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낮췄지만 리스크는 높였다…완성차의 중국 배터리 딜레마 [기자수첩-산업]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6.15 07:00  수정 2026.06.15 07:00

전기차 원가 압박에 중국산 배터리 채택

신왕다 분쟁, 볼보·르노 판매망까지 영향권

가격 경쟁 뒤 숨은 기술 사용 대가도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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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면서 완성차 업계의 계산은 단순해졌다. 차값을 낮춰야 팔린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단가를 낮추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중국 배터리다.


가격 경쟁력과 공급 능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하지만 배터리 조달은 단가표만 보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배터리 제조사 신왕다의 특허 분쟁은 이 계산에 빠진 항목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LG에너지솔루션과 파나소닉의 특허 라이선스를 대리하는 특허관리 전문기업 튤립 이노베이션과 신왕다는 지난 11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독일, 중국, 한국에서 진행 중인 법적 조치도 철회하기로 했다.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을 두고 "기술 혁신에 헌신해 온 기업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사례"라고 밝혔다.


핵심은 분쟁이 배터리 제조사끼리의 싸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왕다의 니켈·코발트·망간(NCM)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 볼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X30'은 특허 침해 금지 가처분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르노 '그랑 콜레오스'는 배터리 팩 특허 침해 조사 대상이 됐고 일본 닛산 '캐시카이'에 적용된 신왕다 배터리도 독일에서 문제 됐다.


이번 라이선스 계약으로 관련 조치는 철회 수순에 들어갔지만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뼈아픈 선례가 남았다. 그동안 배터리 조달 기준은 가격, 성능, 납기, 생산능력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배터리 공급사가 핵심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단이 나오면 리스크는 부품사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차량 판매금지, 수입 제한,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고 라이선스 비용이 배터리 공급가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중국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모두 기술 무임승차로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 업체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 원재료·소재 공급망, 대량 생산능력,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중심의 원가 구조를 갖췄다. 이는 분명한 경쟁력이다. 다만 선도 업체의 핵심 특허를 정당한 대가 없이 활용했다면 그 가격에는 연구개발 비용과 특허 사용료가 빠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24년 '특허 무임승차'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공식화한 것도 이 지점 때문이다. 배터리는 단순 조립 산업이 아니다. 소재, 전극 설계, 공정, 셀 구조, 배터리관리시스템(BMS)까지 장기간의 연구개발이 축적돼야 한다. 후발 업체가 시장에 빨리 진입할 수는 있지만 남의 기술을 비용 없이 쓰는 방식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


이번 합의로 신왕다 배터리를 둘러싼 법적 조치는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완성차 업체들도 당장 판매와 수입 제한 가능성에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남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배터리를 채택할 때 해당 공급사가 특허 사용권을 제대로 확보했는지, 지식재산권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충분히 따져봤는가.


공급계약서 속 특허 보증 조항과 손해배상 조항도 더 이상 형식적인 법무 문구로 볼 수 없다. 배터리 공급사의 특허 문제가 완성차 판매망과 브랜드 신뢰까지 흔들 수 있다면 이는 조달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싸게 사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전기차 가격 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체가 더 싼 배터리를 찾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이번 분쟁은 싼 배터리의 가격표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배터리 조달의 기준에 특허 안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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