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아랍에미리트(UAE) 호르파칸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에 유조선과 화물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관대한 패권 국가 미국
누구나 알다시피 미국은 패권국가다. 과거 패권국가는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대가로 엄청난 비용을 전 세계에 징수해 왔다. 영국이 그랬고 네덜란드가 그랬고 그 이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그랬다. 동방에서는 중국이 조공을 받았고 중앙아시아에서는 페르샤와 튀르키예가 통과세를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은 예외적 패권국가였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 철권을 휘두르기보다 관대한 패권국가로 세계 질서를 유지해 왔다. 2차대전의 전범국가 독일에서 전쟁 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마샬 플랜으로 독일에 라인강의 기적을 선물해줬다. 비겁한 진주만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전쟁 배상금을 받지 않고 천황제 전통을 존중해주고 80년 동안 일본 상품을 사줘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키웠다.
대한민국만 해도 6.25때 미군을 파병해 구원해주고 20년 동안 온갖 원조해주고 80년 동안 소련과 중국,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고 최근 50년 동안은 한국 상품의 최대 구매자였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미국은 80년간 유지했던 관대한 미국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패권국가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동맹국들은 당황하고 국제 언론은 힘의 정치 부활이라는 말로 비판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말마따나 그건 그동안 미국이 특별히 시혜를 베푼 것이지 동맹국의 권리가 아니다.
에너지 패권국 미국
과거 미국은 에너지 수입국이었지만 지금은 에너지 순수출국이다. 미국의 셰일 석유와 셰일가스는 중동 석유와 대체 관계다. 국제 유가가 70달러 이상이어야 셰일산업은 채산성이 맞다.
중동 석유가 문제 없이 원활하게 공급돼 국제 유가가 70달러 미만이면 셰일 산업은 적자가 되고 유지할 수 없다. 미국 셰일 산업은 그동안 저렴한 중동 석유와 베네수엘라 석유 때문에 손익 분기점 수준에서 박한 마진으로 버텨왔다.
올 초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참수 작전을 감행해 마두로 대통령을 연행하면서 베네수엘라 석유는 미국이 장악했다. 거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100달러 선에서 형성되면서 셰일 산업은 어마어마한 마진을 챙긴다.
봉쇄가 장기화될수록 미국 에너지 산업은 더 큰 이익을 얻는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의 공격에 보복한답시고 걸프 연안국의 석유 가스 인프라를 무차별로 공격해 파괴해 버렸다. 호르무즈가 개방되더라도 중동의 석유·가스 인프라는 최소 6개월 길면 1년 이상 가동이 어렵다.
에너지 시장, 미국 준독점 체제
중동의 석유 인프라가 복구되지 않는 한 세계 에너지 산업은 미국의 준 독점 체제로 돌아간다. 미국과 트럼프, 트럼프를 에워싼 에너지-금융-방위산업 네트워크는 내심 저렴하고 질 좋은 중동 석유가 세계 시장에 다시 공급되는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고 싶다.
다만 미국 손으로 늦추면 안 된다. 국내외에서 원성이 자자할테니까. 그러니 트럼프와 핵심 지지 세력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해도 급할 게 없다. 어쩌면 지금 상태가 트럼프로서는 가장 원하던 상태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마음껏 공격해 이란의 손발을 끊고 미국은 직접 전투에 나서지 않으니 미군 피해도 없다. 이란은 무기도 식량도 의약품도 반입 못하고 석유 수출도 못하니 수입도 없고 에너지 공급이 차단된 중국 저가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고… 한국과 일본, 유럽의 불만이 조금 맘에 걸리지만, 트럼프는 말한다. “할 수 있으면 호르무즈 당신들 손으로 개방해 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미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이란 사태에 대해 발언하며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호르무즈 역봉쇄 전략
역봉쇄 전략은 아무도 생각 못했던 참신한 전략이다. 그러나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질수록 미국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있을 수 없는 전략은 아니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도 피해자’라는 잘못된 전제로 전망하니 제대로 된 전망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사실 미국은 압도적인 해상 전력을 바탕으로 한 봉쇄전략을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하는 나라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원자폭탄이 아니었다. 미군이 일본의 연근해를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미군은 6만 개의 기뢰를 일본 연근해에 뿌렸다.
아직 철도와 도로망이 발달하지 못해 연근해 해운에 물류를 의존하던 일본 전 국토는 아사 지경에 빠졌다. 철광석과 구리, 알루미늄, 고무, 석유 등 전쟁 물자 반입이 완전 차단돼 생산 시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식량과 생활 필수품의 이동도 불가능해져 아사작전(Operation Starvation)이란 작전명 대로였다.
1960년대 소련은 미국의 내해라 할 수 있을 카리브해의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고 미국의 뒤통수를 노렸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와 통과 선박 나포 검속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결국 초강대국 소련이 굴복해 소련 배는 돌아가고 쿠바 미사일 기지는 무산됐다. 이제 트럼프는 일본을 굴복시키고 소련을 굴복시킨 그 전략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역봉쇄, 양대 핵심 요소
역봉쇄 전략의 핵심은 딱 2가지다. 첫째,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는 루트를 차단한다. 미국은 중국이 유조선이나 식량 운반선에 작고 가벼운 견착식 미사일을 실어 이란에 들여보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부인했지만 역봉쇄와 검속에서 증거가 잡히면 중국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둘째, 이란에 통행료를 내고 들락거리는 배와 나라에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다. 원래 이란에 적용되던 세컨더리 보이콧을 되살려 철저히 적용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당연한 조처다. 그리고 이란에 제안했던대로 해협의 공동 관리를 실행에 옮긴 셈이다. 해협 안에서는 이란 너희가 통제해라, 대신 해협 밖에서는 내가 통제한다. 그러면 누가 유리하나? 당장은 2600척이 해협에 갇힌 현재로서는 이란이 유리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들어가는게 없으면 나오는 게 없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 해협 안에 머무는 선박이 없어지면 그 때부터는 미국이 주도하게 된다. 결국 이란은 트럼프의 의도대로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