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 속 李·習 베이징서 만난다
마두로 변수에 한중 관계 관리 균열 우려도
균형 외교 시험대…정부 "현 상황 예의주시"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5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사태를 계기로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에 나서면서 미중 간 긴장을 넘어 한반도 외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베네수엘라 사태 직후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이다.
외교가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축출된 이번 사태를 두고 중국이 중남미를 자국의 전략적 영향권으로 만들려고 공을 들여온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중국이 주장하는 '레드라인'을 건드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한국이 중국의 대외 메시지를 전달받는 상징적 외교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정상회담을 둘러싼 외교적 부담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시 주석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가 회담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17년 이후 약 9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찾았지만 예기치 못한 국제 정세 등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중국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국제질서 차원의 문제로 확장하려는 기류가 관측된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두고 주권 국가에 대한 내정 간섭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왔다.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베네수엘라를 직접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권 존중' '다자주의 질서 수호' 같은 원칙론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한국의 외교적 입지다. 한미 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아온 한국이 중국의 문제 제기에 일정 부분 공감을 표하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워싱턴과의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의 문제 제기를 외면하거나 원론적 수준에 머물 경우 한중 관계 관리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사태가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시 주석의 외교 일정 가운데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사실상 유일한 최고위급 대면 외교라는 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메시지 전달의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할 유인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처한 외교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미 화약고로 부상한 대만해협 문제가 상존하는 가운데, 미국은 '힘에 의한 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다. 반면 중국은 스스로를 '다자주의와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참칭하며 맞서는 구도를 강화하고 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전략을 19세기 고립주의를 상징하는 먼로주의에 거래 중심의 실리 외교를 결합한 이른바 '돈로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같은 미중 간 서사 경쟁 속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의 프레임에도 쉽게 편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중 정상회담이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서 해석될 경우, 회담의 본래 목적이었던 경제·민생 협력, 공급망 안정, 인적 교류 확대 논의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단순한 양자 외교를 넘어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의 균형 감각이 시험대에 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어느 한쪽의 논리에 말려들지 않으면서도 국익을 지켜내는 정교한 메시지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계기로 미중 갈등의 전선이 중남미로까지 확장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 외교는 예상치 못한 고난도의 시험 문제를 마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중 정상회담이 단기 성과를 넘어 중장기 외교 지형 속에서 어떤 의미를 남길지 주목된다.
한편 외교부는 지난 4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 및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관련한 대변인 성명을 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역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당사자들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대화를 통해 베네수엘라 상황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망한다"며 "우리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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