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인재 제일·기술 중시' 경영 철학 계승
신상필벌 원칙 따라 수시 인사…대규모 채용
사법리스크 족쇄 벗은 뒤 글로벌 광폭 행보
삼성 글로벌 위상 회복 …존재감 확대 평가
일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월 9일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로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27일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지난 2022년 10월 27일 공식적으로 삼성전자 회장으로 선임된 이후 그는 부친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남긴 '인재 제일·기술 중시' 경영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뉴 삼성' 시대의 방향타를 제시해 왔다. 특히 올해 7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며 10년 넘게 이어진 사법 리스크의 족쇄를 완전히 벗은 이후, 그의 행보는 한층 더 과감해지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7일 취임 3주년에 별다른 행사나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회장이 최근 '인재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관련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했을 당시에도 취임사 없이 이 선대회장 2주기에 맞춰 사장단에게 언급했던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 등 소회를 사내 게시판에 공유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삼성 위기론'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지난 3월엔 임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혁신을 위한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했다. 당면한 경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신상필벌 원칙에 따라 임원진 수시 인사를 단행하고, 국적·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즉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최상급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디자인 전문가 마우로 포르치니와 TSMC 출신 반도체 개발자 마거릿 한 등 해외 핵심 인재들을 영입했다. 포르치니는 지난 4월 삼성전자 최고디자인책임자(CDO·사장)로, 마거릿 한은 6월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공개채용은 이 회장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제도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공채 제도를 도입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19일 대통령실에서 미국 순방에 앞서 열린 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게 관련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에 대한 부담 속에서도 미래 준비를 위한 국내 투자와 채용을 이어가 전체 임직원 수가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 직원 수는 2019년말 10만5000여명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12만9000명으로 23%가량 늘었다.
임직원 보상에 주식을 도입한 것도 이 회장이 만든 큰 변화다. 삼성전자는 올해 8월 임원들에 대한 장기 성과인센티브(LTI)를 주식으로 지급하기로 했고, 최근엔 회사 미래 중장기 성과 창출에 대한 임직원의 동기부여를 위해 '성과연동 주식보상'(PSU·Performance Stock Units)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의 인재 경영 철학은 부친 이 선대회장의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해외 오가며 삼성의 글로벌 위상 회복 주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부터),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5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한미일 경제대화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리스크와 상속세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이 회장은 국내보다 해외 현장에서 더 자주 포착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과 9월 사이에만 미국을 두 차례 방문, 실리콘밸리 주요 반도체 파트너사들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 수장들을 만나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전세대 AI 칩인 'AI4'을 생산해오고 있으며, 차기 제품인 'AI6'도 생산할 예정이다. 여기에 AI5 칩까지 맡게 되면서 삼성 파운드리의 입지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15일 새벽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고 왔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투자 계획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법 리스크를 온전히 해소한 뒤 사업에 대해 언급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지난 14~15일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한미일 경제대화에 참석해 양국 경제 발전과 상호 이익 확대 방안에 대해 한미일 주요 인사들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18일(현지시간)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팜 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에 참석, 현지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오는 28일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과 함께 시작되는 APEC 정상회의 일정에 참석해 주요국 정상 및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계기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의 회동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함께 내달 8일에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 방문 차 미국에 갈 가능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단순히 시장 개척이 아니라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회복하고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정치·경제 외교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확대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인사·조직 재정비 흐름 속 콘트롤타워 부활 여부 관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재계에서는 대법원 무죄, 실적 회복, 혁신 인사·조직 재정비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오는 11월 말 삼성그룹 차원의 구조 개편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번 인사가 이 회장의 지배구조 단순화, 미래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넘어선 '뉴 삼성 리빌딩'의 서막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가능성도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나 "준법감시위원회 많은 위원들의 생각은 책임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아직 그 부분은 계속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론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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