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조사 "장관이 제안"…ETF엔 "누군가 결정"
"비난받는 게 제 역할"이라던 李, 논란엔 거리?
野 "장관 뒤 숨어 모면"…靑 안팎선 '통상 절차'
엄경영 "공식 석상 책임 떠넘기기, 비겁 소지"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어민과의 대화'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정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결정 책임을 장관이나 실무 라인에 돌리는 화법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스로는 '결정하고 비난받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며 책임을 강조해 왔지만, 정작 반발이 큰 정책에서는 결정 주체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라는 비판이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농어민과의 대화'에서 농지 전수조사 논란과 관련해 "그때 장관이 '법률상 해야 되는데 수십 년 동안 안 했으니 전수조사를 하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지를 빼앗으려는 조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제안을 거론한 것이다.
이같은 화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도 레버리지 ETF 손실 논란에 대해 "어떤 과정으로 결정됐는지 세부적인 절차 내용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 부족을 두고는 지난 20일 "2022년부터 작년까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규 주택 인허가 착공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전 정부 시기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는 같은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한 발언과도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농어민과의 대화 모두발언에서 "합의가 안 되면 마지막 남은 구간은 어딘가에 결정을 하고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야권은 일제히 포화를 퍼부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일이 잘못되자 이제 와서 장관 탓을 한다. 불리하면 도지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이라며 "이미 농지 거래가 끊기고 농지 가격은 폭락했다. 엉터리 농지 전수조사 사과부터 해야 할 일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도 페이스북에 "남 탓에 진심인 대통령은 처음 본다"며 부동산 문제와 레버리지 ETF 논란을 함께 거론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이상휘 의원은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비겁하고 무책임한 국정 최고책임자의 민낯"이라며 "일이 잘되면 내 덕이고, 현장 원성이 빗발치고 수사 대상에 오르니 장관 탓으로 돌리는 게 이재명표 리더십인가"라고 직격했다.
정희용 사무총장도 같은 자리에서 "불의의 피해는 다 입혀놓고, 이제 와 장관 뒤에 숨어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SNS에 "지키지 않을 법이라면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쓴 것이 고령농과 상속농가까지 잠재적 투기꾼으로 내몬 출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관의 제안이었다는 설명부터 내놓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대통령의 자세인가"라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이같은 비판이 대통령 발언의 취지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날 청와대 안팎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정 방향을 제시하면 주무 부처 장관이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해 추진하는 것은 통상적인 정책 결정 과정인 만큼, 이를 '남 탓'이나 책임 전가로 볼 수는 없다는 기류가 읽힌다. 농지 전수조사 역시 주무장관이 마땅히 맡아야 할 업무를 소관 부처가 추진한 것일 뿐, 대통령이 결정 책임을 장관에게 넘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난 26일 이 대통령 발언의 무게중심도 책임 소재가 아니라 조사 목적에 있었다고 보는 분위기다. 법률상 해야 했지만 수십 년간 이뤄지지 않았던 실태조사를 바로잡는 차원이었고, 정상적으로 농사짓는 농민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맥락이었다는 것이다. 야권의 '장관 탓' 공세는 발언의 일부만 떼어 낸 정치적 해석이라는 기류도 감지된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공개 석상에서 장관의 제안을 거론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지 전수조사는 시행 이후 고령 농과 상속 농가까지 투기 의심 대상에 오르면서 농촌 반발이 컸던 사안이다. 대통령의 SNS 메시지 이후 본격화된 정책의 책임을 장관에게 돌리는 것처럼 비칠 경우, 오히려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송미령 장관이 먼저 제안을 했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며 "마치 송 장관이 제안해서 그냥 받은 것처럼 얘기해 살짝 불똥이 튀게 하는 게 아닌가.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금 잡으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령 제안을 받아서 지시를 했더라도 기본적으로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대통령이 메시지를 낸 다음에 농지조사가 화두가 됐다고 볼 수 있는데 100% 대통령이 책임져야 되는 것"이라며 "설사 송미령 장관 제안으로 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농어민과의 간담회라는 공식 석상에서 송 장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건 비겁한 것으로 국민에게 비칠 소지가 있다"며 "대통령이 지금까지 만기친람(萬機親覽)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으로 보더라도 송 장관에게 떠넘기기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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