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Y, 국민 궁금증 풀어준다더니
진짜 궁금한 사안은 언급 없이 자기 합리화 일색
생방송, 불시 라방 의사도…'말싸움 도구' 우려
'대통령의 Y' 촬영 모습. ⓒ청와대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116만명의 엑스(X)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인 이 분에게 또 다른 직업이 생겼습니다. 무려 구독자 190만을 거느린 유튜버입니다.
사실 190만 구독자가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닙니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이재명’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은 꾸준히 운영 돼왔었고, 주요 행사, 회의, 연설 등을 포함한 대통령의 활동 모습이 이 채널을 통해 공개됐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 아니니 그동안은 ‘유튜버’라고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지난 5일 채널 내 ‘대통령의 Y’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유튜버로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이날 방송은 사전녹화였지만 앞으로는 생방송으로 바꾸면 좋겠다고도 하고, 가끔씩 불시에 집무실 등에서 라방(라이브방송)도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습니다.
이 대통령이 유튜브 활동을 본격화하며 내세운 명분은 밤낮없이 X에 글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과의 소통’입니다. 나아가 유튜브를 통해서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타이틀도 영어단어 ‘와이(Why)’의 발음을 차용한 ‘대통령의 Y’입니다.
정말로 이 대통령이 국민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안에 진솔한 답을 내놓을까요. 설령 본인 입장에서 불편한 얘기도 국민이 궁금해하면 답해줄까요?
5일 방송된 대통령의 Y 첫회. 유튜브 화면 캡처.
일단 이날 방송을 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방송인 만큼 ‘소통’을 주제로 다뤘는데, 본인이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이나 국무회의를 생중계하는 것에 대한 논란에 반박하는 얘기가 절반이었습니다. 아예 “논란이 나쁜 게 아니다”라고도 하더군요. 결론은 앞으로도 SNS든 국무회의 생중계든 계속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게 무엇일까요. 대통령의 Y 첫회가 공개된 시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제는 이른바 ‘조작 기소 특검법’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꽤 오랫동안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 대통령이 5개 재판을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대선에서 승리해 재판이 중단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그가 받던 재판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야당 의원들은 치열하게 막아섰습니다.
그러다 결국 민주당이 지닌 ‘머릿수의 힘’으로 조작 기소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그걸 막아낼 머릿수가 부족한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로 시간 끌기에 나선 겁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정권 검찰청, 국가정보원, 감사원 등의 조작수사·조작기소 등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민주당과 청와대는 이 법안이 윤석열 정부 시절 검찰의 수사권·공소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고, (당초 꾹꾹 눌러 담았던) 공소 취소 조항도 삭제했으니 이재명 대통령 재판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안에 관심이 있는 국민의 절반 가량은 조작 기소 특검법을 ‘이재명 방탄법’으로 생각할 겁니다. 나머지 절반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억울하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고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표현이 다를 뿐 결론은 동일합니다.
즉, 특검이 출범하면 미리 정해진 대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모두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는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치하는 겁니다. 그런 결론이 난다면 특검에게 공소 취소권이 없다 해도 재판을 없애버릴 명분은 확실히 만들어지겠죠.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을 수사해 재판을 없앨 명분을 만든다.’ 오래도록 논란이 돼 왔던 이 문제가 조만간 국회에서 현실화됩니다. 당사자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연히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할 일입니다.
이날 대통령의 Y에서 이 대통령이 국민의 질문에 답한 것은 딱 하나 ‘전자발찌 착용 무용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안이 조작 기소 특검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대체 답할 질문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조작 기소 특검법보다는 전자발찌 착용 무용론이 대통령이 답하기 훨씬 쉽긴 하겠군요. 그런 식의 진행이 국민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제대로 할진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오프닝 개념의 첫 방송인지라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건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본인이 답하고 싶거나 답하기 쉬운 질문보다는 진짜로 국민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5일 방송된 대통령의 Y 첫회. 유튜브 화면 캡처.
이 대통령이 “앞으로는 생방송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자 진행자가 “두렵다”고 하던데, 저도 그렇습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의 발언이 정제되지 않고 생방송으로 나갔다가 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거나 특정 계층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나 않을지 우려됩니다.
고전적인 시스템대로라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하는 얘기를 대변인들이 행간을 풀이해 주는 과정에서 톤을 조절하고,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진의를 잘못 전달했다고 대신 덮어쓰고 물러나면 어느 정도 완충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생방송으로 직접 사고를 치면 빼도박도 못합니다.
이 대통령이 불시에 하겠다는 라방은 더 걱정됩니다. 이게 혹시 X와 마찬가지로 ‘말싸움’의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습니다. 그동안 야권 인사와 보수 논객들은 물론, 유시민 작가와 같은 진영 내 반대 세력까지 유튜브에서 비난을 퍼붓는 일이 많았는데, 말싸움에서 지고 못 사는 이 대통령이 라방으로 반박과 재반박을 주고받는 난장판이 벌어진다면 국민은 더 피곤해집니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막강한 시청자 동원력을 가진 대통령이 기왕 영상으로 소통할 것이라면, 네이버 치지직이나 SOOP 같이 국내 기업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을 활용해 그들의 이용자 수 증가에 도움을 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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