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향로봉함 화재, 394억 날렸다…안전수칙 위반이 '불씨'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12.08 17:01  수정 2025.12.08 17:03

'기본 절차' 문제…'펌프 먼저·밸브 나중' 무시해

연료유 이송시 정유기가 지침이지만 펌프 사용

'부사관 공백·장비 노후화·소화기 부족' 도마에

함정 도태 불가피…"복구비, 활용 가치보다 높아"

화재 당시 향로봉함 내부 사진 ⓒ해군

지난 7월 발생한 2600t급 해군 상륙함 '향로봉함' 화재 사고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근무자들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방산 예산 394억원이 투입돼 건조된 함정이 인재(人災)로 사실상 운명을 다하게 된 셈이다.


군 당국은 함체 손상이 예상보다 심각해 향로봉함을 당초 수명보다 약 4년 앞당겨 조기 퇴역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허술한 내부 통제와 안일한 안전의식으로 주력 전력을 허공에 날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군은 8일 이같은 내용의 향로봉함 화재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향로봉함은 지난 7월 31일 오후 학군사관후보생 실습 지원 후 진해항으로 입항하던 중 보조기관실에 불이 나 부사관 1명이 화상을 입고 수십 명이 연기흡입 등으로 치료받았다.


해군이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결과, 이번 화재는 보조기관실 근무자들이 연료유 이송 작업 과정에서 안전수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이틀 전인 지난 7월 29일 기관부 병사 2명이 보조기관실에서 연료유 이송펌프와 연결된 '샘플링 밸브'를 열어 휴대용 연료통에 연료유를 받은 후 밸브를 잠그지 않은 것이 1차 원인이었다. 연료유를 받았으면 밸브를 잠가야 했지만 실수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고 당일 기관부 하사는 연료유 이송 작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송 펌프를 정지시키지 않은 채 출구 측 밸브를 먼저 차단해 연료유 계통 내부에 과도한 압력이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적으로는 펌프를 먼저 멈춘 뒤 밸브를 잠가야 하지만 해당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개방돼 있던 샘플링 밸브에 연결된 호스가 파열되면서 연료유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사됐고, 이렇게 뿜어져 나온 연료유가 인접한 발전기의 고온 부위와 접촉하면서 폭발성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이 사고조사위의 결론이다.


또 연료유 이송시 정유기 사용이 지침이지만 이송 펌프를 사용했다. 정승일 사고조사위원장(준장 진)은 "향로봉함의 경우 장비(정유기)가 노후해 작업 시간이 짧은 이송 펌프를 같이 사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이번 사고의 배경 요인으로 부사관 인력 충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도 함께 지목했다. 향로봉함의 이상적인 편성은 원사 1명, 중사 3명, 하사 5명, 병 5명이지만, 사고 당시에는 원사 1명, 상사 4명, 하사 1명, 병 5명만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 위원장은 "하사들이 작업할 때 중사들이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알려줘야 하는데 (중사가 없다 보니) 미흡했다"고 말했다.


2016년 3월 7일 한미연합상륙훈련이 시작된 포항 앞바다에서 해군 잠수함, 향로봉함(상륙함)이 작전 수행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로 연료유 이송 작업을 수행하던 하사 1명이 우측 팔과 등에 3도 화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 외 승조원 35명은 연기 흡입 등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현재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화재 당시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현장 관계자들이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응했으며 인접 부대와 관련 기관이 적극 협조하면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완전 진화까지 만 하루 이상이 소요된 데 대해서는 장비 노후화와 친환경 소화기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관련해 해군은 소화기 확보 문제에 대해 수사단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1997년 394억원을 투입해 건조된 향로봉함은 설계상 사용 연한이 30년으로, 약 4년의 잔여 수명이 남아 있었지만, 함교·기관조종실·승조원 생활 구역 등 주요 공간이 광범위하게 손상되면서 조기 도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해군 관계자는 "손상 장비의 복구에 드는 비용이 복구 후 활용 가치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샘플링 밸브 안전장치 강화와 작업 매뉴얼 보완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이행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른 추가 후속 조치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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