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입력 2009.04.30 22:15  수정

<이모저모>노 전대통령 지지자들 대검 정문 앞서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서울로 상경했다.

지난 해 10월 ‘10.4 남북정상회단1주년 기념강연’ 이후 7개월여 만이다.

그러나 이번 상경길은 영예롭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로 검찰소환조사를 받게 된 탓이다.

지지자들은 변치 않는 애정을 드러냈지만 여론은 동정론보다 비판론에 무게가 쏠렸다.

○…오전 7시57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현관을 나선 노 전 대통령은 승합차로 50m 이동해 오전 8시 취재진 앞에 섰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면목 없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 잘 다녀오겠다”고 한 뒤 버스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주먹을 꽉 쥐었고 목이 메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 김경수 비서관 등 4∼5명이 함께 무거운 상경길에 동승했다.

서초구청 직원들이 대검찰청사 앞에 모인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불법현수막을 철거하겠다는 통보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탑승한 버스는 봉하마을과 가장 가까운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나들목 대신 진례나들목으로 진입, 중부내륙고속도로, 청원∼상주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오후 1시쯤 서울톨게이트를 지났다.

버스는 초반 시속 60∼90㎞로 달리다 낮 12시20분쯤 입장휴게소에서 10여분간 정차한 이후부터는 시속 110㎞로 빠르게 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예정된 오후 1시 30분보다 10분 일찍 청사에 도착했다.

○…검찰과 경찰, 전직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청와대 경호처는 이날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동경로는 출발 시각이 다 되어서야 경찰에 통보됐고, 경찰 인원 5000여명을 곳곳에 배치해 우발 사태에 대비했다. 노 전 대통령 버스 주변과 상공에 순찰차 5대와 헬기를 붙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나들목 등에도 경찰관을 배치했다. 봉하마을과 대검찰청 앞에도 전의경 20개 중대(1600여명)를 배치했다.

고속도로 곳곳에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견인차량 25대가 대기했다.

대검은 철저히 통제됐다. 당일 어떤 차량도 대검 구내에 진입을 불허했고,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는 특별조사실이 있는 본관은 외부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취재진도 미리 신청을 한 경우에만 청사 출입이 가능했고, 신원 확인과 소지품 검색을 거쳐 소환 예정 시간 2시간 전까지만 정문을 통과하도록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행이 이용한 버스는 청와대 경호처의 업무용 버스. 42인승 일반 리무진 버스를 16인승으로 특별 개조한 것으로, 우등좌석버스보다 내부 공간이 넓고 훨씬 편하다. 미니 테이블도 마련돼 약식회의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리창 등에 기본적인 방탄 처리를 해 이동 과정이나 검찰 청사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위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노 전 대통령 좌석은 소음이 가장 적은 버스 중간 부분에 위치해 있고, 다른 좌석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은 보수-진보의 이념갈등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보수는 노 전 대통령을 성토했고, 진보는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대검찰청이 서울시청 앞 광장이었다.

보수는 “권력형 비리”라고 규정한 반면, 진보는 “정략수사”라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들의 의견이 일치된 것은 검찰의 수사에 대한 불만이었을 한했다. 보수는 노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며 방식을 문제삼았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 등을 비롯한 진보는 수사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보수국민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한어버이연합회 등 5개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은 오전 10시30분경 대검찰청 앞에 모여 ‘노 전대통령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오후 12시경에는 라이트코리아, 고엽제전우회 등 정통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노 전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박연차 게이트’를 상징하는 ‘600만달러’가 쓰여진 라면상자를 주고받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강하게 성토했다. 참여정부 시절 ‘반노무현’ 집회를 이끌었던 국민행동본부는 3000여명의 지지 서명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대검 측에 전달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이에 맞서 ‘지지시위’로 맞불을 지폈다. 노사모 회원 150여명이 오전 11시경부터 서초역 6번 출구부터 대검찰청 청사 정문까지 도로를 따라 길 양쪽에 노란 풍선 400여개씩 매달고, ‘당신이 있을 때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노 전 대통령 지지 토론사이트인 서프라이즈와 시민광장 등도 지지시위에 합류했다. ‘노무현 죽이기 5년으로도 모자라냐’ ‘모욕주기 보복정치 부끄러운 줄 알아아지’ 등이 적힌 플래카드로 검찰과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노혜경 전 노사모 회장과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지지자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30일 대검찰청 주변에서 오후 밤 늦게까지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측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목소리를 높이며 신경전을 벌이다 노 전 대통령의 도착이 임박할 즈음 고성과 욕설을 주고 받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5∼6개가 노 전 대통령의 의전버스에 날아들어 이 중 2∼3개는 버스 윗부분과 창문에 맞자 양측의 감정은 극에 달했다. “빨갱이” “매국노” 등 날선 비난이 오고갔다. “영혼을 납치하는 행위”(보수단체)라는 성토에 “정신병원에서 찾는다”(노사모)는 조롱이 되돌아갔다.

보수단체측은 모두 해산했으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조사를 마치고 귀경할 때까지 대검 앞에서 촛불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대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까지 400㎞에 달하는 긴 여정 끝에 모습을 드러낸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특유의 입을 굳게 다문 얼굴로 “(국민 여러분께) 면목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낮았고 가늘게 떨렸다.

현관 안에 대기한 취재진을 잠시 쳐다보다가 애써 옅은 미소를 피워 올렸지만 잘 되지 않는 듯 이내 어두워졌다. 굴곡진 초, 중반기를 넘어 ‘대권’을 잡은 노 전 대통령의 의지와 삶을 보여주던 이마의 주름은 서글픈 장년의 그것으로 보였다.

○…이날 국내외 취재진 700여명은 새벽부터 봉하마을과 대검청사에 나뉘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고속도로 주변 전망 좋은 야산 등 10여곳에선 방송 취재진이 노 전 대통령 탑승 버스 촬영을 시도했으며, 지상파·케이블 등 주요 방송사들은 헬기를 띄워 노 전 대통령의 이동 과정을 생중계했다.

당초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현장 취재를 신청한 기자는 외신까지 700명에 달했다. 그러나 경호 문제로 200명선으로 제한됐고 비표를 받아 입장한 취재진은 최종적으로 300여명 가량이었다. 이 중 포토라인에 근접할 수 있었던 취재진은 11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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