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마리 퀴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두 개의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 등이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그런데 뮤지컬 ‘마리 퀴리’는 교과서 속 위인으로 머물던 그를 무대로 소환해, 영광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윤리적 책임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피어난 여성의 연대를 그려낸다.
“불린 적 없는 이름 없는 것들 / 자리를 찾아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 / 한 번도 누구도 불러준 적 없는 / 이름 없는 것들 우리들 / 차고 어두운 빈자리 제 이름을 찾을 거야” -‘마리 퀴리’ 넘버 ‘모든 것들의 지도’ 中
작품은 ‘안느 코발스키’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마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마리는 고국 폴란드에서 기성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가난한 여성 과학자, 즉 ‘이름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다 해고당한 여성 노동자 안느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품은 이렇게 ‘제자리를 찾길 원하는 이름 없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안느는 이후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마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로, 때로는 대립하며 마리의 고뇌를 심화시키는 존재로 그리고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로 작용한다.
이야기는 마리가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라듐’을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라듐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기적의 원소이자 폴란드인으로서, 그리고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차별을 견디며 이뤄낸 성취였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 주는 상징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눈부신 빛은 곧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라듐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존재로 드러나면서다. 작품은 안느라는 가상 인물을 공장에 들임으로써 라듐으로 인한 직공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도록 한다. 한때 같은 꿈을 꾸었던 마리와 대립하고 고뇌하게 만들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시작된 이들의 목소리는 ‘진실’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연대 합창으로 발전한다.
뮤지컬의 가장 큰 힘은 단연 음악에 있다. 마리의 고뇌와 환희, 안느의 절망과 희망 등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은 강렬하고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관객의 마음에 깊이 파고든다. 특히 라듐의 발견을 노래하는 환희에 찬 넘버부터 진실 앞에서 두 여성이 함께 부르는 마지막 곡까지, 음악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주인공 역할을 해낸다.
실험실을 형상화한 무대와 라듐을 상징하는 초록색 조명의 활용 또한 인상적이다. 이 초록빛은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준 발견의 빛이자, 동시에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빛으로 변주되며 극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한다.
‘마리 퀴리’는 단순히 한 위인의 일대기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마리 퀴리라는 인물을 통해 진실을 마주할 용기, 두려움에 맞설 용기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용기는 위대한 한 위인의 고독한 성취가 아닌, 연대 속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연은 10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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