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 "노무현 불구속" vs 동아 "구속"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입력 2009.04.29 19:08  수정

조선 “탄압받는 약자모습 연출할 준비하는 것 아닌지 의심”

동아 “전직 대통령도 예외 없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 돼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검 소환을 앞두고 ‘노무현 구속수사론’과 ‘불구속 수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언론은 칼럼과 사설에서 자사의 주장을 펴며 검찰에 ‘훈수’를 두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언론의 주장이라기엔 고개가 가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우선 두 신문은 불구속수사 주장의 근거로 ‘전직 대통령 구속=국가 수치’라는 공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직 대통령에 얽힌 뇌물과 법정다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해외토픽으로 지구촌 언론에 등장할 때 우리의 모욕감, 수치심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27일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라는 반문이다.

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사설의 행간엔 ‘때릴 만큼 때렸는데, 구속수사까지 하면 동정표 받을라’하는 우려 아닌 우려가 배어 나왔다. 아예 “이제 독자들은 그 이름만 나와도 질린다. 글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29일자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며 무시전략을 펴기도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를 주장했다. 신문은 “‘도덕성의 화신(化身)’처럼 행세하던 전직 대통령을 부패 범법 혐의가 드러나도 구속만 하지 않으면 나라 체면을 지킬 수 있다는 건 무슨 논리인가”라고 반문했다.

‘노무현 동정론’ 경계하는 <조선>

조선의 사설과 칼럼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무시’와 한편으론 ‘동정론’에 대한 우려가 뒤섞였다.

조선은 27일 ‘[김대중 칼럼] 노무현씨를 버리자’에서 “이제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노씨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국민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를 버리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버리는 것인가?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고 주장했다.

칼럼은 노 전 대통령의 불기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근거로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장기간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할 가치가 과연 있느냐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전직 대통령에 얽힌 뇌물과 법정다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해외토픽으로 지구촌 언론에 등장할 때 우리의 모욕감, 수치심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을 꼽았다.

앞서 조선은 24일 ‘노 전 대통령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해야’ 제하 사설에서 “상당수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이 탄압받는 약자(弱者)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모종의 법정 드라마를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노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에 따른 ‘동정론’을 경계했다.

사설은 또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그것도 부패와 부정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었다고 자임(自任)해 온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의(囚衣)를 입고 수갑을 찬 채 다시 법정에 서는 모습을 봐야 하는 현실에 참담해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의 안방에 이런 망신스러운 모습이 비친다는 것만 생각해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다.

사설은 이어 “지금 국민들은 대한민국 법률의 엄정함을 보이면서도 대한민국의 위신을 더 이상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엄정하게 하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하고 법원이 그 죄를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치확립’ 보다 ‘국가의 명예’에 무게 실은 <중앙>

중앙은 ‘노무현 게이트’에 따른 대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했다. ‘법치 확립’과 ‘국가 명예’에 대한 고민에서 후자쪽에 방점을 찍었다.

중앙은 28일 ‘[문창극 칼럼] 법치와 명예’에서 “우리는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특허를 많이 받은 나라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망치와 전기톱이 춤을 춘다. 여기에다 대통령까지 후진형의 추태에 가세할 경우를 생각해 보라. 최고급 한국산 TV와 휴대전화를 자랑스럽게 지니고, 현대차를 몰고 다니는 외국 고객들이 ´아니 한국이 저 정도의 나라인가´라고 생각할까 민망스럽다”고 주장했다.

컬럼은 “민주국가의 핵심가치는 법치다. 법치가 무너지면 나라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법치를 세우려다가 나라의 명예가, 나라의 품격이 땅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반문한 뒤 “검찰은 결정적 물증이 없다면 그의 진술을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체면을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칼럼은 “(검찰이) 그의 집이나 제3의 장소에서 조용히 조사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사진을 찍고 야단을 떤들 누구에게 유익하겠는가”라고 ‘시끄러운’ 수사과정을 우려했다.

또 “이제는 법치를 넘어 명예로운 길이 무엇인가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우리도 성장했다. 더 이상 부끄러운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 “전직 대통령 이유로 불구속수사 한다면 ‘법 위의 법’ 확인”

동아는 구속수사에 대한 확고한 ‘법 원칙’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불구속 수사가 이뤄질 경우,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를 확인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아는 28일 ‘[오늘과 내일/권순택]구속과 불구속 사이’ 칼럼에서 “혐의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고 ‘전직 대통령 구속=국가 수치’라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법치국가의 수치’에 해당하지 않을까”라면서 “검찰이 직접 신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섣부르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을 거론하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된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국가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주장까지도 한번쯤 음미해볼 만은 하다. 하지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궤변은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칼럼은 이어 “전직 대통령 구속이 국제적으로 미칠 악영향 때문에 불구속해야 한다면 앞으로 재벌기업 총수들도 모두 불구속 처리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렇게 대상을 넓히면 언론인 구속은 언론탄압, 즉 반(反)민주여서, 기업인 구속은 시장에 악영향을 미쳐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처리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철학에 반한다”면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가 ‘법 위의 법’으로 확인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검찰이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수사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검찰은 증거 위주로 철저히 수사하고 구속사유에 해당하면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권력과 책임은 비례해야 제대로 된 나라다”면서 “전직 대통령도 예외 없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로 평가되면 불행 중 다행으로 국가 이미지가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