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 찬성의 무게…삼바, 밸류업으로 증명해야 [기자수첩-ICT]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5.10.24 07:00  수정 2025.10.24 07:00

CDMO, 시밀러 사업 분리 나선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가치 제고 VS 지배구조 개편 의혹 '줄다리기'

압도적 주주 찬성으로 분할 결정, 과제는 밸류업

존 림 삼성바이오직스 대표가 1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내가 투자한 돈의 가치를 높여줄 것인가. 둘로 나뉘게 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지난 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이 출석 주주의 99.9%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가결되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맡는 존속 법인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거느리는 신설 지주사 삼성에피스홀딩스로 나뉘게 됐다.


99.9% 만장일치에 가까운 이 숫자에는 ‘밸류업’이라는 명분과 ‘지배구조 개편 포석’이라는 의혹 사이의 오랜 줄다리기가 숨어있다.


인적분할을 추진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내세운 명분은 ‘기업가치 제고’다. 글로벌 1위 CDMO 생산력을 가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시밀러 부문의 알짜로 자리 잡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업 모델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핵심인 장치 산업의 성격이 강한 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R&D 역량과 판매·마케팅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고객사들의 ‘이해상충’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빅파마들이 제품 생산을 맡겨야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시밀러를 만드는 에피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이를 분리해 각자의 사업 역량을 펼쳐야 한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논리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그 이면을 향했다. 왜 하필 그 방식이 인적분할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신설 법인의 주식을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부터 국내 대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개편하거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할 때 어김없이 활용해 온 ‘전통적인 카드’이기도 하다.


분할 과정에서 제기된 시장의 가장 큰 우려도 이번 인적분할이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이라는 의혹이었다. 구체적으로 ‘삼성생명법’이 시행될 경우 삼성생명이 약 20조원으로 추산되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매각해야 하는데, 이때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이 이번 분할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러한 의혹에 정면으로 쐐기를 박았다. “인적분할의 취지와 반하는 지배구조 개편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국거래소에 공식 확약한 것이다.


알짜 자회사 삼성바이에피스의 ‘쪼개기 상장’ 우려에 대해서는 주주 보호 장치를 내걸었다.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 정관에 “설립 등기일로부터 5년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장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하면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스스로르 향한 의혹에 구체적인 ‘주주 보호 장치’로 답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왜 분할하는가’에서 약속한 밸류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왜’라는 질문을 거둔 대가로 주주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돈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을 더 매서운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존속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명확한 과제를 안게 됐다.


결과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대가로 밸류업이라는 약속의 무게를 스스로 키우게 된 것이다.


99.9% 찬성률은 최대주주의 동의를 넘어, 소액주주들 역시 회사의 ‘주주가치 보호’ 약속에 신뢰를 보냈다는 의미다. 지배구조 개편 및 중복 상장이라는 의심의 안개가 걷힌 만큼, 밸류업이라는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오롯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