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급제 없다더니…저신용자는 아예 대출 문 밖으로 내몬 정부

원나래 기자 (wiing1@dailian.co.kr)

입력 2025.12.17 15:04  수정 2025.12.17 16:05

939점 넘어야 1금융권 문턱

제도권금융 대출 비중 3년새 7.2%p↓

“규제가 만든 대출 양극화…고신용자만을 위한 시장”

지난 10월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39~946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4~944)점과 비교하면 하단 기준이 5점이나 상승했다.ⓒ연합뉴스

금융계급제를 언급하며 지적해온 정부가 정작 가계부채 규제를 통해 신용점수에 따라 차주를 노골적으로 걸러내는 계급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 억제를 명분으로 한 획일적 대출 규제가 은행권 전반에 초고신용자 위주의 선별 대출을 고착화시키면서 저신용자는 아예 대출 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다.


1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39~946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4~944점)과 비교하면 하단 기준이 5점이나 상승했다.


가계부채 관리 목표를 맞추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 총량을 조이면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차주만 선별적으로 받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고신용자만을 위한 대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저신용자 비중이 높다고 알려진 인터넷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의 가계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923~949점으로 1년 전(906~927점)보다 하단이 무려 17점이나 상승했다.


신용점수의 변별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대출 규제까지 겹치자, 은행권 문턱을 넘지 못한 차주들이 카드사·캐피탈·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1000억원 증가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2금융권에서 발생했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1조9000억원으로 전월(3조5000억원) 대비 크게 줄었지만, 2금융권은 2조3000억원 늘며 오히려 증가 폭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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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중·저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은행에서 밀려난 차주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은 오히려 커지고 금융 취약계층의 부채 위험은 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도 수치로 확인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주최한 ‘소비자금융 컨퍼런스’에서 은행·상호금융·저축은행·대부업체·카드론 등 전 금융권의 총 신용대출 공급액 가운데 저신용자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말 31.1%에서 2024년 23.9%로 3년 새 7.2%p나 급감했다고 밝혔다.


제도권 금융이 저신용자를 배제하면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통로가 고금리·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금융권 전반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공급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정부의 가계부채 규제가 사실상 ‘초고신용자’ 중심으로만 대출을 운용하고 있고, 그 부담은 중·저신용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금융계급제를 문제 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신용점수 인플레로 고신용자마저 2금융권을 찾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가계부채를 잡겠다던 규제가 결과적으로는 대출 합격권을 초고신용자에게만 허용하고 중·저신용자를 고금리 시장으로 내모는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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