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대학농구의 전성시대 이끈 양대 산맥
나란히 프로농구 주역으로 성장하며 선의의 경쟁
1990년대 한국 농구는 대학농구의 전성시대였다.
프로출범 이전까지 국내 최고의 무대였던 농구대잔치에서 힘과 높이를 겸비한 대학팀들이 실업팀들을 압도, 한국농구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현상이 가속화됐다.
특히 초강세를 보인 대학팀 속에서도 사학의 두 명문, 연세대와 고려대는 90년대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대학농구 판도를 사실상 양분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교의 라이벌 의식이지만 특히 90년대의 경쟁은 유난히 치열했는데, 사실상 두 팀의 성적에 따라 농구대잔치와 한국농구의 판도가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세대는 ‘국보급 센터’ 서장훈을 비롯해 ‘컴퓨터 가드’ 이상민, ‘람보슈터’ 문경은 등을 앞세워 1993-94 시즌 대학팀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고려대도 ‘매직히포’ 현주엽과 ‘에어본’ 전희철, ‘피터팬’ 김병철 등 연세대에 뒤지지 않는 호화멤버로 95년 대학무대 전관왕, 1995-96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우승 등을 달성하며 연세대와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들은 모두 프로화 이후에도 한국농구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선수들로 성장해 소위 ‘농구대잔치 세대’로 불리기에 이른다.
신 라이벌 구도의 시작
80년대 소위 허재-강동희-김유택 트리오로 이어지는 중앙대의 전성시대에 가려 한동안 주춤하던 연세대-고려대의 라이벌 구도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4년부터다. 양교는 공격적인 선수 스카우트를 통해 몇 년간 고교랭킹 1·2위 선수들을 싹쓸이하며 막강한 전력구축에 성공했다.
연세대는 문경은·김재훈(90학번), 이상민·김성헌(91학번), 우지원·김훈·석주일(92학번), 서장훈(93학번), 김택훈·구본근(94학번), 조상현·조동현·황성인(95학번) 등 우수한 선수들을 매년 영입하며 짜임새 있는 전력으로 우승후보로 급부상하기에 이른다.
특히 93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서장훈의 등장은 한국농구에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전에 한국농구가 보유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기술력을 겸비한 서장훈은 등장하자마자 쟁쟁한 실업 강호를 제치고 연세대에 농구대잔치 패권을 안기며 대회 MVP와 리바운드왕까지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서장훈·이상민·문경은·김훈·우지원으로 구성된 당시 연세대의 베스트 5는 지금도 역대 최고의 라인업중 하나로 꼽히며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14승)과 플레이오프 포함 20연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전력을 뽐냈다.
상무와 격돌했던 결승 3차전에서 아쉽게 분패하며 통합 전승우승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21승 1패(95.4%)라는 압도적인 승률로 정상을 차지하며 독수리 전성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고려대는 연세대에 비해 리빌딩이 다소 늦었지만 ‘아이언 콤비’로 불리는 전희철·김병철(92학번)을 시작으로 양희승·박재헌·박훈근·노기석·박규현(93학번), 현주엽·신기성(94학번), 이정래·이규섭·강대협(96학번)등 다양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훗날 선수층에 있어서는 연세대보다 더 두꺼운 ‘더블 스쿼드’ 전력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대가 연세대에 비견할만한 전력을 완성한 것은 역시 ‘매직히포’ 현주엽이 입학하면서부터다. 서장훈의 휘문고 1년 후배이자 일찍이 초고교급 선수로 불리던 현주엽은 힘과 기술을 겸비한 리그 최고의 만능 포워드로 서장훈의 최대 라이벌로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현주엽의 등장으로 고려대 역시 전희철·김병철·양희승·신기성으로 이어지는 베스트5 라인을 마침내 완성한 셈이다.
연세대가 우승을 차지했던 1993-94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의 벽에 막혀 8강에 그쳤던 고려대는 한달 뒤 벌어진 MBC 대학연맹전을 통해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의 부활을 알렸다. 서장훈과 현주엽의 대학 첫 맞대결이던 예선전에서 연세대는 문경은의 졸업공백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깨고 82-59로 대승하며 농구대잔치 우승팀의 저력을 발휘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이후 패자부활전을 거쳐 다시 올라온 고려대는 연세대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최종전에서 전반 한때 15점차로 뒤졌던 고려대는 후반 석주일과 서장훈이 잇따라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을 계기로 거센 추격전을 펼쳤다. 고려대는 67-67로 맞선 종료 0.4초전 현주엽이 연세대 김택훈의 파울로 얻어낸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농구대잔치 챔피언에게 짜릿한 2점차 역전승을 거둔다.
서장훈의 버저비터로 엇갈린 운명
1994년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캐나다 세계선수권으로 인해 양교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차출됐기 때문에 대학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맞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서장훈과 이상민이 국가대표 차출로 장기간 팀을 비운 연세대는 대학무대에서의 부진으로 한때 농구대잔치 탈락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연세대는 당시 마지막 기회였던 3차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를 65-40으로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가까스로 출전티켓을 따냈다.
1994-95농구대잔치 정규리그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연세대는 전성기에 접어든 서장훈을 앞세워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정규리그 전승우승을 달성했다. 고려대도 실업최강 기아자동차에게 한 차례 패한 것을 제외하면 무패행진으로 승승장구했다.
공교롭게도 양 팀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다시 맞붙게 된다. 무패의 연세대와 1패의 고려대는 최종전 결과에 따라 승자승 원칙으로 정규리그 1위가 결정되는 상황.
연세대는 서장훈의 골밑장악과 우지원·이상민의 외곽슛 폭발에 힘입어 종료 2분전까지 꾸준히 10점차 내외의 리드를 유지했다. 하지만 경기 막판 이상민의 갑작스런 부상이탈로 경기운영의 리듬이 흔들렸고 고려대의 외곽포 공세에 추격을 허용했다.
75-75로 맞선 종료 4초전, 연세대의 공격기회에서 우지원의 빗나간 슛은 석주일의 손을 맞고 아웃됐지만 심판은 다시 연세대의 공격권을 선언했다. 마지막 작전타임을 거쳐 기회를 잡은 것은 서장훈.
고려대 박재헌의 밀착마크를 뚫고 3점 라인 근처에서 던진 장거리슛은 거짓말처럼 림을 갈랐고 결국, 승리를 연세대에게 돌아갔다. 이는 서장훈의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의 하이라이트이자, 농구대잔치 시절의 명장면을 언급할 때 지금도 빠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정규리그와 달리 플레이오프의 주인공은 두 팀 모두 아니었다. 이상민, 김훈에 이어 서장훈까지 줄줄이 부상에 쓰러진 연세대는 플레이오프에서 8위 삼성전자에게 덜미를 잡히며 2연패에 실패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스포츠맨십을 상실한 거친 플레이로 일관해 실려 나가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그만큼 이날 경기는 90년대 농구대잔치 사상 최악의 폭력경기중 하나로 꼽힌다.
고려대는 4강에서 최강 기아자동차를 만나 3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으나 허재와 강동희를 막지 못해 역시 고배를 마셨다. 결국, 양 팀 모두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던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두 팀의 플레이오프 재회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고물리는 천적관계
1995년 대학 농구는 고려대의 독주 체제였다. 이상민의 졸업에 이어 서장훈 마저 미국유학으로 1년간 국내 무대를 비운 반면, 고려대는 지난해의 베스트 5가 모두 건재해 양교의 팽팽하던 전력균형이 깨졌다.
고려대는 그해 대학연맹전과 고·연 정기전, 전국체전 등을 싹쓸이하며 5관왕을 달성했다. 현주엽은 어느덧 국내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했고 전희철·김병철의 득점력은 물이 올랐다. 워낙 두터운 선수층으로 다른 팀에는 주전이 될 만한 선수가 벤치에서 썩고 있다는 다른 팀들의 질투가 이어질 정도였다.
고려대는 1995-96 농구대잔치 정규리그에서는 전승행진을 달렸다. 지난 94·95년에 이어 대학팀이 3년 연속 정규리그를 무패로 제패하는 강세를 이어간 것.
반면, 연세대는 졸업반이 된 우지원·김훈·석주일을 중심으로 조상현·조동현·황성인 등 신입생들이 합류하며 외곽포 군단으로 탈바꿈했다. 연세대는 95년에는 비록 고려대를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지만 그해 농구대잔치 정규리그에서 고려대를 상대로 연장전까지 명승부를 펼친 끝에 1점차로 아깝게 분패했다. 정규리그 성적도 고려대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유일한 대항마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양 팀의 플레이오프 재회는 이루어지 못했다. 유독 양 팀은 프로화 이전 농구대잔치 플레이오프에서는 만날 인연이 없었다.
이번에도 고려대의 우승도전에 앞길을 막은 것은 실업 최강 기아자동차. 정규리그에서 주전들의 노쇠화로 고전했던 기아는 지난해에 이어 4강에서 또 한 번 고려대와 조우했고 첫 경기에서 36점을 몰아넣는 허재의 폭발력에 힘입어 74-52로 대승했다.
절치부심한 고려대는 2차전에서 체력전으로 몰아붙여 경기를 일찍 포기한 기아를 82-61로 물리치고 설욕에 성공했지만, 최종전에서 다시 힘 한 번 못써보고 71-52로 완패하며 쓸쓸히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경기는 80~90년대 한국농구를 지배한 허·동·택 트리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으며 전희철과 김병철의 고려대 마지막 졸업경기이기도 했다.
연세대도 4강에서 사실상 연대 OB팀이나 다름없는 문경은·이상민의 상무에 덜미를 잡혀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1995-96농구대잔치를 끝으로 양교의 주역들은 대거 졸업했고 라이벌 구도는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된다. 미국 유학에 실패하고 복귀한 서장훈의 재등장으로, 연·고전은 다시 서장훈 VS 현주엽의 맞대결 구도로 압축됐다.
고려대는 96년 MBC 대학연맹전에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던 서장훈의 연세대를 대파하며 6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서장훈은 이후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의 7회 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모교를 2년 만에 대학정상으로 복귀시켰다. 대학농구의 주도권은 다시 고려대에서 연세대로 넘어왔고, 연세대는 이후 44연승의 파죽지세를 달리며 절대강자의 자리에 복귀했다.
1996-97 농구대잔치는 프로화 출범이전 실업과 대학팀이 함께했던 마지막 대회다. 이전과 달리 정규리그는 대학과 실업이 분리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플레이오프에서만 크로스 오버 형식으로 격돌했다.
연세대는 이 대회에서 상무를 누르고 12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 지난 9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농구대잔치 정상에 복귀했다. 고려대는 4강에서 또 한 번 상무의 벽에 막혀 분루를 삼켜야했다.
90년대 연·고전 라이벌 구도의 마지막은 프로출범으로 대학팀들로만 치러진 1997-98농구대잔치였다. 고려대는 여기서 연세대학의 44연승 행진을 저지시키며 라이벌의 면모를 이어갔고 양 팀은 내내 팽팽한 경쟁을 이어갔다.
나란히 졸업반이 된 서장훈과 현주엽의 마지막 대결은 처음으로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4강전에서 이루어졌다. 현주엽은 이 시리즈에서 평균 30점을 넘는 득점력으로 서장훈을 압도하며 대학 시절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시리즈는 결국 혈전 끝에 연세대가 2승 1패로 승리하며 결승전에 올라 경희대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3번째 농구대잔치 정상에 오른 연세대가 90년대 라이벌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프로화 그 이후
양교의 90년대 전성기를 주도했던 막내격인 서장훈과 현주엽의 졸업을 전환점으로, 이제 독수리와 호랑이의 경쟁구도는 대학에서 프로로 완전히 넘어오게 된다.
양교의 주축 선수들은 프로 이후에도 소속팀과 리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한국농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대표팀에서도 의기투합해 1997년 사우디 ABC대회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끄는데 크게 공헌했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의 전성기 멤버들을 기준으로 한 커리어 경쟁은 연세대의 우위로 꼽힌다. 연세대는 서장훈의 입학에서 졸업하기까지 5년간 국내 최고의 무대였던 농구대잔치를 무려 세 번이나 제패한 반면, 고려대는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프로에서도 명암은 다소 엇갈린다. 94년 연세대의 첫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던 독수리 5형제(서장훈·이상민·우지원·문경은·김훈)들은 모두 합산 총 38차례의 PO를 경험했으며, 우승반지 합계도 7개에 이른다. 또한, 연세대 출신들은 2007년 가장 먼저 은퇴한 김훈을 빼면 모두 여전히 코트에 건재하다.
반면, 고려대는 95년 대학무대 전관왕 멤버(전희철·김병철·현주엽·양희승·신기성)를 기준으로 PO진출 경험은 27회. 우승반지는 단 3개로 격차를 드러낸다. 전희철, 현주엽, 양희승은 벌써 은퇴했고, 남은 선수는 김병철과 신기성뿐이다.
양교의 농구대잔치 세대 멤버 중 가장 많은 우승반지를 거머쥔 선수는 단연 이상민(3회)이다. ‘기록의 사나이’ 이상민은 통산 PO 출전경험에서도 서장훈과 함께 10회로 가장 많으며, 통산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최다 출전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고려대는 김병철이 8회로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김병철은 원년멤버로서 유일하게 소속팀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12년째 오리온스를 지키고 있어 KBL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정규리그 MVP를 경험해본 선수는 모두 4명. 연세대는 서장훈과 이상민이 각각 2회, 고려대 출신은 김병철과 신기성이 각각 1회 수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의 김훈, 고려대의 현주엽과 양희승은 농구대잔치 세대로서는 드물게 프로무대에서는 한 번도 우승경험을 맛보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불운했던 케이스다. 특히 PO 출전경험이 가장 부족한 선수는 현주엽으로 우승은커녕 챔피언결정전에도 한번 나가보지 못했다.
플레이오프 총 10경기에 출전해 1승 9패. 단일경기가 아닌 PO 시리즈 승률은 0%로 농구대잔치 세대 중 가장 명성에 비해 PO운이 없었던 선수로 꼽힌다.
프로화 이후 명암이 엇갈린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슈터와 가드들은 대체로 상한가를 달린 반면, 빅맨들은 서장훈 정도를 제외하면 일찍 하향세를 걸었다.
현주엽과 전희철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역시 외국인 선수의 등장으로 인한 국내 장신선수들의 입지축소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시절과 달리 프로무대에서 잦은 부상과 소속팀의 불운으로 전성기가 짧았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농구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면서 옛 선수들은 점차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돌릴 수는 없지만 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농구대잔치 세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팬들로서는 격세지감에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한번쯤 이들이 다시 모여서 팬들을 위하여 연세대 vs 고려대, 추억의 올드스타전을 펼치는 이벤트라고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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