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논란이 5년 준비한 통합 동력 갉아먹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지분 경쟁이 아니라 가치 경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신규 CI를 발표하고 있다.ⓒ대한항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필자는 지난해 말 칼럼에서 법적 통합 이후에도 항공기 등록과 운항자 변경, 해외 당국의 인허가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행히 정부의 제도 정비와 합병 인가로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되고 있다.
그런데 통합 대한항공의 출범을 앞두고 전혀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한진그룹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이 지분을 20.15%까지 확대하면서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통합 절차를 넘어 한진칼의 지배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20%라는 숫자만 보면 다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 호반이 대한항공이나 한진그룹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호반은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을 일관되게 ‘단순 투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일반적인 재무적 투자로만 보기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호반의 한진칼 투자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KCGI의 지분 13.97%를 인수해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일부 지분을 팬오션에 매각했다가 다시 사들였고, 최근에는 계열사까지 지분 취득에 참여하면서 그룹 전체 보유 지분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4년에 걸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한 만큼 시장이 그 의도를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호반의 과거 투자 사례도 관심을 끈다. 지난해 호반그룹은 계열사 대한전선과 특허분쟁을 벌이던 LS전선의 모회사 LS 지분을 매입했다. 당시에도 '단순 투자'라고 설명했지만 지분율을 4%대까지 확대했고, 시장에서는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후 호반은 LS 지분을 매각해 상당한 투자수익을 실현했다.
물론 이 사례를 근거로 호반이 한진칼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호반이 '단순 투자'의 범위 안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투자 방식을 보여왔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호반의 숨은 의도를 추측하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앞둔 지금, 한진칼의 주요 대주주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항공사 통합은 단순히 두 회사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항공기와 노선, 운항·정비 체계를 조정하고 서로 다른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마일리지와 고객서비스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두 회사의 안전운항체계를 흔들림 없이 결합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에 5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 지배구조 변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경영진의 관심이 분산되고 조직 구성원의 동요가 커질 수 있다. 통합에 집중해야 할 경영자원이 지분 경쟁이나 경영권 방어에 사용된다면 그 자체가 기업에는 비용이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영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통합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물론 대주주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주주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필요하면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으며, 건전한 주주 감시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이 어떤 방향으로 행사되느냐이다.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경영 효율성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행사된다면 대주주의 영향력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힘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분 경쟁과 경영권 논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통합 항공사에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
현재 조원태 회장 측의 경영권이 호반의 지분 20.15%만으로 당장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지분율 자체보다 호반이 실제로 어떤 주주 행동을 하느냐다. 이사 선임이나 주주제안에 나서는지,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하는지, 다른 주주와 연대하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큰 변화라고 봐야 한다. 정부도 합병 과정에서 나타난 제도적 문제를 정비했고 두 회사 역시 5년 넘게 통합을 준비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경영권 논쟁이 아니라 두 회사를 성공적으로 하나로 만드는 일이다.
호반도 이제 한진칼의 주요 대주주인 만큼 '단순 투자'라는 설명에 머물기보다 통합 대한항공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통합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경영 효율성을 감시한다면 시장도 호반의 투자를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대주주의 역할은 결국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영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때 대주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통합 대한항공의 출범을 앞둔 지금, 한진칼의 두 대주주에게 필요한 것은 지분 경쟁이 아니라 누가 통합 대한항공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쟁이다.
글/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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