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피부과개원의협의회에 따르면 탈모환자는 10월부터 급증한다. 왜 그럴까. 건조한 가을 날씨가 되면, 여름 내내 강한 자외선에 노출되었던 두피를 자극해 탈모를 심화시킨다. 땀과 피지 분비가 잘 씻기지 않으면 지성 비듬이 생겨 탈모를 촉진한다. 또한 피서 때 묻은 수영장, 바닷물의 염소 성분이 더 부추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세포증식력이 떨어져 머리가 더 빠진다. 환절기에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분비를 일시적으로 증대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선에서 5알파 환원효소(5alpha reductase)를 통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Dihydrotestosterone)으로 전환시킨다.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은 머리카락의 모낭에서 모발 생성을 저하한다. 따라서 DHT가 많아지면 모발이 가늘어지고 심지어 빠진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초입 가을에 일시적으로 많아지고, 이 때문에 DHT 생성도 많아지면서 머리가 더 많이 빠지게 된다. 여성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분비되면 탈모증이 발생한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의 증대를 낳는다. BC 400년 전 히포크라테스는 거세된 남성과 아이는 탈모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성형 호르몬의 영향이 크다고 할 때, 고환을 일찍 거세를 한 남성들은 탈모에서 자유롭다는 연구가 많다. 1942년 Hamilton박사는 거세당한 남자 104명을 대상으로 한 남성형 탈모 연구결과에서 사춘기 전에 거세된 남성은 탈모가 없었고 가족 가운데에 탈모가 있거나 성적으로 미성숙한 남성에게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면 탈모가 생겼다.
어쨌든 가을은 남성들이 호르몬의 변화로 계절성 우울증 즉 가을을 타는 증상이 심해진다. 가을은 한편으로 결혼 소식이 많고, 앞으로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소개팅이나 맞선의 만남이 많아진다. 하지만 빠지는 머리카락이 이런 만남에 임하는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 이는 탈모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비호감의 성향이 강한 사회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문화 현상이 일어난다. 놀림의 대상이 되어 수치감을 두고 심지어 살인극까지 벌이게 된다.
2003년 7월 영화 ‘올드보이’의 주연 배우 최민식은 언론과 가진 ‘올드보이’출연 동기에 대한 인터뷰에서 대머리 살인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 전에 대머리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가발을 장난으로 벗긴 친구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얼마나 수치스러웠으면 그랬겠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같은 이름의 작품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캐릭터의 구체적 동기도 구현되지 못한 상태였다.
최민식은 “사람이 마음을 다치는 일 중엔 정말 별 것이 아닌 게 많은데, 그런 감정을 극대화하면 감정이입을 못할 일도 없죠”라며 이렇게 대머리에 관한 수치심과 상처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밝혔다. 발설과 루머 그리고 수치심에 관한 영화 ‘올드 보이’의 주연 배우 다운 말 같았다. 그럼 그는 어떤 기사를 본 것일까.
2003년 6월, 서울 석촌 호수 인근 포장마차에서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대머리라고 놀리는 전씨를 대머리인 홍씨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전씨가 여성들 앞에서 가발을 벗기는 바람에 홍씨가 수치심을 느껴 전씨를 살해했다고 했다. 다만, 1년 뒤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모 방송사에게 전씨 유족들에게 2천만원을 물어주라고 판시했다. 2천만원은 전씨가 홍씨의 가발을 의도적으로 벗긴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방송사의 왜곡 보도에 대한 배상금이었다.
무엇보다 이때 대머리 살인범의 선처를 바라는 탈모증 네티즌들의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되었다. 이때 참여한 한 네티즌은 “친구들이 대머리라고 놀릴 때마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선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탈모증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어 2004년 9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만 청부 살인 의뢰라는 점이 놀라게 했다.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에 따르면 김모씨는 자신을 대머리에 뚱뚱이라고 놀리는 중학교 동창 박모씨를 살해해달라고 이모씨에게 400만원을 주고 청부 살해를 의뢰했다. 실제 살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의뢰자 김모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다. 자칫 대머리라는 말이 살인을 불러올 뻔 했다.
이렇게 탈모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사회적 인간관계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2004년 9월 한 개인 의료기관에서 탈모증이 있는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모 때문에 불이익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이들이 87%(261명)였다. 뒤이어 '취업이나 재취업에서 불이익을 경험'(42%), '이성교제 및 결혼에 문제가 생겼던 경우'(41%)가 높았다. 2012년 5월 대한피부과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탈모 환자의 63.3%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성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41%)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13.7%)고 대답했다.
2012년 한 취업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총 응답자 233명 중 77명(33%)이 '1분 이내'에 남성에 대한 호감도를 판단했으며, 비호감을 낳는 요인은 74명(31.8%)이 '적은 머리숱(탈모가 진행 중인 머리)'라고 답했다. 요컨대 척보고 대머리이면 비호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결혼정보 회사의 조사에서 여성의 경우 만나기 꺼려지는 남성의 조건으로 ‘탈모’를 꼽은 여성이 53%였다. 이러한 인식은 드라마에도 반영되기 일쑤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MBC '아현동 마님'에서는 백시향이 맞선 남으로 탈모 남성이 나오자 투덜거리는데, 이를 본 어머니(김형자)는 "그러길래 괜찮은 사람 다 놓치고 누가 대머리를 만나래!"라고 말한다. 2010년 1월 MBC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아결녀)에서 여성들은 소개팅남이 대머리라는 이유로 딱지를 놓는다.
영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에서 대머리 샐러리맨 프랑수아(베르나르 캄팡 분)는 어느날 400만 유로의 복권 당첨금을 받는데 최고의 섹시 미녀 다니엘라(모니카 벨루치 분)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한다. 단 조건은 복권 당첨금이 없어질 때까지였다. 돈이 아니면 미녀가 그를 쳐다볼 일도 없다는 것이다.
2009년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분장실의 강 선생님’에서 안영미 강유미 등은 대머리 분장을 통해 큰 인기를 모았다. 많은 매체에서는 여성에게 치명적인 대머리 분장을 딛고 인기를 모았다고 했다. 드라마 ‘아현동 마님’ 에서는 대머리 분장을 연기자들이 흉내 내는 장면을 15분이나 방영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기괴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2009년 11월, MBC '살맛납니다'에서는 장동걸(오경수)는 가발이 떨어졌는데도 맞선녀가 놀라든 말든 능청스럽게 웃으며 거울 대신 숟가락에 자신을 비쳐 가발을 다시 쓴다. 만약 이렇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일본 드라마 ‘러브제너레이션’에서 남자 주인공은 “내가 대머리 되고 배 나온 아저씨가 되는 갈 네가 지켜봐 줄래? 난 네 얼굴에 주름 생기고 가슴 처지는 걸 지켜봐 줄게”라고 말한다. 매우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머리가 되지 않으려 하고 가슴이 처지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한국이 유난히 대머리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것이다. 2009년 7월 13일,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해외에서 온 여성들은 대머리(민머리)의 남성이 멋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의 마리아가 “러시아에서도 진짜 머리 없는 남자 좋아해요. 브루스 윌리스, 빈 디젤처럼 근육이 있고, 대머리 있는 남자 너무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독일 출신의 베라는 “독일 여자도 대머리 남자 섹시하고 남자답다.”라고 답했다. 호주 출신의 커스티는 "대머리 만지는 게 너무 좋다"라는 이색적인 답변을 털어 넣기도 했다.
2010년 여론조사기관 web surveyor사가 유럽 5개국(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20~30대 여성 1002명 대상의 조사와 한국 조사 내용을 비교해 보니, 한국여성은 유럽여성에 비해 탈모가 남성의 매력을 낮게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다. 한국 78%은 유럽은 57%였다. 탈모가 실제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게 한다고 말한 비율은 한국이 98%, 유럽은 61%였다.
‘빛나리’, ‘문어대가리’, ‘까진 대머리’ 이라는 단어는 모두 탈모증 환자들을 놀리거나 조롱하는 말이다. 2011년 10월 대법원은 ‘대머리’라는 단어에 대해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여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모욕일수는 있지만 명예훼손은 아니라고 보았다.
1심은 “대머리란 머리털이 많이 빠진 사람을 뜻하는 표준어일 뿐 단어 자체에 경멸이나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앞선 2심은 ‘대머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유죄로 보아 “대머리는 외모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인 동시에 가치평가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라고 했다. 이러한 측면은 사실 가치판단의 경계에 있다는 점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모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이를 법적으로 처벌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머리는 부정적이고 꺼리는 대상이 되었는가. 일단 대머리 남성에 대한 이미지는 서양과 동양이 다르다. 앞선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캐나다 출신의 제니퍼는 “캐나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 코치 감독이 대부분 대머리 남자고 스포츠 선수 이미지가 있어 멋있는 남자예요”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이바나도 “운동 잘 하는 사람은 대머리 스타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태국 출신의 차녹난은 “아시아 남자가 대머리면 스님”이라고 간주한다고 했다. 중국인 은도령도 “소림사 생각나요. 여섯 개 점 찍고...” 라며 불공드리는 스님 모습을 취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도 다르지 않다. 동양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이미지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대머리는 드라마, 영화 그리고 스포츠 같은 대중문화속의 이미지와 맞물려 있다.
그 대머리 이미지는 나이 많음의 상징으로 사용되면서 부정적로 여겨졌다. 즉 나이가 많을수록 대머리가 많다는 정보에 의존해 이를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서 주로 장년이나 노년층캐릭터로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대머리하면 나이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또한 불교 억압의 사회풍토에서 탈모증의 남성들은 ‘중’이라며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탈모는 나이든 남성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젊은 남성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한 두발업체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들 가운데 17%가 탈모 예방을 위해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이는 탈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20, 30대 젊은 탈모 환자가 급증해 전체 환자의 50%를 차지한다는 의료기관의 통계수치도 있다. 또한 여성에게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대한모발학회는 원형 탈모 환자 5명 가운데 한 명이 여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스트레스가 자율신경이나 교감신경을 자극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수축시켜 모근에 영양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머리가 빠지는데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는 지난 7월 MBC ‘세바퀴-패밀리특집’에서 “힘든 기상캐스터 일을 7년 동안 하다 보니 원형탈모가 너무 심하게 걸렸다. 가짜 머리를 똑딱이로 붙일 정도였다”라고 했다. 또한 다이어트나 편식이 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밤낮이 바뀌는 직종은 더욱 이를 부추긴다. 밤낮이 따로 없는 PD, 작가 등 방송관련종사자, 디자이너, IT업종의 직장여성이 탈모현상을 많이 보인다는 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잦은 염색, 드라이, 모발 약품 사용 등이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대머리가 공짜를 좋아한다거나 정력이 센 것과는 상관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미 2012년 탈모증 인구가 천만을 넘어섰다는 발표도 있었다.
탈모는 단지 집에서 샴푸 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탈모증을 가진 이들을 대머리라고 놀리거나 조롱하는 것은 특정 환자에 대한 놀리거나 조롱하는 것이 된다. 또한 대머리로 인한 차별은 질병 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한두 가지의 병증이나 장애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성을 떠나 탈모는 문명의 병이며 장애라고 해야 한다. 유전적인 내력이 있어도 외부 요인이 강하면 일찍 혹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게 탈모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스트레스와 노동의 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고 무한 경쟁의 글로벌화는 이런 탈모증을 더 강화할 것이며 이는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여성들이 머리를 못살게 구는 것도 연예인들처럼 생존을 위한 방편이고 그것이 탈모로 이어지고 있다.
대머리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필요도 있다. 1624년, 루이 13세는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되었다. 정치적인 난제도 많은데다가 아내는 바람을 피기도 했다. 즉 그가 대머리가 된 것은 바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는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가발을 착용했다. 그가 가발을 착용하자 전 유럽으로 가발 문화가 퍼져 나갔다. 루이 14세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착용했다. 가발은 매우 화려해지고 고급화되었고 남성다움의 상징이 되어 갔다. 만약 루이 13세가 당당하게 자신의 대머리를 내세웠다면, 대머리가 유행했을지 모른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키레네의 시네시오스는 '대머리 예찬'에서 스승이자 소피스트였던 디온의 '머리카락 예찬'에 대한 반론이다. 그가 대머리를 비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성이란 열매는 머리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떼어낸 뒤에야 맺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늘의 예지에 따른 이집트의 사제는 머리는 물론 눈썹까지 밀어버렸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대머리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어느 학자 중에 대머리가 아닌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시네시오스는 소크라테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대머리였다며 머리카락 예찬론을 비판하고 대머리를 옹호한다. 심지어 “털 많다는 것은 곧 지성이 모자라다는 것을 의미한다”거나, "털 많은 개는 멍청하고 사납기만 하다"고 말한다.
만약 대머리는 지성인들의 특징이고 현자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면 대머리가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집트의 사제처럼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머리가 운동 잘 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그 이미지 프레임을 바꾸는데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필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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