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루게임즈 AI 실험, 화제성 넘어 대형 흥행으로
크래프톤 산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개발한 4인 협동 공포 게임 '미메시스'. ⓒ크래프톤
크래프톤의 AI 전략이 '기술 실험'을 넘어 '판매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산하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개발한 협동 공포게임 '미메시스'가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 글로벌 누적 판매량 200만장을 돌파하면서다. AI를 개발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만 쓰지 않고 이용자가 직접 체감하는 재미로 바꾸려는 시도가 상업적 가능성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메시스의 흥행은 배틀그라운드에 쏠린 사업 구조를 바꾸려는 크래프톤에도 의미가 크다. AI 기반 게임이 참신한 실험작에 머물지 않고 수백만장이 팔리는 신규 지식재산권(IP)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향후에도 AI 캐릭터와 게임 제작 도구 개발, 자체 인프라 투자까지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AI 실험작에서 200만장 흥행작으로
렐루게임즈는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 가운데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AI를 그래픽이나 코딩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의 규칙과 플레이 방식 한가운데 배치해왔다.
AI 챗봇과 대화하며 로봇이 연루된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언커버 더 스모킹 건', 이용자가 마이크에 주문을 외쳐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 앞선 결과물이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대형언어모델(LLM)이 틀린 답을 그럴듯하게 내놓는 할루시네이션을 수사를 방해하는 거짓 정보로 활용했다. 마법소녀 루루핑은 음성인식을 전투 체계로 바꿔 이용자가 다소 민망한 주문을 직접 외치면서 적을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두 게임 모두 기존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플레이를 구현해 스트리머와 이용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다만 독창성이 곧 대규모 판매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렐루게임즈의 AI 게임이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넘어 독립적인 흥행 IP로 성장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미메시스의 200만장 판매는 이 물음에 처음으로 뚜렷한 답을 내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메시스는 AI 몬스터가 이용자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모방해 동료 사이에 숨어드는 4인 협동 공포게임이다. 이용자는 눈앞의 캐릭터가 함께 입장한 동료인지, 동료의 행동과 음성을 학습한 괴물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AI가 정해진 경로를 반복하는 적이 아니라 이용자를 관찰하고 속이는 존재로 개입한다. 추격이나 갑작스러운 연출에 의존해온 협동 공포게임의 긴장감을 동료 사이의 불신과 기만으로 옮긴 셈이다.
미메시스는 지난해 10월 얼리 액세스 출시 후 50일 만에 100만장이 팔렸고, 지난달 첫 대규모 업데이트를 거쳐 누적 판매량 200만장을 넘어섰다. 관련 영상의 누적 시청 시간은 약 1034만 시간, 콘텐츠별 최대 동시 시청자 수 합계는 380만명에 달했다. 동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AI라는 설정이 스트리밍과 숏폼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판매량 확대를 거들었다.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지난달 일본 최대 게임 개발자 행사인 'CEDEC 어워드 2026' 게임 디자인 부문에서 한국 게임 최초로 우수상을 받았다.
김민정 렐루게임즈 대표는 "AI가 개발을 돕는 도구를 넘어, 게임의 재미 자체를 만드는 단계로 들어섰음을 보여준 성과"라고 평가했다.
AI 동료부터 LLM 브랜드 출범까지…투자로 증명한다
미메시스의 성과는 렐루게임즈 한 곳의 흥행에 그치지 않는다. 크래프톤은 AI를 연구 조직이나 개발 공정 안에 두지 않고, 이용자가 플레이 과정에서 직접 만나는 캐릭터와 콘텐츠로 옮기고 있다.
미메시스에서 AI가 이용자를 속이는 적으로 등장했다면 'PUBG: 배틀그라운드'에서는 함께 싸우는 동료로 쓰였다. 크래프톤은 지난달 이용자와 음성으로 소통하는 AI 파트너 'PUBG Ally'를 적용한 'Ally Duo' 모드를 베타로 선보였다.
AI 캐릭터 '엘라'는 이동과 아이템 수집, 전투 상황을 파악해 이용자의 음성 명령에 대응한다. 미리 입력된 행동을 되풀이하는 기존 비플레이 캐릭터와 달리 전황과 대화 맥락을 함께 해석해 다음 행동을 고르도록 설계됐다.
크래프톤은 이를 CPC(Co-Playable Character)라고 부른다. 게임에 배치돼 정해진 역할만 수행하는 NPC가 아니라 이용자와 대화하고 협력하며 플레이에 함께 참여하는 캐릭터라는 의미다. 엔비디아 에이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모델을 적용해 지연 시간을 줄인 점도 특징이다.
게임 속 AI 캐릭터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원천 모델과 제작 환경도 투자 대상이다. 지난해 12월 자체 AI 모델 브랜드 '라온'을 출범한 뒤 올해 4월 음성 언어 모델과 실시간 대화 모델, 텍스트·음성 변환 모델, 비전 인코더 등 4종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라온은 단순한 LLM 모델이 아닌 음성·대화·비전 등을 아우르는 크래프톤의 AI 모델 브랜드"라고 말했다. 향후 라온을 게임별 특성에 맞게 조정해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구현하는 데 활용할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자회사 오버데어에서는 자연어 명령만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AI 에이전트를 시험하고 있다. 이용자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문장으로 입력하면 AI가 루아 스크립트를 생성하는 바이브 코딩 방식이다. 향후에는 아트 에셋 배치와 레벨 디자인까지 AI의 역할을 넓힐 계획이다.
크래프톤은 AI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약 1000억원 규모의 GPU 클러스터도 구축했다. 올해부터는 임직원의 AI 도구 사용을 지원하는 데 매년 약 3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분기에는 AI 모델 학습과 딥러닝 기술 개발 등을 포함한 연구개발비로 2040억원을 집행했다.
이처럼 크래프톤의 AI 사업은 다방면에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미메시스의 흥행 사례는 이런 전략이 충분한 수익성까지 기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배틀그라운드 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크래프톤의 다음 먹거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크래프톤은 AI R&D 역량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게임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AI를 활용해 이용자에게 새로운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해 나갈 예정"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