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흔적 추적…하수가 말해주는 데이터 [감시와 회복 사이④]

박진석 기자 (realstone@dailian.co.kr)

입력 2025.10.09 08:00  수정 2025.10.09 08:00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하수 속 데이터’로 마약류 사용 실태를 읽고 있다. 사람의 배설물에 포함된 마약류 대사산물을 분석해 지역별 사용량을 추정하는 ‘하수역학 조사’가 그것이다.


이는 단속이나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사용 흔적을 과학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호주 등에서 검증된 선진 기법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이 방식을 도입해 불법 마약류 사용 실태를 분석해왔다.


식약처는 지난 5년간 전국 주요 하수처리장 34곳에서 정기적으로 시료를 채취해 불법 마약류 성분을 분석했다. 하수의 유량과 지역 내 인구를 함께 고려해 인구 1000명당 일일 평균 사용추정량을 산출한 결과, 메트암페타민(필로폰)과 코카인 등 주요 마약류의 사용 추정량은 5년 연속 감소했다.


2020년 31.27mg에서 2024년 15.89mg으로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메트암페타민의 사용추정량은 24.16에서 9.86로 59% 감소했다. 이는 미국(2,667mg), 호주(1,446mg), 유럽(42mg)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메트암페타민은 여전히 전국 모든 조사 지점에서 검출됐지만 그 양이 뚜렷이 줄었다. MDMA(엑스터시)는 2022년 이후, 코카인은 2024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다만 일부 신종 마약류로 수요가 이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역별로는 인천과 경기 시화 지역에서 필로폰 검출량이 높게 나타났으며, 코카인은 전국 34개 하수처리장 중 7곳에서만 검출됐다.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높은 12개 지역에서는 필로폰 검출량이 전국 평균의 1.4배 수준이었다.


식약처는 “모든 지역에서 불법 마약류가 검출된 만큼 완전한 청정 지역은 없다”며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용량이 감소한 배경에는 수사·단속 강화와 더불어 예방교육, 홍보 확대 등의 정책적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조사되지 않은 신종 마약류 사용이 증가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부터는 하수역학 조사를 한층 정교하게 확장한다. 기존 6종이던 분석 대상 성분을 의료용·신종 마약류를 포함한 200여종으로 대폭 확대하고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는 배수 지점별 추가 채집을 병행한다. 마약 성분이 검출된 경우 인근 건물의 정화조 시료까지 분석해 추적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아울러 하수 분석과 함께 중독자 코호트 연구를 병행해 개인 단위의 마약류 사용 데이터를 축적할 계획이다. 의료기관에서 확보한 인체 시료 분석 결과와 하수 분석 데이터를 통합하면 불법 마약류 사용량을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인구·소득·범죄 통계 등 사회경제 데이터를 접목해 고위험 지역을 예측하는 데이터 기반 정책도 준비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하수역학 조사는 마약류 사용 실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과학적 도구”라며 “수사기관, 지자체와 함께 조사 결과를 공유해 고위험 지역 중심의 예방 교육과 단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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