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시계 삼켰다…명품 시계, 용광로로 사라져”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입력 2026.06.14 14:30  수정 2026.06.14 14:30

수집품 대신 '고철값' 선택…"아름답지만 경제성은 없다"

1월 2일 서울 시내 백화점 롤렉스 매장. ⓒ뉴시스

금값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빈티지 명품 시계들이 중고시장 대신 용광로로 향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오메가와 태그호이어 등의 시계가 이제는 시계가 아닌 '금 덩어리'로 평가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영국과 미국, 유럽의 금 거래업체들은 빈티지 금 시계를 분해해 금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희소성이 낮은 대중적인 럭셔리 시계들이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 금 거래업체 골드트레이더스의 존 화이트는 최근 1970년대 후반 생산된 18K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시계를 녹여 금으로 판매했다. 해당 시계는 경매에 내놓으면 4000~4500파운드(약 740만~830만원) 수준의 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금 함량 가치는 5750파운드(약 1060만원)에 달했다. 결국 시계로 파는 것보다 녹여 파는 것이 35% 이상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준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급등한 금 가격이 있다. 금값은 고점을 찍었던 올해 초에 비해 최근 다소 하락했으나 2024년 평균 가격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반면 중고 시계 가격은 금값만큼 오르지 못하면서 일부 모델은 금속 가치가 시계 가치 자체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특히 오메가, 태그호이어, 브라이틀링 등 공급량이 많은 브랜드의 금 시계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롤렉스와 파텍필립, 오데마 피게 등 희소성이 높은 브랜드는 여전히 수집 가치가 금 함량보다 높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현상이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유산의 소멸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계 전문가 애드리언 헤일우드는 "한 번 녹아버리면 영원히 사라진다"며 "시계 산업의 역사 일부가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금 재활용 물량은 전년 대비 5%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금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경우 더 많은 빈티지 시계가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