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와 ‘피겨여왕’ 김연아(22·고려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향한 비뚤어진 시선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TV광고 수입에 지나치게 열을 올린다”, “피겨와 체조는 비인기 스포츠가 아닌 귀족 스포츠다. 스폰서의 막대한 자금이 들어온다” 등이다. 그러나 스폰서도 보석으로 변할 확률이 높은 원석에게만 투자한다. 상품가치가 높은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손연재와 김연아는 한국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 유망주’였고,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건강하게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도 무시해선 안 된다. 손연재는 최근 방송에서 올림픽 샛별로 올라서기까지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 부분이 ‘살벌한 인종차별’ 경험이었다.
손연재는 “러시아 유학시절 현지 급우들이 연습할 동안 나는 밀려나 매트 끝에서만 연습했다”며 “그런데 급우들이 나보고 위험하니까 또 비키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매트 밖으로 나가 있다가 다시 매트 끝으로 들어오곤 했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손연재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계 급우들이 모인 반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미묘한 차별과 시샘어린 눈총에 눈시울을 붉힌 적도 많았다.
이는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피겨여제로 성장하기까진 굴곡의 연속이었다. 사춘기 캐나다(전지훈련)로 떠나 극심한 향수병으로 고생했다.
궁핍에 가까운 재정도 문제였다. 2005년 그랑프리 주니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음에도 재정적인 도움을 줄 스폰서를 찾았던 가난한 신데렐라였다. 또 ‘연습벌레’ 김연아의 부츠는 빨리 닳아 4개월에 한 번꼴로 바꾸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한 달 간격으로 바꿔 신어야 했다. 때문에 국가대표 선수가 운동에 전념해도 모자를 시간에 새 부츠 비용을 걱정하는 웃지 못 할 비애까지 겪어야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극성스런 일부 팬들이다. 과도한 애정이 집착으로 변질돼 오히려 해당 선수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일부 피겨 팬들은 손연재를 향해, 일부 리듬체조 팬들은 김연아를 향해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린다. 전문가들은 종목도 다르고 외국 선수도 아님에도 비생산적인 경쟁의식이 표출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실 손연재는 남성 팬들이 많다. ‘남심’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이목구비와 앙증맞은 체형은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얻은 비결이다.
김연아는 여성 팬들이 절대다수다. 아이스쇼 관중의 70%가 여성일 만큼 ‘여심’을 사로잡았다. 훤칠한 백인남성 버금가는 8등신 체형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목구비는 청순가련 느낌보다는 ‘멋지고 강렬한’ 이미지가 짙다. 보이시한 매력이 같은 여성 사이에서 아이돌 김연아로 부상한 이유다. 섬세한 여성 팬들은 김연아 애착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연아를 위해 준비한 아기자기한 응원도구부터 수작업 현수막과 스웨터 등 연계적인 지원화력이 다양하고 방대하다.
문제는 해당 선수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경우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김연아와 헤어진 브라이언 오서 코치, 김연아 전 소속사와 소속 선수(손연재) 등에 대한 극도로 예민한 시선이 대표적인 예다. 김연아는 오서와 시원하게(?) 헤어졌고 지금은 서로 잘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일부 팬들은 아직도 인터넷 게시판에 오서를 비난하고 전 소속사를 험담하고 다닌다. 이는 김연아도 원치 않은 행위다.
과도한 집착이 피겨와 전혀 상관없는 리듬체조 유망주의 가슴에도 피멍을 새기고 있다. 손연재는 러시아 유학시절, 이역만리 타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자신의 온라인 홈페이지만 보던 외롭고 불쌍한 소녀였다. 그런 아이가 유일한 위안거리인 인터넷 삼매경 중 “대회 입상은 심판 매수 결과”라는 악성댓글을 접하고 한 달 내내 울고 다녔다.
이러한 악플러들은 축구장의 훌리건으로 비유될 만하다. 물리적인 폭력만이 훌리건 대명사가 아니다. ‘정신적인 폭력’도 훌리건 범주에 포함된다. 오히려 한 대 맞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더 오래 후유증을 남긴다.
최근 손연재에 대한 악성댓글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는 게 대중의 공통된 목소리다. 세계무대서 김연아와 경쟁해온 일본 여자 피겨선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사다 마오는 객관적이지 못한 능력치 평가로 인해 논란이 됐던 선수다.‘제 살 깎아먹기’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화력과 열정을 누구나 공감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할 때다. 손연재는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조국 대한민국이 지켜줘야 할 국민 여동생이다. 보다 더 너그럽고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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