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 언제나 '트라이' 하는 마음으로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07 08:41  수정 2025.09.07 20:42

작은 체구에 단단한 눈빛을 지닌 배우 이지민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단역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지만, 한때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 미대에서 패션을 전공하기도 했다. 하루 세 시간만 자며 영어 단어를 외워 기적처럼 합격했던 치열한 시간 뒤, 스물여덟 살에 집에 불이 나는 사고를 겪으면서 그는 다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결심 끝에 다소 늦은 나이에 연기를 선택했고, 신연식 감독의 영화 ‘로마서 8:37’의 주연 자리를 따냈다.




이후 ‘독전’, ‘그대 이름은 장미’ 등 스크린과 ‘멜로가 체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드라마에서 차근차근 내공을 쌓았다. 최근에는 SBS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이하 ‘트라이’)에서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매력을 가진 보건교사 승희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트라이’는 예측불허 괴짜 감독 주가람(윤계상 분)과 만년 꼴찌 한양체고 럭비부가 전국체전 우승을 향해 질주하는 코믹 성장 스포츠 드라마다. 극 중 인물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며 한층 성장한 것처럼, 이지민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한 뼘 더 자랐다. 이에 승희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쉽기만 하다.


”모두가 정말 고생했어요. 현장에서 다들 너무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한 게 눈에 보이니까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각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들이 많아서 감동이 컸어요.“


이지민에게 ‘트라이’는 그 어느 때보다 몸은 고단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매니저도 없이 혼자 준비했어요. 의상부터 헤어, 메이크업까지 직접 챙겼죠. 서울 근교에서는 헤어·메이크업을 받고 갔지만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그땐 혼자였어요. 승희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잘 표현했는지 늘 의심하고 걱정을 했었죠. 그런데 현장에서 작가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해주셨을 때, 정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연기 시작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노는 기분을 느끼니 기쁘더라고요.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다음 작품은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죠.”


공식 홈페이지에서 양승희는 ‘본인 업무 외에는 큰 관심이 없는 ‘회색분자’로 소개된다.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남 일에 신경을 왜 쓰지?”라며 냉정한 태도를 보이지만, 오랜 친구 이지(임세미 분)를 생각해 가람에게 마지못해 한발 물러서는 인물이다. 이지민은 이런 승희의 양가적인 면모를 솔직하면서도 위트 있게 풀어냈다.


“처음 미팅할 때 감독님께서 승희를 두고 ‘현실적이고 솔직한, 귀엽고 시크한 또라이’ 캐릭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았죠. 보건실 앞에서 했던 장면도, 학주 전낙균(이성욱 분)에게 주가람을 보호해 주는 신도 모두 애드리브였어요. 휴먼 코미디 장르다 보니 재미가 생명이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매 신마다, 촬영 갈 때마다 승희라는 캐릭터를 기본에 두고 재미있게 살리려고 했죠.”


승희는 강자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당당히 내뱉는 내면의 강함을 지닌 인물이다. 이지민은 이러한 승희의 성격을 자신과 겹쳐 보며, 캐릭터에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승희는 내 편에게 확실히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죠. 또 강자에게 지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내면의 강함도 있고요. 저에게도 승희 같은 면모가 있어서 연기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 시청자들이 ‘제 친구 중에 저런 친구가 있으면 참 든든하겠다’라는 느낌을 받길 바랐고요.”


혼자서 촬영을 준비하며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현장에는 늘 따뜻한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격려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이지민은 든든한 힘을 얻으며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세미 언니는 날개 없는 천사였고, 계상 선배는 말 그대로 대체불가한 분이셨어요. (이)성욱 선배, (정)순원 오빠까지 모두 잘 챙겨 주셨어요. 지방 촬영이 많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성욱 선배와 명진 오빠가 함께 절 태워가 주신 적도 있고, 지방에서는 아침마다 계상 선배가 픽업해 주셨어요. 계상 선배에겐 연기에 대한 궁금한 점도 많이 물어봤어요. 그러면 항상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죠. 세미 언니에게 ‘너와 연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연기 잘한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전달받았을 땐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


스포츠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었다. 특히 윤계상이 중심에서 분위기를 이끌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지민은 그 배려와 리더십에 깊은 감탄했다.


“리딩 전부터 계상 선배가 직접 연습실을 빌려 모이게 했어요. 빨리 친해지라고요. 한양고 친구들, 세미 언니, 계상 선배까지 다 함께 밥도 먹고, 연습도 함께 하며 이미 촬영 전에 가까워졌죠. 그 덕분에 작품 속 친밀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요. 계상 선배를 보면서 주연으로서의 책임감과 리더십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함께하며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걸 깊이 느꼈어요.”


이지민을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게 만든 캐릭터는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방송국 구내식당 영양사 다미일 것이다. 범수(안재홍 분)에게 주저 없이 직진하는 쿨한 연애 방식으로 신선한 인상을 남겼던 이지민은 ‘트라이’에서 또다시 흰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영양사 선생님이 ‘언제 보건교사가 됐냐’고 농담하셨는데, 가운이 잘 어울린다며 웃으셨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이지민은 이번 작품으로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긴장과 부담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캐릭터에 온전히 맡기면서, 그는 처음으로 ‘편한 연기’가 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편한 연기’라는 걸 느꼈어요. 예전에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힘이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내려놓고 ‘내가 곧 양승희다, 그냥 놀자’라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그랬더니 훨씬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물론 늘 아쉬움은 남지만, 연기의 재미를 새삼 크게 느꼈어요.”


이지민은 KBS ‘크레이지 러브’ 이후 약 3년간 작품 활동을 쉬었다. 길었던 공백은 잠시 멈춰 선 시간이었지만, 배우로서 다시 나아갈 힘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중간에 연기를 못했을 때,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할 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죠. 이번 ‘트라이’는 그런 초심을 다시 불러온 작품이었어요. 회사 없이 혼자 했는데도 잘 해냈다는 자신감도 얻었어요.”


그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으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해 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관객에게 진심 어린 울림을 전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는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사람에게라도 기쁨이나 위로,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장르적으로는 스릴러,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사실 새로운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리고 진정성 있는 배우로 성장해 나갈 테니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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