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대한민국 전 세계 최초 개봉
종이 잡지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이 패권을 쥔 세상에서 '런웨이' 매거진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인다. 저널리즘 산업이 직면한 실제 위기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는 시의적절한 설정이다. 물론 영화가 산업의 대안까지 제시할 의무는 없으나, 이 냉혹한 현실이 단순한 배경 소품으로 전락하고 결국 익숙한 캐릭터들의 재회와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수렴된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이야기는 저널리스트로 자리 잡았던 앤디 삭스(앤 해서웨이 분)가 구조조정으로 해고되며 시작한다. 동시에 치명적인 실수로 신뢰를 잃은 런웨이는 위기 타개를 위해 앤디를 다시 소환하고, 이를 통해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분), 나이젤(스탠리 투치 분)과의 재회가 성사된다. 여기에 디올의 CCO로 거듭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 분)의 등장은 극에 재미를 더한다. 광고를 무기로 친정인 런웨이를 흔드는 에밀리의 모습은 매체보다 브랜드가 우위에 선 현대 패션 산업의 권력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물들의 변화도 흥미롭다. 미란다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더 이상 절대적인 군주는 아니다. 광고주를 위해 타협할 줄도 알고, 독설은 비서의 제재에 막히며, 무엇보다 자신의 코트를 제 손으로 직접 걸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인 미란다의 뒷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인간적이다.
나이젤은 여전한 통찰력으로 극의 중심을 잡지만, 주인공인 앤디는 의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서사 속에서 인상이 다소 옅어 아쉬움을 남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그럼에도 이 영화가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단연 패션이다. 밀라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런웨이와 주연진들의 감각적인 의상은 시각적 쾌감을 완벽히 충족시킨다. 여기에 레이디 가가의 에너제틱한 사운드트랙은 관객의 귀까지 사로잡으며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사실 미란다, 앤디, 에밀리, 나이젤 네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이미 충분한 관람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새로운 담론을 던지기보다 익숙한 관계의 변주에 집중한다. 전작이 사회 초년생의 눈부신 성장기였다면, 이번 속편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이 변화의 파도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존재하는지를 그려낸다. 앤디와 함께 나이 들어온 관객들에게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마치 오랜 친구의 근황을 확인하는 동행처럼 느껴질 것이다.
기대를 뛰어넘는 명작은 아닐지라도, 다시 돌아온 이 매혹적인 세계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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