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집 나간 스몰볼에 넋 나간 한국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입력 2013.03.03 08:09  수정

첫 경기 치욕으로 기본기 재점검

4실책 와르르..벤치 용병술도 미흡

[WBC]한국이 복병 네덜란드에 당한 치욕이 오히려 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축구에 이어 '오대영 굴욕'이 다시금 벌어졌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WBC 대표팀이 복병 오렌지군단 네델란드에 0-5 완패라는 치욕을 당했다. 네덜란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조국이다.

한국은 2일(한국시각)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서 열린 WBC 1라운드 B조 예선 첫 경기 네덜란드와의 대결에서 0-5 영봉패 수모를 당했다. 다크호스라곤 하지만 객관적으로 한국이 앞선다는 자체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나온 완패라 충격이 크다.

공수주 모든 면에서 네덜란드에 졌다. 4안타의 빈공도 그렇지만 한국의 자랑인 견고한 수비도 네덜란드에 밀렸다. 무엇보다 경기 자체가 초반부터 안 풀렸다. 초반 흐름이 꼬이면서 선수들은 평상심을 잃고 타격과 마운드, 심지어 벤치까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패인이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필승조인 정대현과 오승환까지 기용했다.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회심의 대타 이승엽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정근우 잘 맞은 타구 2개 '불운'

기선을 제압할 기회를 잡은 팀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1회초 내야 수비 불안으로 2개의 실책을 저질렀지만, 초반 실점의 위기를 잘 넘겼다. 1회말 공격에서 리드를 잡으면 경기 전체가 한국 페이스로 흐를 상황으로 전개됐다.

1번타자 정근우는 네덜란드 선발 좌완 디에고마 마크웰의 5구째 몸쪽 직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라인드라이브 타구는 3루수 젠더 보가츠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근우의 안타성 타구가 빠졌다면 마크웰의 호투는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정근우의 두 번째 타석에서 나온 병살타 역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무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5회말 노경은 등판 이후 연속 2실점, 0-3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한국은 추격의 기회를 잡았다.

선두타자 최정이 깨끗한 우전안타로 출루, 추격의 교두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음 타자가 바로 첫 타석에서 좋은 타격감을 보인 정근우. 0-1에서 0-3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동점 작전이 아닌 강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근우는 네덜란드 두 번째 투수 에인테마의 몸쪽 높은 공을 잡아당겼다. 정확하게 맞은 타구는 3루수 보가츠 앞으로 강하게 원바운스됐다. 보가츠는 강습타구를 정확하게 포구, 5-6-3으로 이어지는 더블플레이를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한국은 6회 추격 기회를 병살타로 무산시키면서 중반 반격 기회도 함께 무산시켰다.


벤치 용병술의 기로 '7회 대주자'

7회에도 한국의 반격 기회는 있었다. 선두타자 이대호가 집중력 있게 볼을 잘 골라 무사 1루에 출루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때 벤치의 용병술이 기로에 섰다. 이대호를 빼고 발 빠른 대주자를 기용하느냐, 아니면 9회 한 차례 더 타격 기회를 고려하느냐 선택이었다.

류중일 감독은 9회 한 타석을 선택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7회 김상수나 손시헌 등 발빠른 대주자를 기용했더라면 경기는 더 쉽게 풀렸을 수 있다. 다음 타자 김현수의 우전 안타 타구가 느린 땅볼이었기에 발 빠른 김상수나 손시헌이었다면 무사 1,3루 기회를 만들 수 있었고 후속 타자 이진영의 유격수 앞 타구 때 선취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7회에 1점이라도 추격했더라면 경기 흐름은 달라질 수 있었다. 타격감이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벤치 용병술로 만들어 내는 점수가 중요했다. 7회 위기를 넘긴 네덜란드는 이은 7회말 반격에서 2점을 추가하며 쐐기를 박았다.


'4실책 와르르' 스몰볼은 어디로

대표팀이 역대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가장 큰 이유는 스몰볼이다. 스몰볼은 수비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야구다. 수비에 능하고 아기자기한 팀플레이로 유기적 조화를 추구하는 야구다.

네덜란드전에서는 기본기가 무너졌다. 1회 강정호의 원바운스 송구와 2루수 정근우의 송구 실책, 강민호의 1루 악송구 등 한국 대표팀의 자랑인 수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전 강민호의 패스트볼과 최정의 견제사 등 한국 팀의 야구는 정밀하지 못했다.

7회 1사 만루 위기에서 평범한 투수앞 땅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대현의 느슨한 플레이에 이은 강민호 악송구는 사실상 자멸을 초래했다. 최근 연습경기에서 부진한 타격감이 팀 전체적인 수비와 주루의 집중력까지 저하시킨 셈이다.

하지만 첫 경기의 치욕적 패배는 선수들의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기도 한다. 2009년 WBC 1라운드 첫 경기 한일전에서 한국은 에이스 김광현을 내세우고도 치욕적인 스코어(2-14)로 7회 콜드게임패를 당한 바 있다. 한국은 절치부심, 순위 결정전에서 다시 일본을 만나 1-0 짜릿한 설욕전을 펼치고 2라운드에 올라간 바 있다.

먼저 맞은 매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복병 네덜란드에 당한 치욕이 오히려 득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대표팀의 장점은 역시 기본기에 충실한 스몰볼이다. 기본기를 다시 점검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네덜란드전 오대영 수모는 의미가 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끈 월드컵대표팀은 체코와 프랑스전에서 오대영 수모를 겪고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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