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허들, 왜 남자가 10m 더 뛸까?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09.09.24 14:42  수정

남녀 신장-근력차, 보폭에 영향

´순발력+기술력+폭발력’ 3박자 조화

지난 2008년 12월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그랑프리 골든스파이크대회.

남자 110m 허들의 ‘떠오르는 신성’ 다이론 로블레스(23·쿠바)는 출발선상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로블레스는 특유의 폭발력을 앞세워 13.72m 앞에 있는 첫 번째 허들과 이후 9.14m 간격으로 놓인 허들을 세 발자국씩 리듬감 있게 탔다. 10개의 허들을 모두 넘은 로블레스는 마지막 14.02m를 전속력으로 질주, 1위로 골인지점을 통과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광판에 나타난 로블레스의 기록은 12초88이었지만 잠시 후 공식기록에서는 12초87로 수정됐다. 지난 2006년 스위스 로잔에서 작성된 ‘황색탄환’ 류시앙(26·중국)의 세계신기록이 0.01초 앞당겨진 순간이었다.


´황색탄환´ 류시앙이 일정한 리듬에 맞춰 허들을 뛰어넘고 있다.


육상종목에서 허들만큼 ‘순발력+기술력+폭발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종목도 없다.

허들선수들은 100m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스타트 시 빠른 ‘순발력’과 마지막 허들을 넘은 뒤 폭발적인 ‘가속’으로 결승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허들을 넘을 때는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넘어야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1.067m 높이의 허들 10대를 넘는 동안 보폭에 맞춰 ‘리듬감’ 있게 뛰어 넘어야한다. 허들과 허들 사이의 보폭은 세 발자국이 적당하다. 손으로 넘어뜨렸을 때는 반칙이 되지만 발로 건드리는 것은 상관이 없다. 발에 걸린 만큼 속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 선수들의 경우 남자보다 10m 짧은 100m 허들 경기를 치른다. 허들의 높이도 0.838m로 약 20cm가 낮고 출발선에서 제1허들까지의 거리도 13m로 0.72cm 짧다. 뿐만 아니라 허들간의 거리도 8.5m며 마지막 허들부터 결승선까지의 거리 역시 10.5m로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남자(110m)와 여자(100m)의 구간 길이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육상연맹의 김정식 과장은 “남녀 선수의 보폭과 스피드가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신장 차로 인해 보폭의 차이가 생기며, 근력이 우월한 남자 선수들의 폭발력이 여자 선수들의 그것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다.

이렇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멀리 내딛게 되는 남자 선수들의 인터벌 구간을 살리기 위해 여자보다 10m 더 멀어지게 된 셈이다.

또한 김정식 과장은 “허들 경기에서는 허들과 허들 사이를 넘을 때의 ‘리듬’이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선수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부분도 인터벌 구간을 세 발자국씩, 리듬감 있게 타고 넘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밝혔다.

사실 허들은 신체조건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잘 할 수 있는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허들의 높이를 넘으려면 작은 키는 걸림돌이 되고, 키가 너무 크다보면 순발력이 떨어져 순간 스피드를 폭발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자 허들 110m 세계기록 보유자인 로블레스는 신장 191cm, 몸무게 80kg의 육상선수로는 이상적인 체형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류시앙 역시 189cm-82kg의 체격으로 로블레스와 흡사하다.

남녀 허들 기록보유자.

하지만 이에 대해 김정식 과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남자의 경우 폭발적인 근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175cm 이상만 돼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로블레스와 류시앙은 인터벌구간에서의 보폭이 오히려 남는 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세계적인 이유는 보폭이 남는 만큼 힘을 축적했다가 마지막 구간에서 폭발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로블레스와 류시앙은 허들의 3박자 가운데 순발력을 제외한 ‘기술력-폭발력’에서 상당한 강세를 보인다는 뜻이다.

한편, 남자허들 부문 한국 신기록 보유자는 이정준(24·안양시청)으로 지난해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13.53을 기록한 바 있다. 아직 세계 신기록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이미 4차례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워 한국 남자 단거리의 기대주로 손꼽히고 있다.[데일리안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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