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게티이미지뱅크
골프를 즐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첫 티샷을 앞두고 티잉구역에 올라섰는데 푸른 잔디 대신 매트가 깔려 있을 때다.
골퍼라면 누구나 잘 관리된 천연잔디 위에 티를 꽂고 티샷하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래서 일부 골퍼들은 매트 티잉구역을 보면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무슨 골프장이 티잉구역에 매트를 깔아놓느냐"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가끔은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왜 이 골프장은 매트를 깔았을까."
최근 몇 년간 한국 골프산업은 대중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경험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게 되었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가격으로 라운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특히 야간 조명을 활용한 3부 운영은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고, 골프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격이 낮아지면 이용객은 늘어난다. 이용객이 늘어나면 코스 사용량도 증가한다. 그리고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잔디가 받는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잔디가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용량이 늘어난다고 생산량을 늘릴 수도 없고, 훼손됐다고 하루아침에 복구할 수도 없다. 잔디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며 자연의 속도에 맞춰 자란다.
더욱이 최근 골프장이 마주하고 있는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가혹해졌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골프장들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잔디를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졌다.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고, 국지성 집중호우는 일상이 됐다. 겨울철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한파가 찾아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여름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가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봄부터 시작된 고온 스트레스가 가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장의 관리자들 사이에서 "잔디 관리 매뉴얼보다 날씨 예보가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골프장의 관리 방식을 바꾸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해외 골프장과의 단순 비교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골퍼들은 동남아 골프를 경험한 뒤 "태국은 더 싼데 잔디는 훨씬 좋다", "베트남은 그린피도 저렴한데 한국보다 관리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잔디 관리의 현실은 단순히 그린피만으로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골퍼들이 많이 찾는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은 연중 고온다습한 기후가 이어진다. 골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난지형 잔디가 자라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잔디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최적의 생육 조건에 가깝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영하의 겨울을 견뎌야 하고, 한여름에는 35도를 웃도는 폭염과 열대야를 버텨야 한다. 장마와 집중호우, 봄철 건조까지 감당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잔디 관리 난도가 결코 낮은 나라가 아니다.
같은 골프장이라도 잔디가 살아가는 조건 자체가 다른 셈이다.
사막의 농장과 비옥한 평야의 농장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듯, 해외 골프장과 국내 골프장을 단순히 그린피와 잔디 상태만으로 비교하는 것 역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티잉구역은 가장 큰 부담을 받는 공간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골퍼들이 동일한 위치에서 반복적으로 티샷을 하고, 디봇이 발생하고, 발걸음이 집중된다. 여기에 3부 운영까지 더해지면 잔디가 회복할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일부 골프장은 티잉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매트를 활용한다.
이는 관리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잔디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 당장의 플레이 경험은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매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는 푸른 잔디 대신 흙바닥이 남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소비자 역시 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다.
6만~7만 원의 그린피를 지불하면서 20만~30만 원대 프리미엄 골프장과 동일한 코스 품질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주말 오전 황금시간대의 하이엔드 골프장이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비용은 단순히 사업자의 수익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잔디관리 인력과 관수시설, 배토와 보식, 병해충 관리, 장비 유지와 같은 코스 품질 유지 비용으로 다시 투입된다.
품질과 가격은 결국 연결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골프장 운영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인건비와 전기료, 유류비는 물론 농자재 가격까지 크게 올랐다. 기후변화로 인해 관수와 병해충 방제에 투입되는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반면 시장에서는 보다 저렴한 그린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늘날 골프장들은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매트 티샷은 어쩌면 그러한 고민이 가장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편 좋은 코스는 관리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골퍼의 작은 배려도 중요하다.
얼마 전 필자는 한 야간 노캐디 라운드에서 티잉구역에서 어프로치 연습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일부의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용객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작은 행동 하나도 코스 컨디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골프가 신사의 스포츠라 불리는 이유는 스스로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코스를 원하는 마음만큼, 좋은 코스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매트 위에 놓인 공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 매트 아래에는 골프장의 고민이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치솟는 관리비용, 늘어난 이용객과 부족한 회복 시간 속에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골프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매트 위의 티샷은 결코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관리 소홀의 증거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잔디를 지키기 위한 보호장치이자, 대중화된 골프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다음에 티잉구역의 매트를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골프장은 왜 매트를 깔았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는 순간, 우리는 골프장을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골프라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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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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