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은 어떻게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됐나 [31st BIFF]

데일리안(부산)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0.09 17:55  수정 2026.10.0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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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황후’부터 ‘킹덤’까지 작품 선택 기준 공개

2006년 데뷔, 올해 20주년

배우 주지훈에게 지난 20년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작품 안에서 필요한 자리를 찾아온 시간이었다. ‘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뒤 ‘아수라’, ‘공작’, ‘신과 함께’, ‘킹덤’, ‘중증외상센터’까지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들었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 주지훈이 강조한 것은 배우 개인의 존재감이 아닌 작품 안에서의 쓰임과 동료들과의 협업이었다.


주지훈은 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데뷔 20년을 돌아보고 작품 선택 기준과 연기 철학을 밝혔다.


2006년 드라마 ‘궁’으로 얼굴을 알린 주지훈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다. ‘아수라’, ‘공작’, ‘암수살인’에서는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고,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과 ‘중증외상센터’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부문 초청작 ‘재혼 황후’로 관객과 만났다.


주지훈ⓒ뉴시스

주지훈은 작품 선택 기준에 대해 “이미지도 중요하고 팬들의 의견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재미있고 제가 그 작품에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면 악역이든 어떤 역할이든 크게 주저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우가 자신의 이미지를 앞세우기보다 작품에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배우는 누군가가 찾아주고 대본을 줘야 하는 직업”이라며 작품마다 요구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지훈ⓒ뉴시스

◆‘재혼 황후’ 두세 차례 거절…“장르가 궁금해졌다”


신작 ‘재혼 황후’는 처음부터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 아니었다. 주지훈은 “두세 번 정도 거절했다.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신뢰하는 분이 편지까지 써서 설득해 주셨다”고 털어놨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는 “도대체 이 장르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사람들이 무엇을 즐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촬영 과정에서도 낯선 설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동양인 배우들이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외국식 이름을 사용하는 상황부터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첫 대본 리딩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주지훈은 “리얼한 톤으로 접근하기보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듯이 생각하면 편하겠다는 느낌이 왔다”며 “그렇게 접근하니 마음의 벽이 많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판타지 장르를 연기할 때는 오히려 현실적인 설득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관객의 판타지를 채워주려면 오히려 모든 것이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판타지니까 가능하다고 넘어가면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황제 소비에슈를 연기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지훈은 “황제의 권력과 캐릭터만 생각하면 훨씬 강하게 연기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면서도 “그렇게 깊이 들어가는 것이 과연 이 장르에 필요한지,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장르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재혼 황후’에 앞서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로 로맨스 장르에 복귀한 것 역시 특별히 의도한 행보는 아니었다. 주지훈은 “로맨스를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다. 촬영하다 보니 로맨스와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요즘 로맨스 작품이 많이 제작되면서 저에게도 제안이 들어온 것 같다”고 밝혔다.


주지훈ⓒ뉴시스

◆ “연기는 팀 작업”…동료와 함께 만드는 순간


작품 선택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현장에서의 협업이다. 주지훈은 배우 혼자 연기를 완성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촬영팀은 영상을 찍고, 저는 글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촬영팀이나 미술팀이 배우보다 낮은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한 관계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수직적인 제작 환경에서 겪었던 어려움도 돌아봤다. 주지훈은 “예전에는 선후배 관계나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굉장히 수직적이었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촬영 직전에 쪽대본을 받는 제작 방식에서는 배우가 충분히 준비하거나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반면 최근에는 사전 제작 과정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주지훈은 “지금은 프리 프로덕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감독님이나 작가님도 배우가 찾아와 디테일을 고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작품을 잘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의 조건으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를 꼽았다. 그는 “정답이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며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토론하고, 동료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리액션형 배우’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지훈은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빛나는 순간들이 나온다”며 “그런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수백 명의 스태프가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무대를 이끌어야 하는 1인극에 대해서는 “그런 순간이 혼자서도 나올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는 순간이 될 것 같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킹덤’ 출연료도 낮았다”…흥행보다 앞선 선택의 기준


‘신과 함께’ 시리즈의 천만 흥행과 ‘킹덤’, ‘중증외상센터’의 성공은 주지훈에게도 예상 밖의 결과였다. 그는 “작품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수치를 목표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며 “성과가 예상보다 훨씬 커지면 얼떨떨하다”고 털어놨다.


특히 ‘킹덤’은 플랫폼의 성장 가능성을 계산해 선택한 작품이 아니었다. 주지훈은 “그때는 넷플릭스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출연료도 평소보다 적었다”며 “처음에는 이 설정을 관객에게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출연을 결정하는 데는 동료들의 조언과 김성훈 감독에 대한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주변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좋은 감독과 함께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 했다”며 “김성훈 감독과 작업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경험 삼아 도전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흥행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주지훈은 “흥행하지 못했다고 열심히 찍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제가 선택한 작품들은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라며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과 함께’의 성공은 기쁨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주지훈은 과거 작품들에 비해 압도적인 흥행 성적을 거둔 경험을 떠올리며 이전 작품들 역시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전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은 인간 주지훈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연기를 하면서 나와 전혀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행동을 쉽게 단정하지 않게 됐다. 주지훈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더 신경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20년 동안 연기를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서는 거창한 사명감보다 성실함을 강조했다. 그는 “사명감까지는 잘 모르겠다. 저에게 흥미를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어떤 직업이든 자신이 해야 할 몫에 대한 성실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동료를 평가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주지훈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동료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도와주면 된다”며 “그 사람을 동료로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부 평가에 대해서는 비판과 비난을 분명히 구분했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날카로운 비판이라도 수용하지만 조롱과 비난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성장을 위한 조언인지 단순히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말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주지훈의 신작 디즈니+ ‘재혼 황후’는 11월 4일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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