봉헌물들은 대부분 약탈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러 종류의 무구들이 적지 않게 남아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봉헌 무구는 정교한 그림이 새겨진 청동흉갑과 청동방패다. 청동흉갑에는 신성한 상상의 동물과 스핑크스, 그리고 리라를 연주하는 남성과 다섯 명의 남녀가 새겨졌다. 남성과 여성의 상의와 치마에 새겨진 기하학 문양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피 튀기는 전쟁터에 나서는 전사가 입는 갑옷에 매우 정서적인 그림이 새겨졌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리스 예술인들의 주체할 줄 모르는 예술적 정열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방패 장식으로 애용된 메두사의 머리
고대 그리스의 청동방패의 장식 문양으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아마 고르곤(Gorgon)의 머리일 것이다. 고르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세 자매다. 스텐노(Sthenno), 에우리알레(Euryale), 메두사(Medusa)가 그들이다. 이 괴물 여인들은 멧돼지의 어금니 같은 큰 이빨과 머리털이 무수히 많은 뱀으로 뒤엉킨 형상을 했다. 세 자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여인은 메두사다. 고르곤이 메두사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는 메두사가 괴물로 변한 사연을 두 가지로 전해준다. 하나는 메두사가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겁탈을 당했고, 이를 안 아테나가 벌을 내려 그녀를 괴물로 변신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메두사가 그 아름다움으로 아테나와 경쟁하다 아테나의 벌을 받아 머리칼이 뱀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두 가지 모두 그럴 듯한 이야기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이와 관련된 신화를 압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녀(메두사)는 전에 빼어난 미인이었고, 수많은 구혼자들의 희망이자 시기의 대상이었소. 그녀는 다른 부분도 아름다웠지만 머리털이 가장 매력적이었소. 그릴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나는 만난 적이 있소. 하나, 시람들이 말하기를, 바다의 지배자(포세이돈)가 그녀를 미네르바(아테나)의 신전에서 겁탈했다고 하오.
그러자 유피테르(제우스)의 따님(아테나)이 돌아서서 정숙한 얼굴을 아이기스(갑옷)로 가렸소. 그리고 그런 행위가 벌받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신은 고르고의 머리털을 흉측한 뱀 떼로 바꿔버렸소. 지금도 여신은 겁에 질린 적들을 두려움으로 놀라게 하려고 가슴 위에 자신이 만들었던 뱀 떼를 차고 다니지요.”(Ⅳ 794~804)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은 신전을 더럽히는 일로 절대 금기시하던 일이었다. 메두사가 자의든 강제에 의했든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면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것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아테나가 메두사와 미(美)를 다투다 벌을 내렸다는 신화도 개연성이 높다. 아테나는 자신과 베 짜기 경쟁을 벌여 자기보다 탁월한 솜씨를 보인 아라크네(Arachne)를 영원히 집을 짓는 거미로 변신시킨 적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괴물로 변한 메두사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누구든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돌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훗날 페르세우스(Perseus)는 메두사를 직접 바라보지 않고 아테나가 준 방패에 비친 그녀를 처지한 후 그 머리를 잘라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게 된다. 그때 임신하고 있던 메두사의 몸에서 날개가 달려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천마(天馬) 페가소스(Pegasos)와 황금칼을 든 거한 크리사오르(Chrysaor)가 튀어나온다. 포세이돈이 죽어가는 메두사의 피에서 자기 자식들을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메두사의 머리는 아테나 여신의 흉갑에 장식된다. 메두사의 얼굴은 적들에게 공포를 자아낸다. 적을 겁주고 물리치는 형상으로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전사들이 흉갑에 메두사의 얼굴은 새기는 이유는 메두사의 머리를 적을 제압하려는 주문처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방패와 흉갑에 새겨지는 메두사의 머리는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뱀의 머리카락 형상을 하기도 하고, 날개를 단 괴물의 형상을 하기도 한다. 날개 달린 메두사는 천마 페가소스의 이미지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시칠리아 트리나크리아의 기원은?
멧돼지의 어금니를 하고 뱀의 머리칼을 가진 전형적인 메두사의 머리 형상에 날개가 세 개 단 청동방패가 흥미를 끈다. 올림피아에 봉헌된 이 청동방패의 형상이 트리나크리아(Trinakria)의 이미지와 너무나 닮았다. 시칠리아의 트리나크리아는 메두사의 머리에 세 개의 다리를 단 형상이다. 이 방패의 그림은 시칠리아 섬의 상징이 되고 있는 트리나크리아의 가장 오래된 모티브가 아닐까.
사실 트리나크리아의 세 개의 다리가 언제 어떤 기원에 의해 생겨났는지 아직 정설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칠리아 섬의 모양이 삼각형에 가까워 이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메두사의 자식인 페가수스의 날개가 메두사와 결부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날개달린 메두사 형상의 방패 그림이 트리나크리아의 기원이 되지 않았을 추정해 보는 이유다. 이 방패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를 카르타고의 위협에서 구해내 자유의 도시로 만든 코린트 인들이 봉헌한 것은 아닐까하는 상상까지 해본다.
청동의 봉헌물들, 페가소스, 그리핀, 스핑크스...
올림피아 성역의 신전에 봉헌되거나 신전 건물을 장식하는 데 자주 쓰인 것은 그리핀(Griffon)이다. 그리핀은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 형상을 한 상상의 괴물이다. 그리핀은 황금을 밤낮없이 지키는 상서로운 괴물이었으니, 신전과 신의 영광을 지키는 상징으로 쓰였던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핀은 주로 청동 세발솥 등을 장식하는 등 여러 유물을 장식하는 프로톰(protome)으로 자주 쓰였다.
봉헌물에 담긴 신화
올림피아 성역의 신전들에 봉헌된 작품들은 신화와 연결된 것이 적지 않다. 카이네우스(Caineus)의 활약상이 묘사된 청동 장식물도 그런 예다. 카이네우스는 테살리아의 왕 엘라토스의 딸로 태어났지만,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성전환자인 셈이다. 그는 라피테스족(族)의 왕 페이리토스와 히포다미아의 결혼식 때 난동을 부린 켄타우로스들은 물리친 영웅이다.
켄타우로스와 라피테스족은 전투에서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도 크게 활약했다. 이 신화는 그리스 여러 도시의 신전 메토프 장식 부조로 즐겨 사용되었고, 이후에도 다양한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카이네우스가 두 명의 켄타우로스를 칼로 죽이는 장면이 묘사된 청동 장식은 희귀한 작품이다. 두 명의 켄타우로스가 나무를 뿌리 채 뽑아 카이네우스를 협공하는 가운데 동시에 카이네우스의 칼이 켄타우로스의 하반신 중앙을 깊게 찌르고 있는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그리스신화에는 제우스신의 다채로운 사랑 얘기가 자주 나온다. 제우스신은 여신들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인간 여인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제우스신이 인간 여인과 뿌린 숱한 염문의 결과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다. 제우스신이 연계된 신화를 빼면 그리스신화의 흥미가 반감될 정도로 제우스신의 사랑의 방랑은 숱한 화제를 만들고 파생되는 영웅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신의 자손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싶었던 왕족과 귀족들의 욕망이 제우스신을 천하의 난봉꾼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제우스신의 자식이 되는 순간 평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의 핏줄을 타고난 위엄을 갖춘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한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스 영웅들이 저마다 신의 아들을 자처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제우스의 아들이었느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인에게는 신들의 자식이라는 신화 그 자체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자부가 그를 걸출한 영웅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제우스신은 여인들만 사랑했던 게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소년에게도 사랑을 느꼈다. 그가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Ganymede)를 납치해서 자신의 시동(侍童)으로 삼은 것은 또 다른 사랑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동성애의 연원을 제우스신와 가니메데의 사랑으로 삼고자 했던 것 같다.
테라코타(terracotta)로 조상된 가니메데를 납치하는 제우스신상은 이 신화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유일한 작품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런데 납치하는 제우스신이나 납치당하는 가니메데의 얼굴 표정이 전혀 험악하지 않다. 모두 무언가 행복감에 젖은 듯하다. 제우스의 강압에 의한 납치가 아닌 서로의 의사가 합치된 사랑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최고의 예술품 승리의 여신 니케 상
올림피아 성역에 봉헌된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역시 승리의 여신 니케 상과 헤르메스 상이다.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은 이 두 작품을 특별 전시실 중앙에 위치시키고 조명의 초점을 맞추는 등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 니케 상은 BC 421년에 메세니아인과 나우팍티아인이 스파르타와 싸워 승리한 후 제우스신전에 바친 대리석 조각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가운데 최고의 장인으로 페이디아스와 쌍벽을 이루던 파이오니오스(paeonios, BC 450?~BC 400?)의 작품이다.
상체의 날개는 소실되었지만, 바람에 날리며 하반신에 착 휘감긴 옷자락의 묘사는 너무나 아름다워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발목을 휘감는 옷 주름을 보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특별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이 니케 상 둘레에는 늘 관람객이 붐빈다. 정면과 좌우의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새로운 감흥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니케 상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니케 상의 전범(典範) 이라고 할 만큼 후세의 조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존하는 작품 중 니케 상으로 가장 유명한 BC 220년에서 BC 19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NIKE of Samothrace)도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0월에 파리의 르부르 박물관에 갔을 때 이 작품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니케 상을 특별전시하기 위한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는 중이어서 볼 수 없어 매우 아쉬웠다. 이 작품의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파이오니오스의 니케 상과 다른 점은 날개의 깃털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었고, 휘날리는 옷자락을 보다 작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올림피아 성역의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봉헌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 제전에서 승리를 갈망하는 출전 선수들에게 경기에 앞서 승리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을 것 같다. 선수들은 늘 이 니케 상 앞에 와서 마음 속으로 승리를 기원하고 다짐했을 것이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줄을 섰을 니케 상이 있던 곳에 그 기단이 그대로 남아있다.
헤라여신에게 바친 걸작 헤르메스 신상
또 하나의 걸작은 헤르메스 신상이다. 헤르메스 상은 헤라 신전에 봉헌되었던 작품이다. 1877년에 이 작품이 발굴되었을 때 예술가들의 탄성이 대단했을 것이다. 제우스의 전령인 헤르메스신이 왜 헤라 신전에 봉헌되었을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늘 불화가 심했던 제우스와 부인 헤라 사이의 소통을 증진시키려는 희망은 아니었을까.
이 헤르메스 상은 현존하는 헤르메스 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리스가 낳은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탈레스(Praxiteles)가 BC 340~BC 330년경에 만든 작품이다. 프락시탈레스는 인체의 아름다운 S라인을 조각 작품에 최초로 구현한 거장이다.
어린 디오니소스를 어르고 있는 헤르메스의 나신(裸身)은 완벽한 육체미를 보여주고 있다. 군살 없는 육체를 매혹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디오니소스의 상징물인 포도송이가 들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 품질의 대리석으로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이 작품은 2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까지 생동감이 넘친다. 대리석 표면을 부드럽고 우아하게 다듬는 프락시탈레스 작품의 특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별전시실에 홀로 안치된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이 떠날 줄 모른다.
올림피아 성역에 바친 보물창고들
지금 남아있는 올림피아의 예술작품들은 당시 여러 신전에 봉헌되고 보물창고에 보관되던 숱한 보물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마 천 분의 일에도 못 미치지 않을까. 델포이 성역과 함께 올림피아 성역은 당시 지중해를 둘러싼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각종 보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국제적인 박물관이자 컨벤션 센터이기도 했다. 당시 여러 도시는 앞을 다투어 보물창고를 건립하고 자국에서 바친 보물들을 보관했다. 이 보물창고들은 스타디온으로 들어가는 관문 왼편에 줄 늘어서 각국의 번영과 위세를 과시했다.
올림피아 성역의 조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그리스의 탁월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페이디아스였다. 그는 인류 최고의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조성했던 사람이다. 그는 델로스 동맹의 기금을 횡령했다는 아테네인들의 모함을 받고 아테네를 떠난 이후 이곳 올림피아 성역에 와서 자신의 마지막 예술적 재능과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제우스신전에 봉안한 제우스신상을 비롯해서 여러 신전을 장식하는 숱한 부조와 조각 작품들과 건축물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티스 성역 한편에 그의 작업장이 따로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올림피아 성역의 조성과 치장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고의 향한 선의의 경쟁이 최고의 봉헌물
지금의 올림피아 성역에는 스타디온과 신전, 여러 건축물의 잔해만 가득해 과거의 화려했던 전경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스포츠 제전이었던 올림피아 제전은 1896년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되고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열었던 인간의 한계를 다투던 경쟁의 열전(熱戰)은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제전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잠재능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신에게 다가가려 했다.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봉헌은 유감없이 발휘된 인간의 탁월성 그 자체였다.
올림픽 정신의 뿌리는 바로 이런 그리스인의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건한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제우스신은 올림피아 성역에서 바로 그런 인간들의 경연을 흐뭇하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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