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전략은 '자극' '자극' '자극' [기자수첩-정치]

오수진 기자 (ohs2in@dailian.co.kr)

입력 2025.10.22 07:00  수정 2025.10.22 07:00

욕설과 조롱이 난무하는 2025년 국감장

'숏폼' 위해 직접 자극적인 장면 연출도

정책과 민생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의 질의 중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문자메시지 공개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리모컨을 잡고 넷플릭스를 켜도 이렇다 할 콘텐츠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흔히 쓰는 '뇌가 이미 도파민에 절여졌다'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일까. 국정감사 시즌이 되니 어떤 드라마도 예능도 시선을 잡지 못한다. 퇴근해서도 출입처를 생각하다니.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극적인 리얼리티가 지금 국회에서 상시 방영 중이기 때문이다.


국회 안팎의 최근 화두는 단연 국정감사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헌법기관의 공식 절차이자 의원들이 한 해 중 가장 분주할 기간이니 당연하겠다만, 그 본분보다는 '자극의 무대'가 만들어져 세간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다.


욕설과 조롱이 오가는 법제사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감장은 예능의 한 장면처럼 소비됐다. 대법원장을 향해 '조요토미 희대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조희대 대법원장)'라 조롱하고, 추억의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상케 하는 '옥상으로 따라와' '한 주먹 거리'라는 발언이 오가더니, 한 의원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까지 훔친다.


자극적인 순간들을 의원 본인이 직접 연출하며 '짤'로 남을 순간을 노골적으로 노리기도 했다. 국감장에서 보좌진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의원의 분노와 몸짓을 생생히 담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는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정책 검증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조 대법원장,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출석 여부 그리고 개개인의 '욕설 문자 공방'이 이번 국감의 키워드가 됐다. 회의장은 정회와 속개를 반복했고, 조롱과 언성이 교차하는 장면은 연일 언론과 SNS를 뒤덮었다.


결국 국정감사는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니라 한편의 조회수 경쟁의 장이 됐고, 무게감은 퇴근길 술자리에서 오르내리는 가벼운 화제 거리 정도로 전락했다.


현실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동공이 커질 만한 자극은 충분히 줬지만 이곳이 대한민국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씁쓸함과 회의감을 지우기 어렵다. 서로를 향한 언어의 칼날만이 난무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부끄러움'이 이곳에선 이미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국회마저도 SNS 세상처럼 강렬한 자극을 좇는다. 이러다 정치의 품격마저 스크롤에 휩쓸릴까 두려워지는 요즘이다. 누구보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곳이 '국회'라는 점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기자수첩-정치'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오수진 기자 (ohs2i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