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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만·하승진, 조롱 당한 거인 영웅들


입력 2014.01.18 09:45 수정 2014.01.18 09:51        데일리안 스포츠 = 김종수 기자

압도적 신체조건에 노력·성과 평가절하?

격투기-농구계에 쌓은 업적 상상 이상

최홍만과 국내 격투팬들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 데일리안 DB 최홍만과 국내 격투팬들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 데일리안 DB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34·218cm)과 ‘하킬’ 하승진(29·221cm)은 국내 스포츠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서구선수들을 맞아 힘에서 밀리지 않고 겨룬 흔치 않은 케이스다. 비록 테크닉의 섬세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최소한 국제경기에서도 파워에 밀려 작아지진 않았다.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묘한 대리만족도 느낄 수 있었다.

최홍만은 국내에 격투기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씨름선수 출신이었던 그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낯선 타격무대에 진출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K-1은 마니아 스포츠에서 일약 전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종목으로 떠오른다.

성적도 좋았다. K-1에 데뷔하기 무섭게 서울대회서 우승을 차지했다. 짧은 시간 최홍만은 K-1무대에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당시 타격 초보임에도 쟁쟁한 테크니션을 상대로 신체적 우위를 앞세워 승리하는 놀라운 장면을 몇 차례 연출했다.

중하위권 파이터들에게는 웬만해서는 패하지 않았고, 제롬 르 밴너 등 상위권 강자들과도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못지않은 덩치의 아케보노와 밥 샙을 물리쳤고, K-1 역사상 최고의 강자로 불리는 ’격투로봇‘ 세미 슐트(41·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슐트는 최홍만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212cm의 거인이다. 더욱이 투기종목이 낯선 최홍만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가라데를 익히며 제대로 성장한 리얼타격가다. 그런 슐트조차 최홍만 파워에 밀려 뒷걸음질 칠 때는 탄성을 자아냈다.

비록 판정논란이 있었지만 슐트가 확실한 우위를 점한 것은 아니었다. 신체조건을 떠나 전성기의 밥 샙과 슐트를 상대로 승리할 동양인 파이터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향후에도 나오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최홍만과 국내 팬들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 외모에 대한 일부 팬들의 지속적인 조롱과 이를 가십거리로 부추겼던 일부 언론의 태도는 최홍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물론 여기에는 최홍만의 서툰 대응과 행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 여건상 조롱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좀 더 영리하게 언론과 팬들에게 반응해야 했지만, 소통의 창구를 닫아버리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하승진 역시 국내농구 빅맨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다. 그동안 국내 빅맨들은 외국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 항상 밀렸다. 서장훈-김주성 정도가 그나마 선전한 케이스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사이즈 차이에 따른 어려움은 타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승진은 달랐다. 비록 서장훈의 슈팅능력도, 김주성 같은 스피드도 갖추지 못했지만 최홍만이 그랬듯 압도적 신체조건을 무기로 힘 좋은 외국인선수들을 파워로 눌렀다. KBL 골밑에서 탱크처럼 위용을 떨쳤던 용병들이 하승진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외곽으로 빙빙 도는 장면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광경이었다.

하승진은 이뤄놓은 성적에 비해 저평가 받는 대표적인 선수다. ⓒ 전주 KCC 하승진은 이뤄놓은 성적에 비해 저평가 받는 대표적인 선수다. ⓒ 전주 KCC

최홍만 만큼은 아니지만 하승진 역시 팬들에게 고운 시선을 받지는 못했다. 하승진은 덩치 큰 거인의 특성상 자주 부상에 시달렸는데 이로 인해 몸 관리를 못하는 게으른 선수로 낙인 찍혔다.

상당수 업적은 신체조건의 이점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둘은 쇼맨십이 강한 연예인 기질도 강했는데 이런 점도 밉상으로 찍히는데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최홍만-하승진은 남들보다 큰 신체조건으로 인해 이익을 본 부분도 많았고, 작고 독기 품은 선수들만큼 눈에 띄는 열정으로 어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최홍만-하승진이 정찬성-양동근 등처럼 연습벌레였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 할 수 없다. 게다가 남들보다 덩치가 큰 만큼 스피드-체력 등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섬세한 플레이도 힘들었다. 이 같은 단점은 장점만큼이나 극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흠이다. 그간 거인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의 상당수는 최홍만-하승진만큼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덩치 값(?)도 못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최홍만과 하승진은 게으른 선수들로 오해받고 있을 뿐, 그 큰 몸을 움직여 운동선수가 되기까지의 남모를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저평가 설움 속에서도 그들이 묵묵히 세운 기록은 놀라웠다.

이제 열린 자세로 둘의 업적을 인정할 때다. 그들로 인해 흥미진진한 명승부를 즐길 수 있었던 수혜자들이 팬들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종수 기자 (asd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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