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늦은 정부, 또 잃은 국민 [기자수첩-정치]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10.15 07:00  수정 2025.10.15 07:00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민석 국무총리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활동 중인 중국계 범죄조직에 의해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은 피해자의 사망 원인을 '고문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적었다. 해당 지역은 이전부터 한국인을 상대로 한 취업 사기와 감금 피해가 잇따르던 곳이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의 한국인 납치 신고는 2022년 1건에서 2023년 17건, 2024년 220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8월 말 기준으로 330건으로 폭증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뒤늦게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또 지난 7·9월에는 캄보디아 당국의 단속에 따라 한국인 90명이 온라인 스캠 범죄 현장에서 검거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들은 추방 대상이지만,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의 영사 조력과 귀국을 거부하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귀국하고 있어 6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라고 밝혔다.


이처럼 재외국민 안전망이 뚫리고 있는데도 주캄보디아 대사 자리는 석 달째 비어 있다. '뒷북 대응'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지난해 대규모 공관장 인사를 단행하며 귀국시킨 뒤 아직도 후임을 임명하지 못한 탓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사건 보고를 받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 문제에 대응해달라고 지시했다고 하지만 이미 국민이 희생된 뒤에야 나오는 지시는 공허하게 들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말은 수 차례 반복돼왔지만, 실제 현장 대응은 늘 늦었다.


대통령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챈 모양새다. 캄보디아에 대해 여행경보 격상을 검토하겠다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는 15일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합동 대응팀'을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대응팀에는 외교부 외에도 경찰청과 국정원 등이 참여할 계획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과거 정부들도 크고 작은 재난·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해왔다.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고가 나면 대통령이 지시하고, 장관이 브리핑하며, 정부가 '24시간 대응'을 홍보하지만, 재발 방지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보여주기 행정일 뿐이다.


이번 캄보디아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현지 당국의 비협조를 탓하지만, 정작 우리 외교 인력과 안전망은 허술했다. 국내 경찰은 피해자가 현지로 가게 된 경위만 수사할 뿐, 해외 범죄 대응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코리안데스크(한인범죄 전담 경찰)' 설치 논의를 이제야 시작하는 것은 '불난 뒤에 우물 판다'는 격이다.


정부는 재외국민 안전을 국가 이미지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 낯선 땅에서 위험에 빠진 국민이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현지 공관의 공백부터 메우고, 실질적인 공조 체계를 세우는 것이 먼저다. 국민의 안전은 어느 정권의 치적이 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기자수첩-정치'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