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카드’ 쥔 설도윤…그가 꿈꾸는 뮤지컬 제2막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입력 2012.03.31 13:02  수정

[인터뷰]뮤지컬 1세대 프로듀서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

“프로듀서는 정당한 돈을 받고 좋은 상품을 파는 예술 경영자가 돼야 합니다.”

공연제작사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53)는 한국 뮤지컬의 중흥기를 이끈 1세대 프로듀서다. 그는 매번 좋은 상품을 시장에 내놨고, 그 상품들이 한국 뮤지컬 시장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공연시장 규모가 불과 100억원에 불과하던 2001년, 설 대표는 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된 ‘오페라의 유령’으로 무려 198억원이라는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예술도 ‘산업’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런 그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핵폭탄을 준비 중이다. 오는 5월 31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위키드’가 바로 그 것이다. 제작비가 무려 200억원에 달해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지만, 설 대표는 망설임 없이 이 작품에 올인했다.

최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설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뮤지컬 ‘위키드’가 한국 공연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최근 4대 뮤지컬조차 흥행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침체된 공연 시장이지만, “향후 10년은 생기발랄하고 재미 잇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며 성공을 장담했다.

설도윤 대표(사진)는 올 한해 뮤지컬 ‘위키드’와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을 통해 작품의 힘만으로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각오다.

1년에 걸친 시뮬레이션 ‘위키드’ 성공 확신

설 대표가 브로드웨이에서 ‘위키드’ 프로듀서를 처음 만난 이후 계약을 성사시키기까지는 꼬박 4년이 걸렸다.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은 가장 먼저 영국 공연을 추진한 뒤 북미 투어와 유럽 투어를 생각하기 때문에 아시아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다(물론 일본은 예외지만).

게다가 국내 유력 제작사들이 모두 몰려들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치밀한 준비와 끊임없는 협상,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마라톤 싸움이었다. 설 대표는 “마지막까지 공을 엄청 들인 회사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오리지널 제작사도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요. 라이선스 공연을 할 때 어떤 문제는 없었는지, 얼마나 완성도 있는 공연을 선보였는지 등을 따져보는 겁니다. 그 과정을 거쳐서 설앤컴퍼니가 낙점된 거죠.”

설 대표는 “결국엔 제작 노하우가 많은 컴퍼니와 함께 하게 돼 있다”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따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볼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위키드’는 종연 일정을 정하지 않은 채 오픈 런으로 공연되지만, 설 대표는 내심 4개월 이상 90%의 객석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4개월간 평균 75% 정도의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해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만큼, 이익을 추구하는 제작자 입장에서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치다.

설 대표는 작품 성공을 위해 약 1년에 걸친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적어도 이 프로그램만큼은 경쟁사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시장 예측, 전체 제작비 등을 놓고 1년 정도 시뮬레이션을 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은 굉장히 치밀하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이고 수치적으로 접근해 있어요.”

설 대표는 최근 티켓 판매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손으로 그려 보이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현재로선 감이 좋다는 것이다.

“흥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계약을 취소해요. 사전 제작비가 많이 투입됐음에도 취소한 경우도 있어요.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4년간 공들인 끝에 뮤지컬 ‘위키드’의 국내 공연권을 따낸 설도윤 대표는 이미 한국어 라이선스에 대한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협상의 기술, 뮤지컬 성패 가른다

설앤컴퍼니는 뮤지컬 원 프로덕션에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다만 이익이 발생하면 양 측이 수익금을 공유한다.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은 설앤컴퍼니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설 대표는 “굉장히 어려운 협상 과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위키드’의 티켓 가격(5~16만원)이 비교적 낮게 책정된 것도 협상 결과가 낳은 산물이다. 물론,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로열티 부담이 티켓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건 틀림없다.

지난 1월 내한공연을 가진 한 프랑스 뮤지컬은 최고가석 25만원에 달했고, 한국에 앞서 싱가포르에서 공연 중인 ‘위키드’의 최고가석도 250달러(한화 22만 5000원)로 한국보다 30%이상 높다.

“국내 제작사나 기획사들이 협상에 끌려간 나머지 안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고 결국엔 흥행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경쟁이 치열해지면 로열티가 치솟아 실패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설 대표는 “티켓 가격을 안정화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며 “컴퍼니가 노력하면 가격을 이렇게 낮출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뮤지컬계의 인건비 상승과 스타급 배우에 대한 쏠림현상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설 대표는 “퀄리티 높은 해외 공연을 통해 국내 배우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 특히 스타가 없이 작품 자체만 가지고도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한편, 최근 불거진 ‘오리지널 내한공연’ 표기 논란에 대해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배우 대부분이 호주 출신인 데다, 인터내셔널 투어팀을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지만, 설 대표는 “오리지널 제작팀이 만들었고 언어가 같다면 오리지널 공연이다. 그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 프로듀서들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라고 힘주어 반박했다.

“‘위키드’의 경우 미국, 유럽, 호주 팀이 있어요. 동시에 공연하는데 배우가 같을 순 없잖아요. 그렇지만 무대 세트와 의상, 작품의 퀄리티는 브로드웨이와 같습니다.”


프로듀서는 내 인생 종착지

설 대표가 뮤지컬을 제작한 처음 손을 댄 건 20년 전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로 기억하지만, 화려한 성공 뒷면은 좌절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1992년 집까지 팔아 제작한 뮤지컬 ‘재즈’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빚쟁이 신세로 전락한 그는 1995년 ‘사랑은 비를 타고’로 재기하는 듯했지만, 1998년 뮤지컬 ‘그리스’가 IMF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다시 파산 위기로 내몰렸다.

“실패라는 것이 예전엔 시행착오였어요. 몰랐기에 불가피한 귀결인 거죠. 그렇지만 실패가 오히려 더 좋은 삶의 토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들이 많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과 긍정적인 성격, 무엇보다 뮤지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 너무 좋았어요. 천직인 거죠. 성악가, 배우, 안무가 등을 거쳤지만 큰 틀에서 보면 파트가 조금 달랐을 뿐 한 길을 걸어왔어요. 회사가 잘 되면 관객들의 살도 찌우고,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요.”

최근 3년 단위로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 대표는 올 12월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러브 네버 다이즈’와 연극 한 편 등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특히 뮤지컬만 고집해온 설앤컴퍼니가 연극을 선보이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 설 대표는 “예술적인 해외 작품으로 한국어 공연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듀서가 인생의 종착지”라는 설 대표의 표정에는 인터뷰 내내 자신감과 확신이 묻어났다. 철저히 분석하고 계획해왔기에 가능한 ‘근거 있는’ 자신감과 추진력, 그것이 바로 오늘의 설 대표를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그의 시계는 ‘위키드’를 훌쩍 지나 이미 3년 후를 가리키고 있었다.[데일리안 문화 = 이한철 기자]

☞ 설도윤 프로듀서 “조승우는 천재, 비교대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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