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필요한 홍명보호, 무모한 팬이 필요하다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06.26 14:54  수정 2014.06.26 15:38

일단 목청껏 응원하며 ‘무조건적지지’..날선 비판과 분석은 이후에

벨기에를 상대로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나서는 홍명보호의 선수들에게 우리는 이 같은 팬이 되어 줄 필요가 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이 운명이 걸린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다.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선제골을 성공시키고도 한 순간 집중력 부족으로 다 잡은 승리를 놓쳤지만 언론과 팬들은 홍명보호에 대해 ‘역시 무대 체질’이라며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심지어 배팅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랄 수 있는 유럽의 배팅 업체들도 러시아를 상대하는 한국의 경기를 확인한 뒤 한국에 배팅하라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앞서 튀니지와 가나에 5골을 내주는 동안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면서 크나큰 우려를 자아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경기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무려 4골이나 실점하면서 2골차 완패를 당하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알제리전에서 대표팀이 드러낸 전력이나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 패착 등을 분석하며 날카롭게 비판하는 쪽은 그나마 신사적이다.

애초 대표팀 엔트리 구성이 최상의 전력이 아닌 홍명보 감독의 개인적 독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란 주장부터 알제리전에서 부진했던 일부 선수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보기 민망할 정도의 무차별 공격이 대표팀에 가해졌다. 국내 언론뿐만이 아니다. 영국 BBC 등 주요 외신들도 러시아를 상대한 한국과 알제리를 상대한 한국이 같은 팀이 맞느냐며 조롱 섞인 비판을 가했다.

지금은 다소 분위기가 차분해진 가운데 한국이 16강에 오를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거나 러시아 언론을 통해 제기된 러시아의 승점 삭감 가능성에 대한 보도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알제리전에서 나타난 대표팀의 경기력을 떠올릴 때, H조 최강팀 벨기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은 기적을 바라야 하는 상황임을 부정하는 의견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아직 한국의 16강 진출 실패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만 보면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잇따라 참패한 뒤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고, 김평석 감독대행 체제로 벨기에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던 1998 프랑스월드컵 당시의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과 현재 홍명보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기적적인 상황이 벌어져 한국이 벨기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러시아가 알제리를 제치고 16강에 오른다면 또 한 번 분위기는 180도 달라지겠지만 그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대로 벨기에를 상대로 역부족을 드러내며 패배, 결과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을 때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쏟아질 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비난 여론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노출된 대표팀 운영의 문제점부터 홍명보 감독의 대표선수 선발 원칙 파괴,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에 대한 홍 감독의 신뢰와 ‘의리 엔트리 논란’ 등 온간 논란과 문제 제기들이 쏟아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홍 감독이나 몇몇 선수들은 엄청난 비난 속에 여론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우리는 축구와 월드컵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그리고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대표팀과 벨기에전 결과와 16강 진출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자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 최고 권위의 국가대항전에 출전하고 있는 대표팀을 위해 맹목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야 말로 지금 홍명보호 선수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같은 축구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프로야구단 한화는 지난 시즌 초반 무려 13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한화의 연패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화 홈 팬들의 응원소리는 더욱 더 높고 우렁차졌다. 한화 홈 팬들에게 한화 선수들은 단순히 고향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팀의 선수들이 아닌 그야말로 ‘내 새끼’였다.

이런 팬들에게 더 이상 한화의 연패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연고지의 팀들에 맞서 기죽지 않고 용기 있는 승부를 펼쳐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됐고 그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팬으로서 ‘우리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축구 K리그 무대에서도 각 팀의 서포터즈들은 각자가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관계없이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팀을 목청껏 응원한다.

언젠가 수원삼성의 K리그 홈경기를 취재했을 때 일이다. 수원은 당시 리그에서 연전연패 중이었다. 경기장으로 향하다 수원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한 수원 팬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팬은 “우리 팀이 꼴찌를 하고, 경기에 질 때마다 ‘다시는 경기장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우리 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꾸 시계에 눈이 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팬을 ‘빽’으로 둔 선수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벨기에를 상대로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나서는 홍명보호의 선수들에게 우리는 이 같은 팬이 되어 줄 필요가 있다. 설령 객관적인 전력에서 벨기에에 많이 밀린다고 하더라도, 전세계 모든 축구팬들이 한국의 열세를 예상하더라도 한국의 축구팬들 만큼은 한국의 승리를 자신하고 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은 그 다음이다.

마지막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필자와 교류하는 한 지인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려놓은 글 중 인상적인 몇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꿈을 꾸는 게 왜 나쁜가. 무모한 기대를 갖는 게 왜 나쁜가. 팬은 그저 즐기면 된다. 8강, 4강을 꿈꾸는 게 팬이다. 3패를 예상하는 건 팬이 아니다. 객관적인 건 팬이 아니다. 팬들은 언제나 몽상가다. ‘내가 질줄 알았어’는 팬의 멘트가 아니다. 벨기에를 3점차 이상으로 이긴다고 기대하고 응원할 것이다. 욕 하면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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