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장관급 예우를 받는 이 자리는 대한민국 대중가수 출신으로는 최초의 정부 고위직 입성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된다.
과거 영화감독 이창동, 김명곤, 배우 유인촌, 손숙 등이 장관을 역임한 사례는 있었으나 대중음악계, 특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케이팝 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장관급 직책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가요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이 이번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의 이번 선택은 케이팝의 달라진 위상과 문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리더를 정책 파트너로 격상시킴으로써, 케이팝을 ‘지원과 진흥’의 대상을 넘어 ‘국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부의 구상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박진영 위원장 인선 배경에 대한 질문에 “대한민국이 가진 여러 장점 중 하나가 문화 역량”이라며 “문화 역량을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박진영은 그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가”라고 추켜세웠다.
정부의 역할 분담 구상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대통령은 “박 위원장은 주로 문화의 산업화, 글로벌 진출에 주력할 것이다. 꽤 많은 성과를 낼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문화계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듯 “문화예술 창달을 위한 기존의 문화예술위원회는 별도로 활동을 이어갈 것이며, 순수예술·창작 활동과 문화예술인 지원은 대폭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박 위원장의 역할이 전통적인 문화예술 지원보다는 케이팝을 필두로 한 대중문화의 외연 확장과 산업적 성과 창출에 집중될 것임을 짚은 것이다.
무엇보다 박진영은 2000년대 후반, ‘케이팝’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룹 원더걸스를 이끌고 무모하다시피 한 미국 시장의 문을 직접 두드린 인물이다. 당시 그의 도전은 상업적 성공으론 이어지지 못했지만, 훗날 케이팝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최초의 경험’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갔다는 ‘개척자’였던 셈이다. 이는 향후 그가 추진할 대중문화 정책과 글로벌 교류 전략에 강력한 진정성과 설득력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핵심 역량은 ‘현지화 전략’의 성공 경험이다. 일본인 멤버들로 구성된 걸그룹 니쥬(NiziU)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박 위원장의 이러한 성공 모델을 국가 차원의 문화 교류 전략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완성된 케이팝 콘텐츠를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의 제작 시스템과 현지 인재를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교류를 통해 K-컬처의 영향력을 더욱 깊고 넓게 확산시키려는 포석이다.
물론 박 위원장의 임명을 두고 가요계 안팎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정책 결정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다. 케이팝의 글로벌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비자, 현지 법률 문제 등 실무적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다.
박 위원장 역시 “현장에서 일하며 제도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리해서 실효적인 지원이 갈 수 있게 하겠다.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정부 일을 맡는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로서는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케이팝이 너무나도 특별한 기회를 맞이했고, 이 기회를 꼭 잘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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