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보호가 본사 리스크로”…편의점, 계약해지권 추진에 ‘난색’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11.11 07:04  수정 2025.11.11 07:04

경영난 점주 보호 취지…공정위 ‘계약해지권’ 제도화 추진

점주 “본사 승인 없이 폐업 가능해져야” 환영 분위기

본사 “투자비 회수·계약 안정성 무너질 것” 반발

단체교섭권과 중복 우려…“이중규제로 혼선 불가피”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담배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다.ⓒ뉴시스

편의점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가맹점주에게 과도한 위약금 없이 계약을 중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해지권’ 제도화 추진에 나서면서다. 가맹점주의 권익 보호 취지는 공감하지만, 자칫 계약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다.


1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가맹점사업자의 계약해지권 보장방안 등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가맹본부와 점주 간 힘의 불균형,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분쟁이 늘고 있어 점주가 손해 없이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정위는 상법상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해지할 수 있다’는 법정해지권 조항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지금은 조항이 모호해 사실상 유명무실하지만, 앞으로는 가맹사업법에 해지 사유와 절차를 명시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폐업 시 위약금 부담 완화 방안도 포함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가맹본부는 2013년부터 10년 새 3배 가까이 늘고, 가맹점 수도 19만개에서 36만개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분쟁조정 신청 건수도 2022년 691건에서 지난해 758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공정위는 ‘적자에도 폐업이 어려운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폐업 시 과도한 위약금이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위약금 관련 분쟁조정 건수는 2022년 135건에서 지난해 208건으로 50% 이상 늘었다.


편의점 점주를 포함한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이번 제도 추진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미 본사와 협의를 거쳐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폐업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본사 승인 없이는 계약을 종료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점주단체들은 위약금 산정 기준이 명확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공정위 고시 기준이 존재하지만, 실제 감면 폭이나 적용 여부는 브랜드마다 달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본사가 해지 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매출이 적자여도 위약금 부담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다”며 “법으로 해지권이 보장되면 최소한의 자율권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상혁 편의점점주협회 회장은 “적자가 나더라도 위약금이 억대에 달해 폐점을 결정하기 어렵다”며 “많게는 수억원을 내고 나가는 게 나은지, 손실을 감수하고 버티는 게 나은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점포 운영을 위해 대부분 보증보험이나 부동산 담보를 설정하기 때문에 폐점 시 곧바로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도 많다”며 “서울·수도권의 주요 상권은 대부분 본사가 임차권을 쥐고 점주에게 전전세 형태로 운영하게 하는데, 매출이 오르면 계약 2년 만에 점주를 내보내거나 수익 배분율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점주가 투자금 전액을 부담하면서도 권한은 거의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편의점 계산대가 근로자 없이 비어 있다.ⓒ뉴시스

반면 편의점 본사는 우려하는 눈치다.


계약해지권이 무분별하게 적용될 경우, 인테리어·물류·운영비용 등 초기 투자비 회수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편의점 본사들은 점포당 평균 5000만~1억원 가량의 본사 부담 비용(간판·냉장설비·물류 보조 등)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편의점업계는 이번 제도 추진의 가장 큰 문제로 ‘계약 안정성 훼손’을 꼽는다.


업계에 따르면 모든 프랜차이즈는 일정 기간의 계약을 전제로 사업 구조를 설계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인테리어·시설·물류망 등은 통상 5년의 계약 기간을 기준으로 투자금 회수가 이뤄진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계약의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 뿐 아니라 모든 프랜차이즈는 일정 기간의 계약 기간을 두고 사업을 운영하는데, 인테리어·시설 등 상호 투자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안정성 기간을 전제로 다양한 투자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제도가 시행된다면 정당한 사유 없이 가맹점주가 중도 해지를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도 건강 악화나 갑작스러운 상권 변화 등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하면 위약금을 감면해주는 등 자율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려 있는데, 법으로 별도의 해지권을 보장하면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업계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가맹점단체교섭권 법제화와 일부 이슈가 기능적으로 겹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본부와 가맹점주는 기본적으로 노사 관계가 아닌 사업자와 사업자 관계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가맹점협의회 등 점주 대표기구를 통해 본사와의 협의 채널이 가동되고 있고, 단체교섭권 제도가 도입되면 점주가 계약 조건 변경이나 해지 문제를 집단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가맹점단체교섭권이 시행되면 점주단체가 본사와 직접 협의해 계약 해지나 위약금 완화 등을 조정할 수 있다”며 “별도의 법정 해지권까지 도입하면 동일한 사안을 이중으로 규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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