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의 실질적 에이스 기성용(24·스완지시티)이 자신의 비밀 SNS 계정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조롱하고 자신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했다는 한 축구 전문 칼럼니스트의 폭로에 대해 관련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지난 2일 출국해 스완지시티의 네덜란드 전지훈련에 참석 중인 기성용은 5일 에이전트를 통해 전해온 사과문에서 "무엇보다 저의 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걱정을 끼쳐드린 많은 팬들과 축구 관계자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어 "이번에 불거진 저의 개인 페이스북 글에 관련한 문제는 모두 저의 불찰”이라며 “해당 페이스북은 제가 1년쯤 전까지 지인들과의 사이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공개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든 간에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전해졌습니다. 이 점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어 기성용은 "치기 어린 저의 글로 상처가 크셨을 최강희 감독님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자신이 비밀 SNS 계정을 통해 조롱하고 경고 메시지까지 보낸 최강희 감독에게도 머리를 숙였다.
기성용의 매니지먼트사인 IB월드와이드(IB스포츠)에서 문제의 SNS 계정에 대해 기성용을 사칭한 누리꾼이 만든 가짜 기성용 SNS 계정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결국 예상대로 그 문제의 계정은 기성용의 것이 맞았다. 기성용의 소속 매니지먼트사도 입장이 난처해진 셈이다.
앞서 기성용은 지난달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가 이 글이 최강희 감독을 겨냥한 글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그로 인해 논란이 일자 자신의 트윗 내용이 교회 설교의 일부였다고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이번 비밀 SNS 계정의 존재 시인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자면 당시 기성용이 펼친 ‘리더론’ 역시 최 감독을 겨냥한 것이었음이 더욱 더 확실해졌다.
또한 기성용은 지난 3일 팬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삭제했다"고 밝히면서 "팬들과 소통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며 좋았는데, 오히려 기사를 통해 오해를 사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더 전달되지 않았다"고 SNS 계정을 폐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기성용이 오해를 빚었다는 그 말들은 결국 기성용의 속내가 담긴 말들이었다.
좀 가벼운 시각으로 보자면 기성용의 비밀 SNS 계정 문제는 종종 TV 시트콤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장면과 닮아 있다.
예를 들자면 직장 상사나 선배의 전화번호를 이상한 별명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해 놨다가 우연한 순간 당사자에게 들키는 장면이나 직장 상사나 선배에 대한 험담을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다는 것을 해당 상사나 선배에게 잘못 보내면서 빚어지는 촌극과 같은 장면 등이다.
하지만 기성용의 사안은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을 떠올려 볼 때 이 같은 코미디나 시트콤과 단순 비교하기 힘든 무게를 지니고 있다.
기성용의 이 같은 부적절한 행태는 대표팀 동료들과 감독을 기만함으로써 대표팀의 ‘팀 스피릿’을 깬 행위임은 물론 그를 믿고 아끼는 팬들까지 속인 행동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성용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싸늘한 이유다.
현 상황에서 기성용을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홍명보 대표팀 감독과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 정도로 보인다. 실제로 두 지도자는 지난 4일 전주에서 전격적인 회동을 가졌다. 홍명보 신임 대표팀 감독은 이날 최강희 감독과의 만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대표팀 운영에 관한 조언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오른 이후 사실상의 첫 공식 행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이날 회동은 ‘기성용 살리기’의 의미를 포함해 대표팀 내분에 관한 논란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홍 감독의 처방이라고 해석된다.
실제로 홍 감독은 이날 전주헹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현 대표팀의 가장 큰 현안이자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그 문제(대표팀 내분)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홍 감독 스스로 선배인 최 감독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존경과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표팀을 대하는 선수들의 태도와 대표팀의 기강을 바로 잡는 가운데 기성용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그의 스승으로서 기성용을 대신해 먼저 이해와 용서를 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기성용은 홍 감독이 내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 기성용을 발탁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워낙 들끓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성용이 예전처럼 온전히 대표선수로 활약하기는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홍 감독은 논란 중인 대표팀 내 해외파 선수들의 기용과 관련,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문제를 일으킬 때에는 먼저 설득에 나설 것이다. 잘 구슬러 데리고 가든가 아예 버리고 가든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정답은 없지만 계속 지적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면 팀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여론이 반대해도 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욕을 먹더라도 필요한 선수는 데려다 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선수가 감독이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움직이고 감독이 요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홍 감독이 병역기피 논란이 불거졌던 박주영을 공식 기자회견이라는, 언론과 팬들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시켰던 과정을 떠올려 보면 그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기성용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단 에이전트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의 뜻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기성용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홍 감독은 가까운 시일 안에 국내에서 이뤄질 A매치 평가전 등을 앞두고 기성용의 대표팀 발탁을 놓고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고, 앞서 밝힌 대로 자신의 소신대로 기성용의 선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홍 감독이 그런 기회에 일부러라도 기성용을 뽑을 가능성이 있다.
기성용에게 그 기회를 통해 직접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이미지 쇄신과 함께 ‘국가대표 기성용’에 대한 여론을 돌릴 수 있고, 이를 통해 홍 감독도 앞으로 대표팀 감독으로서 기성용의 발탁 여부 대한 선택에 있어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오는 9월 6일에 있을 이란과의 평가전이 그 기회가 될 전망이다.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재건 프로젝트에 있어 의외의 첫 과제가 된 ‘기성용 일병 구하기’가 홍 감독의 구상대로 원만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