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V 에인트호벤 홈구장에 다시 한 번 박지성 응원가 ‘위송빠레’가 울려퍼졌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예전 같은 폭발적인 운동능력도, 화려한 득점포도 없지만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벤)은 여전히 박지성이다.
지난 9일(한국시각)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의 필립스 스타디움서 열린 '2013-14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23라운드 트벤테전은 박지성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기였다.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더로 풀타임 활약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 7분 오른쪽 측면에서 수비수 산티아고 아리아스의 선제골을 돕는 등 중원을 장악하며 이날의 선수로 선정됐다. 경기 후에는 홈팬들이 기립해 박지성의 응원가 '위송빠레'를 합창하는 모습이 국내에도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지성의 에인트호벤 복귀 이후 필립스 스타디움에 '위송빠레'가 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팬들의 환호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어느덧 선수 생활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박지성이 여전히 팀 내에서 중요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으며 팬들의 찬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에인트호벤 팬들은 박지성에게 기쁨과 상처를 동시에 준 존재들이다. 10여년 전 박지성은 청운의 꿈을 안고 네덜란드에 진출하며 유럽무대에 첫 도전장을 던졌지만, 낯선 네덜란드리그는 무명의 아시아 청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상과 슬럼프 등으로 적응기가 길어지자 팬들은 가시 돋힌 반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박지성이 등장할 때마다 홈경기에서 홈팬들이 야유를 보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유럽에서는 익숙한 광경이라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박지성과 그 가족이 받은 상처는 컸다. 지난해 박지성이 에인트호벤으로의 복귀를 처음 검토했을 때 당시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가족과 지인들이 만류했던 이유다.
물론 박지성은 이후 절치부심해 비난을 환호로 바꿨다. 2005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놀라운 활약은 박지성을 미운 오리에서 일약 에인트호벤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로 변신시켰다. 박지성은 에인트호벤에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호성적을 남기고 당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팀을 옮겼다.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 하고 박지성은 올 시즌 8년 만에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에인트호벤으로 복귀할 시점에 박지성의 위상은 사실 유럽무대 진출 초기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맨유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도전한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에서는 생애 첫 2부 강등이라는 수모도 맛봤다. 박지성도 "한 물 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영광과 좌절을 두루 겪으며 박지성은 어느덧 성숙한 베테랑으로 변해 있었다.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움직임은 더 이상 없지만 경기흐름을 읽는 시야와 위치선정, 완급조절,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박지성은 세월의 흐름이 주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박지성이 처음 유럽무대에 진출할때만 해도 성공은커녕, 이렇게까지 오랜 세월 활약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더 이상 맨유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고 있지 않더라도 박지성의 모습은 여전히 모든 한국 축구선수들의 롤모델이다.
박지성만한 나이에 여전히 유럽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선수로 남을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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