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리던 지난 14일 찾아간 곳은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 열미리 소재의 도강요(대표 조태환, 54)이다.
자동차 앞 유리창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에 앞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똑똑한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착한 도강요에는 이 빗속에도 무아의 경지에 빠져 도공은 흙에 자기만의 예술혼을 불어 넣고 있었다.
"여태 인터뷰 한번 안했는데..."라며 도공은 약간 놀란 듯 했다. 그러나, 비오는 날 찾아온 성의가 고마웠던지 이내 취재를 허락했다.
도강요에서 만든 청자 계영배를 들고 환하게 미소짓는 조태환 도공
계영배(戒盈杯)!, 술잔의 이름으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도공 우명옥은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고 재물을 모았다. 하지만 우명옥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술을 끊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林尙沃)이 갖게 되었다.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인기작가 최인호 씨가 소설‘상도(商道)’에서 소개했으며, 모 방송국에서는 드라마로 제작하여 상당한 인기가 끌었었다.
초벌구이 하기 전의 계영배와 청자로 만든 계영배 완성품.
도강요에서 만든 계영배(戒盈杯)는 지금까지의 계영배와는 모양이 다르다. 기존의 다른 계영배는 술잔안 가운데에 세워진 지주를 통해 술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었지만 도강요의 계영배는 술잔안쪽에 붙여서 만들었다.
또한, 청자로 만든 계영배를 살펴보면 대부분 미세한 크랙이 가있지만 도강요에서 만든 계영배는 말끔하고 작품성이 뛰어나 누구나 꼭 하나 갖고 싶을 정도로 소장가치가 있어 보인다.
35년간 도자기를 만든 조태환 도공은 “유약과 흙이 가마에서 고온의 열을 받으면 수축되는데 수축비율을 동일하게 하여 마침내 크랙현상을 방지했다”고 말하며 “이게 진짜 기술입니다. 이것을 만들려고 3년간 고생을 했다”며 미소 짓는다.
직경 5㎜가량의 작은 흙속에 2개의 관을 만들어 그것을 술잔안쪽에 붙여서 만들기는 여간한 솜씨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먼저 계영배 모형을 만든 후 조각칼로 하나하나 술잔 안쪽과 바깥쪽에 예쁜 연꽃 문양을 새기고, 술잔 받침대에도 도공의 섬세한 예술혼을 새겼다.
이렇게 만든 것을 건조시키고 초벌구이 후 유약을 바르고, 다시 가마 속에서 1250℃ 불로 구워내서 제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60~70% 술을 부었을때 흘러나와야 합격품 판정이 내려진다.
정성을 다한 도공의 마음과 손끝으로 빚은 흙과 물이 가마 속에서 뜨거운 불과 만나서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질때 계영배가 탄생한다.
전설 속 화공이 화룡점정으로 그림을 완성했듯이 도공 조태환 선생이 마침내 그토록 만들기를 원했던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기에 대량생산은 안된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건 고작 2~3개 정도. 이런 문양과 모양은 현재 특허청에 등록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나온 다른 계영배는 술을 마시게 불편하여 보기만 하던 계영배였지만, 이제 실생활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계영배를 통해서 과학의 원리를 배우고 조상의 지혜와 과유불급(過猶不及)하는 삶의 의미를 새길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술잔 계영배에 잘 익은 술을 채워서 좋은 친구들이랑 술자리를 함께하고 싶어진다.
백자 계영배와 술주전자.
술 한 잔은 사람과 사람이 가슴을 열게 하는 것이지만,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로 가면 술로 인하여 친구도 잃고, 건강과 인생을 파괴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까울수록 술잔을 너무 권하는 음주문화가 있다. 이런 방식의 음주는 고쳐져야 한다.
도공 조태환은 “TV ‘한국의 유산’홍보에 제 작품을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 동안 힘들었던 점은 잊혀지고 보람이 있다”고 말하며 “계영배는 우리고유의 철학과 지혜로 만들어진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강조했다.[데일리안 경기 = 박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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