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전차·빗장 몰락' 아르헨·프랑스·스페인, 세계 축구 왕좌 재편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7.20 19:43  수정 2026.07.20 19:43

월드컵의 사나이 킬리안 음바페. ⓒ AFP=연합뉴스

세계 축구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20세기 월드컵 무대를 지배했던 국가들이 사실상 뒤로 물러나고 새로운 축구 철학과 확실한 에이스를 앞세운 신흥 강자들이 21세기 축구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과거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던 ‘삼바 축구’ 브라질, ‘전차 군단’ 독일, ‘빗장 수비’ 이탈리아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그 자리를 아르헨티나, 프랑스, 그리고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이 새로운 축구 통치자로 나서며 새로운 삼각 편대를 구축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의 세력권은 공고해 보였다.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은 브라질과 독일의 맞대결(브라질 우승)이었고, 2006 독일 월드컵은 이탈리아의 통산 4번째 우승으로 귀결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독일이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은 2002년 통산 5번째 별을 가슴에 단 이후 극심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자국에서 열린 2014년 대회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7로 참패한 ‘미네이랑의 비극’은 브라질 축구사의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2018년과 2022년 8강 문턱을 넘지 못하더니,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16강 탈락이라는 치욕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축구 왕국이라는 자존심은 이미 조각난 지 오래다.


독일의 몰락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2002년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10년 연속 3위, 그리고 2014년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컵의 지배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은 뒤, 2022년 카타르에서도 다시 한번 토너먼트의 문턱을 넘지 못해 충격을 낳았다. 48개국으로 확대된 2026년 대회에서조차 32강 무대에서 짐을 싸며 ‘토너먼트의 강자’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탈리아의 상황은 ‘재앙’ 수준이다. 2006년 우승 이후 2010년과 2014년 대회에서 연달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더니, 급기야 2018년, 2022년, 그리고 이번 2026년 대회까지 무려 ‘3회 연속 본선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맛보고 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아주리 군단의 빗장 수비는 이제 역사책 속 유물로 전락했다.


21세기 들어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등 기존 강자들의 내리막 현상이 두드러진다. ⓒ 데일리안 스포츠

기존 강자들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꿰찬 팀들은 확실한 무기를 들고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르헨티나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조별리그 탈락(2002년)과 8강 징크스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는 최근 4개 대회(2014~2026)에서 무려 세 차례나 결승에 진출(2014 준우승, 2022 우승, 2026 준우승)하는 경이로운 결과물을 냈다. 매 대회마다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며 남미 축구의 맹주 자리를 확고히 했다.


유럽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프랑스의 우상향 곡선도 눈부시다. 2002년과 2010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과도기가 있었으나, 2018년 우승, 2022년 준우승에 이어 2026년 대회에서도 4강(4위)에 진입하며 3회 연속 최상위권 성적표를 유지했다. 화려한 스쿼드의 깊이와 안정적인 세대교체 시스템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주인공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 대회 우승 이후 겪었던 암흑기(2014년 조별리그 탈락, 2018·2022년 16강 탈락)를 완벽하게 극복했다. 8경기 단 1실점이라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 실점 우승 신화를 작성한 스페인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과 젊은 재능들의 폭발을 바탕으로 '제2의 황금기'를 선포했다.


브라질은 네이마르 이후의 '크랙'을 발견하지 못했다. ⓒ AFP=연합뉴스

이 같은 판도 변화의 핵심 요인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전술의 중심을 잡아줄 확실한 에이스 또는 구심점의 존재 여부다.


새로운 ‘빅3’를 형성한 국가들은 명확한 리더가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의 전성기 및 황혼기와 궤를 함께하며 원팀으로 뭉쳤다. 메시는 스칼로니 체제 아래서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으며 아르헨티나를 세계 정점으로 이끌었다.


프랑스는 펠레의 재림으로 불리는 킬리안 음바페라는 득점 기계를 보유해 경기 흐름을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무기를 쥐었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 MVP를 차지한 로드리가 중원에서 철벽 방패 역할을 하고, 라민 야말이라는 신성이 측면을 파괴하는 전술을 구축해 냈다.


반면 몰락한 전통의 강호들은 영웅의 부재에 울었다. 브라질은 네이마르 이후 팀의 중심을 잡아줄 ‘크랙’이 나타나지 않으며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독일은 미로슬라프 클로제 이후 고질적인 ‘스트라이커 가뭄’과 중원의 사령관 부재로 전차의 동력을 잃었다. 이탈리아 역시 프란체스코 토티나 안드레아 피를로 같은 경기 흐름을 바꿀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의 맥이 끊기며 암흑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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