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비극 없어야"…완충지대 확대 시작
가자 넘어 레바논·시리아까지 확대
바이든은 막지 못했고, 트럼프엔 더 빨라졌다
임시 점령인가, 새로운 국경인가…중동 문제 핵심 쟁점
ⓒ자료 = 외신 종합.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중동 전쟁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지난 20년 동안 큰 변화가 없던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선은 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 시리아 접경지로 빠르게 확대했다.
2024년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휴전과 민간인 보호를 요구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군사작전을 확대하며 완충지대 구축을 강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확보한 통제구역을 유지·확대하는 움직임은 더욱 뚜렷해졌다.
A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이스라엘이 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와 레바논, 시리아에서 서울(약 605㎢)의 두배 이상인 1220㎢ 이상을 새롭게 통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군사 통제 확대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후 가자지구와 골란고원 등을 점령했지만, 오히려 영토를 줄이는 움직임이 있었다. 2000년에는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했고, 2005년에는 아리엘 샤론 당시 총리가 가자지구에서 군과 정착촌을 모두 철수하는 '가자 철수 계획'을 단행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국경 안보는 강화했으나 새로운 군사통제구역을 대규모로 넓히지는 않았다.
이 같은 균형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무너졌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다시는 국경 인근에서 같은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가자지구 동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완충지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작전을 넘어 장기 통제 전략의 출발점이 됐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와 동부 국경을 따라 넓은 군사 통제지역을 조성했고,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전략 회랑도 장악했다. 현재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가자지구 면적은 약 200㎢로 전체의 60%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새로운 안보 현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4월 12일 이스라엘군이 점령 중인 레바논 남부 지역을 방문해 장병들과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략은 가자에서 끝나지 않았다. 2024년 레바논 남부에서도 헤즈볼라를 국경에서 밀어내기 위한 군사작전이 본격화됐다. 현재 이스라엘은 국경 인근 약 620㎢ 규모 지역을 사실상 완충지대로 관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국경 인근에 복귀할 경우 북부 주민들의 귀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024년 하반기부터는 시리아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 인근 유엔(UN) 완충지대를 넘어 약 400㎢ 지역까지 진입했다. 명분은 이란 혁명수비대와 친이란 무장세력 차단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방식으로 가자지구, 레바논, 시리아를 하나의 안보 전선으로 묶어 군사 통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휴전과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요구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은 계속 유지했다. 이 때문에 미국 안팎에서는 "압박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제동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2024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고 이스라엘은 자국 안보 전략을 더욱 강력히 밀어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에 대한 제약은 눈에 띄게 줄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했던 휴전 압박이나 군사작전 자제 요구를 사실상 거둬들이고, 네타냐후 정부가 제시한 '안보 완충지대' 구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에서의 군사작전을 둘러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논의에서도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결의안 채택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 외교적 방패 역할을 했다. 미국의 군사 지원 역시 조건을 달지 않고 이어지면서 네타냐후 정부는 확보한 통제구역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여건을 확보했다.
ⓒ자료: 외신 종합.
전문가들은 완충지대의 성격이 앞으로 중동 문제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중동 전문가 마이클 스티븐스는 "이스라엘 안보 정책은 더 이상 적을 응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이 접근할 공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완충지대가 장기화될수록 새로운 영토 분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20년간 잠잠했던 이스라엘의 영토 전략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국경을 지키는 데 머물던 전략은 국경 밖에 완충지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중동 전문가들은 중동의 전쟁을 끝낼 열쇠는 군사적 완충지대의 확대가 아니라 이를 정치적 해법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 줄리 노먼은 "완충지대는 단기적 안보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정치적 비전이 없는 휴전은 지속될 수 없다"며 "팔레스타인 자치와 전후 통치체제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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